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열 포졸이 한 도둑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작정하고 시도한 나쁜 짓은 막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쟁점이 된 북한산 석탄 역시 중국 선박이 러시아에서 환적해 국내로 들여온 만큼 그 추적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제재에 구멍이 생기면 비핵화는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고, 현재 한국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모든 경제 제재는 당하는 쪽이나 가하는 쪽 모두에 피해를 유발한다. 그래서 이들은 제재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우회 방안을 강구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적 세탁’이다. 실제로 최근 대북 제재 회피 시도는 두세 나라 이상을 거치고 있어 그만큼 파악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 같은 ‘도둑’ 행위를 잡아내는 것이 유엔 제재위원회의 임무이고, 그간 한국과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이 ‘열 포졸’의 역할을 해 왔다. 북한산 석탄 유입은 해프닝일 수도 있다. 액수도 미화 32만 달러면 그리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금 우리 정부에 과연 도둑을 잡으려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올 초 남북대화가 진행되면서부터 ‘대북 제재’는 금지어가 된 듯하다. 비핵화 협상은 제자리인데 대북 압박의 나사가 먼저 풀리는 모양새다. 대북 제재 위반 사례는 제재위원회의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 전부 다가 아닐 것이다. 솔선수범도 모자란 판에 한국이 제재의 구멍이 된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기대와 달리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장기전으로 가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이야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비핵화 대화의 진전이 어렵다는 걸 인정하듯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고 한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이 트럼프 행정부에 먹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영향력 행사 수단인 대북 제재가 뚫리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다. 오늘 새벽 미 국무부가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 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 일방적 조치를 하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의 후세에 핵 위협을 넘겨주는 부끄러운 정부가 되지 않으려면 다시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을 제대로 복원해 비핵화 요구를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먼저 제재를 완벽히 이행해야 한다. 북한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비핵화만큼은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를 향한 대북 제재 동참 목소리가 호소력을 얻을 수 있다.
철저한 대북 제재 이행은 한·미 공조에도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다. 결국, 비핵화 협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중국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현재 미·중 간 관세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다면 북핵(北核) 폐기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때 미국이 일부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중국에 더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먼저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시현해야 한다.
끝으로, 남북경협(經協) 관련 메시지에 더 신경 써야 한다. 현실적으로 경협은 대북 제재 해제 이후에야 가능하다. 사전 준비라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국제사회가 오해할 수 있다. 한국도 준비하는데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북한의 협상력만 높여준다. 경협 속도를 올리다 보면 북핵 폐기는 더 늦어질 수 있다.
* 본 글은 7월 20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