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美의 핵합의 복귀 수용
자신의 승리라며 과시 예상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선언
사우디·UAE는 안보 강화
중동불안 해소 쉽지 않아
이변은 없었다. 지난달 18일 실시된 이란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가 6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알리 하메네이 최고 종교 지도자가 전폭적으로 지지한 라이시 당선자는 하메네이처럼 이슬람 법학자 출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고강도 제재를 막지 못했다고 온건파 정부를 맹비난한 저소득층 유권자 대부분이 라이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투표율이 1979년 이란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래 가장 낮은 48.8%에 그쳤다.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된 2017년의 투표율 73%와 대비를 보였다.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26%에 불과했다. 더구나 무효표가 370만표에 달했다. 라이시에 이어 2위를 기록한 모센 레자이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 후보의 득표수는 340만표로 무효표보다 30만표가 적었다. 이란에서 투표는 후보자 이름을 직접 쓰는 방식인데 무효표 대부분에는 영화 주인공이나 연예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수파는 낮은 투표율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렸다.
낮은 투표율과 많은 무효표의 원인은 보수파가 장악한 헌법수호위원회의 출마 자격 심사에서 유력한 온건파 후보자가 대거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자격 심사에서 출마 지원자의 99%인 580여 명을 탈락시켰다. 온건파 지지 세력인 도시 중산층, 청년층, 여성 유권자는 투표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자격 심사를 통과한 최종 후보자는 총 7명이었는데 라이시 후보를 제외하고는 지지 기반이 거의 없었다. 보수 지배연합이 라이시 대통령 만들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어떠한 요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라이시 당선자는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신학 공부에 매진해 20대에 검사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향인 하메네이는 라이시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고 라이시는 이런 하메네이의 충복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시 당선자는 1988년 비밀 재판에서 정치범 수천 명의 처형을 주도한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이다. 이란 13대 대통령 당선자는 고령에 중병까지 걸린 하메네이를 이어 차기 최고 종교 지도자직에 오를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강경파 라이시의 대통령 당선 직후 이란은 올 4월부터 비엔나에서 여섯 차례 열린 핵합의 복원 협상의 잠정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2015년도 핵합의 복원만을 주장해온 반면 이란은 트럼프 정부가 새로이 부과한 제재의 해제와 함께 미국에 핵합의를 행정명령이 아닌 조약으로 바꿀 것까지 내세워 왔다. 차기 행정부가 강경파 인사로 속속들이 채워지는 가운데 이란의 보수 지배연합은 중동 내 친이란 프록시 조직을 이용해 미군 시설을 공격하며 협상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한 탐색전을 펴고 있다.
결국 이란은 미국 제재로 인한 극심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 바이든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승리라며 대내외에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원을 하루빨리 성사한 후 중국 견제와 기후변화 정책에 집중하고자 한다. 중동에 얽매인 모습은 내년 중간선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프록시 조직 지원 문제는 추후에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는 핵합의 복원에 따른 경제 이익이 이란 강경파에 고스란히 돌아가 이들의 팽창주의 행보를 더 부추길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프록시 조직에 군사작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란의 팽창주의에 맞서 작년 이스라엘과 깜짝 놀랄 전략적 연합을 구축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는 새로운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중동 내 미국의 역할을 줄여 나가겠다는 바이든 정부엔 반발하는 이들 우방국을 말릴 명분도 없다. 이란 핵합의 복원이 중동 안정을 가져오기에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다.
* 본 글은 07월 2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