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후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겨울이란 시기, 중동이란 장소 모두 처음이다. 40도를 훌쩍 넘는 여름철을 피했지만 11월 말 공기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라 경기장 전체에 첨단 냉각 시스템이 풀가동될 예정이다. 카타르는 10여 년간 2200억달러를 들여 초현대식 경기장 8개를 짓고 도로와 지하철, 공항과 호텔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그런데 카타르월드컵 얘기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문제로 이어진다. 지난해 가디언지가 이주노동자 6751명이 열악한 처우로 사망했고 카타르 당국과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폭로했다. 유럽의 몇몇 대표팀 선수들은 ‘인권’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예선전에 참여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들끓자 카타르월드컵조직위원회는 인력 업체의 규정 위반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카타르월드컵의 흑역사엔 뇌물수수 스캔들도 있다. 2010년 FIFA가 카타르를 2022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뒷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2015년 미국 법무부는 스위스 검찰과 공조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관련 부패 혐의로 FIFA 간부 7명을 체포했고 5선의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사임했다. 2019년엔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 회장이 카타르월드컵 관련 비리 혐의로 프랑스 경찰에 긴급체포된 후 풀려났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는 여전히 잭팟이다. 천문학적 예산이 부담스럽지 않은 산유왕정은 초호화 최첨단 월드컵을 열어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고 권위주의 체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할 수 있다. 왕실의 위상을 과시하고 정권 안정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카타르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 축구팀을 사들이면서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도 한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UAE 부총리인 만수르가 2008년 맨체스터 시티를, 카타르투자청이 2011년 파리 생제르맹(PSG)을, 사우디 국부펀드가 2021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거액에 인수한 까닭이다. 산유왕정은 축구팀을 사들인 후 슈퍼스타를 대거 영입했고 화려한 우승을 이어갔다. 맨시티와 PSG가 연습과 경기를 위해 UAE와 카타르를 정기적으로 찾을 때마다 전 세계 축구팬은 이 모습을 자연스레 접했다. 2021년도 UAE 글로브 사커 어워즈가 끝난 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킬리안 음바페 같은 스타들은 SNS에서 UAE에 감사를 전했고 수억 명의 폴로어가 이를 봤다. 또 카타르항공은 바르셀로나, 에미레이트항공은 아스널, 에티하드항공은 맨시티와 유니폼 파트너십을 맺어왔고 이들 항공사를 향한 브랜드 친밀도는 해당 나라의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사우디의 뉴캐슬 인수 직후 국제앰네스티가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저격했으나 영국의 뉴캐슬 팬 수천 명은 거리로 나와 사우디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고 SNS에서도 새로운 후원자를 앞다퉈 칭송했다.
걸프 산유국의 축구 투자가 권위주의 정권의 우민화 정책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의 관심을 축구로 돌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의도라는 것이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턱 낮은 종목이기에 우민화 수단으로 제격이긴 하다. 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중동 시민은 경기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과 공정한 경쟁을 향해서 환호한다. 권위주의 억압하에 사는 이들은 현실에선 보기 어려운 법치 대신 경기 속 정의를 만끽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룰을 어기는 모두가 어김없이 벌칙을 받는 모습을 보며 중동 시민은 세상의 부당함을 잠시 잊고 살아 있는 정의에 안도하는 것이다.
* 본 글은 09월 28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