지난 7월 31일 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에서 암살됐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보안이 삼엄하다는 테헤란 안가에서 폭사했다. 이스라엘은 침묵했지만, 이란과 하마스는 물론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이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며 복수를 외쳤다.
300일을 넘어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정치 지도자까지 잃은 하마스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스라엘의 말살을 외치며 이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는 무엇을 얻었는지 먼저 따져보자.
하마스는 무엇보다 역내 정세 판 흔들기에 성공했다. 압도적 전력을 지닌 이스라엘의 공세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참사가 도를 넘자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지난 5월에는 노르웨이·스페인·아일랜드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선언했고 하마스는 이를 치적으로 내세웠다. 앙숙인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다르게 이스라엘에 거침없이 맞선다며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높였다.
1987년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한 하마스는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이스라엘 국가를 파괴한 후 그 자리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내걸었다.
이스라엘과의 폭력적 대결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는 하마스는 최근 불안해졌다.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하던 아랍 걸프 산유국들이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과 데탕트를 맺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이자 수니파 아랍 세계의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는다고 하자 하마스는 자신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는 판을 뒤흔들기 위해 잔혹한 테러를 감행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해 소규모 키부츠 24곳과 뮤직 페스티벌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900명, 군인 300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250여 명을 납치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완전 궤멸을 목표로 가자지구 지상전을 벌였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2만5000여 명, 하마스 대원 1만4000여 명이 사망했다. 아무리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썼다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시가전 역사상 비전투원 사상자 비율이 가장 높은 부끄러운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이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까지 ‘집단 처벌’했다고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평판의 추락이라는 달콤한 승리도 얻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하마스 군사조직의 수장인 야히아 신와르 양쪽 모두에게 전쟁범죄를 이유로 동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급으로 취급해버린 것이다. 이어 하마스는 휴전 협상과 인질 귀환 문제를 둘러싼 네타냐후 총리와 군부의 대립, 이스라엘 시민사회의 반네타냐후 시위, 전후 평화 구상을 위한 미국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각 총사퇴 단행 등을 느긋이 지켜봤다. 더불어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까지 반이스라엘 전선에 끌어들여 역내 긴장을 최고조로 높이고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전쟁의 불가피한 속성인 복잡성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 팔레스타인의 내부 권력 투쟁, 아랍 걸프국의 전략 변화, 이란의 군사적 야심, 요동치는 미국 대선, 급변하는 국제 여론 등이 뒤엉켜 있다. 그만큼 확률적 사고를 잃지 않고 전쟁을 관찰해야 한다.
* 본 글은 8월 6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