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및 의전은 A+, 정상 간의 유대 및 허심탄회한 대화는 B+, 정상회담 합의문은 B0!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다. 잔치는 끝났고 이제 대차대조표를 조용히 맞추어보며, 다가올 새로운 외교전을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의전, 정상 간 유대, 합의문 이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때 중국의 의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하는 이유, 그리고 작년 11월 한미정상회담 합의문을 둘러싼 미국의 `인도-퍼시픽 전략` 논쟁을 보면 각각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정상회담은 의전으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행사를 의미 있게 치름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고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군사분계선 월선에서부터 환송 공연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잘 기획됐다. 이러한 세심한 준비를 통해 우리의 따뜻한 환대를 북측에 알렸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커다란 만족감을 표했다.
정상회담은 국가 대표 지도자 간의 대화다. 정상 간 친근한 유대감 형성은 곧 국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상징한다. 남과 북은 비록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아니지만 정상 간 유대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더욱 크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유대감은 남달랐다. 회담 내내 시종일관 화기애애했고, 도보다리 산책 중 이루어진 친근한 대화와 환송 공연에서 손을 맞잡은 훈훈한 모습은 남북관계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낳았다.
다만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끝내 김정은 위원장의 입에서는 `비핵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은 철저히 계산된 행보를 하는 모습이었다.
판문점 선언은 그 구성이나 표현에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체제 구축이 잘 기술돼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진전을 봐야 했을 핵 문제는 그 중요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형식적으로 평화체제의 일부로 그것도 가장 마지막 세부 항목의 하나로 기술됐으며, 내용상으로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나름의 성과가 `핵 없는 한반도`와 `공동의 목표`라는 표현으로 의미가 퇴색됐다.
사실 비핵화면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한다. 불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반면 핵 없는 한반도는 과거 북한이 남북 간 상호사찰이나 주한미군 전략자산 철수를 언급할 때 늘 등장하던 말이었다. 구체적 비핵화 조치가 아닌 추상적 목표, 그것도 남과 북이 함께 지향하는 공동의 목표로 기술된 것은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상징한다.
판문점 선언의 다른 내용은 자산과 부채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구체적으로 얻어낸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신뢰 구축에 기여할 수 있지만 왜 개성에 설치하는지 의문이다. 적대행위 종식은 좋으나 왜 확성기 시설 철폐까지 합의해 주었는지, 비핵화는 시한이 없는데 종전선언은 왜 올해 내로 기술했는지 앞으로 지혜를 모아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정상회담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5월 중순 한미정상회담과 5월 말, 6월 초로 예정된 미·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의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서 한미 정상 간 통화는 매우 적절했다. 이처럼 북한 비핵화 문제에 관한 한미 간 긴밀한 의견 조율을 통해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러시아를 견인하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만들어 가는 일도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다 보면 북한을 배려하게 되고, 그 결과가 종종 판문점 선언과 같이 우리의 우선순위가 강하게 반영되지 못한 합의로 귀결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리 소중한 관계라도 협상은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
* 본 글은 04월 30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