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확정되면서 이제 우리도 새로운 한·미 관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됐다. 적지 않은 이들이 동맹을 신뢰보다는 이익 중심으로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시각이 한·미 방위비 분담 대폭 증액에 대한 압박, 북·미 정상 간 ‘브로맨스’의 재현과 물밑 거래 그리고 결국 한·미동맹의 위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그런데 과연 신뢰와 이익이 서로 대치되는 개념일까.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신뢰만 강조하는 동맹이 어떤 운명에 놓이는가를 우리는 남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사례에서 이미 본 적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의 3가지 요소 중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을 뿐 공통의 위협 인식이나 신뢰의 중요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이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동맹 사이의 ‘공정’한 부담 분담은 한·미동맹의 오랜 과제였다. 1991년부터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이 체결된 이후 논쟁거리는 과연 어느 수준의 분담이 적정한가에 대한 것이었고, 우리는 2000년대 이후 궁극적으로는 일본이나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군 주둔 경비의 60% 선을 부담할 것이지만 당장은 곤란하다는 논리를 주로 사용한 반면 미국 측은 가능한 조기에 한국도 선진 동맹국 선의 비용 분담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일관성인데, 현재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 수준이 적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미국 측에 대해 방위비 산정에 대한 투명한 근거를 강력히 요구해야 하고, 미국 측 요구가 합리적이지만 당장 수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언제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미국의 요구 수준을 맞춰가겠다는 중장기 계획이 제시되는 한편 이에 따라 협상마다 분담금 증액폭이 조정돼야 했다. 우리가 일관적 원칙에 충실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담 분담은 한·미동맹의 역할 확장과도 연결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와 지역 질서 유지 차원에서 부담 경감을 위해 한·미동맹 역시 한반도를 벗어나 역할을 점차 확장해줄 것을 바랐고, 이는 미·일동맹의 지역동맹화 이후 더욱 강해졌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 역시 북한 위협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주변국과의 협력 관계를 고려할 때 당장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미동맹을 한반도에 고착시키는 동안 우리의 시각 역시 한반도에 머물렀고, 트럼프 당선인처럼 한·미동맹은 한국을 ‘지켜주기(protect)’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미국인도 늘어났다. 우리가 그동안 절감하지 못했을 뿐 방위비 분담과 한·미동맹의 지역 역할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커질수록 이는 주기적으로 한·미동맹으로 인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분명한 미래 비전과 논리를 가지고 동맹 파트너를 상대하라는 이야기다. 또한 변화해가는 미국인들의 동맹관을 고려해 우리의 대미 공공외교 방향도 더욱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마련돼야 한다. 이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새로운 문제의 발생이라기보다는 유보됐던 오랜 과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70년 이상 유지해온 동맹 파트너인 우리가 공통 위협인 북한보다 거래가 안 될 이유가 없고, 우리는 각종 부담 분담 이슈의 해결을 통해 미국이 북한과의 물밑 거래에서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이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히말라야의 추운 고산에서 매번 날이 새면 둥지를 짓겠다고 다짐했다가 날이 따스해지면 이를 잊어버리고 다시 밤의 추위에 시달리며 후회한다는 야명조의 행태를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 본 글은 10월 11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