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북 정책 ‘담대한 구상’을 내놓은 데 대해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8월 19일 담화에서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며 담대한 구상을 받아들일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어느 누가 자기 운명을 강낭떡 따위와 바꾸자고 하겠는가”라는 구절에서도 나타나지만, 경제적 인센티브와 비핵화를 맞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先)비핵화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북한의 성실한 비핵화 의지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초반부터 통 크게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있고, 담대한 구상의 내용에 대한 국내외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상이 사실상 북한과 타협하는 보상책이 아니냐는 의문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이를 고려할 때 담대한 구상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담대함’을 더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담대함은 솔직함과 연결돼야 하고, 상대방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담대한 구상은 실질적 비핵화 단계에서부터 대북 경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을 천명했으며, 정부 관계자들은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도 경제적 보상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어떤 조치를 해야 이를 실질적 비핵화로 볼 것인지, 초기 단계 비핵화에서는 최소한 어떤 진전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내 모든 카드를 보여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해야 보상하겠다는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요구에 대해서도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힘에 의한 북한의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명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 보장은 사실상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한·미동맹을 해체하라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북한을 인위적으로 흔들 의지는 없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도 담겨 있어야 ‘담대함’이라는 용어에 내포된 ‘자신감’이 더욱 강화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고 핵 위협 능력을 증강하는 한 우리 정부의 대핵 능력(Counter-nuclear capability)은 꾸준히 증강될 수밖에 없으며, 북한은 그들의 경제를 더 피폐하게 만들 군비 경쟁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 시간이 필요한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핵 위협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약속을 위반하려는 북한의 욕망을 봉쇄할 수 있다.
셋째,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 우리가 그럴듯하게 생각하는 경제 구상이 아니라 북한의 선호를 반영하고 세계가 참여할 수 있는 국제적 보상 프로그램이 제시돼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가장 큰 목적이 한국에 대한 위협 제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점을 부각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이 인권 문제를 얼마나 악화시키고 있는지도 지적해야 세계가 우리의 구상을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다.
지난 8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을 공표함으로써 핵무기에 대한 여전한 집착을 보였고, 핵을 재래무기처럼 쓸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을 드러냈다. 이제 담대한 구상이 더 담대해져야 할 때다.
* 본 글은 09월 26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