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군사력 증강 양상은 우리가 경계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뿐만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은은 금년 3월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핵추진전략원잠)’의 건조현장을 시찰하고, 4월에는 5000t급 신형 다목적 구축함 ‘최현함’의 진수식에 참석했다. 5월 21일에는 동급의 2번함이 등장했고, 5월 17일에는 신형 공대공미사일의 실사격 훈련이 있었다. 신형 구축함과 잠수함은 모두 핵 투발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는 동시에 재래전력으로서도 적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다. 2021년 1월의 제8차 노동당대회 이후 ‘선택과 집중’ 선에서 선별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던 재래군사력 건설에도 북한이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이 상당한 재원을 투입해야 하는 구축함과 잠수함 등의 획득에 나선 것은 북·러 밀착을 바탕으로 자금과 물자, 그리고 관련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지원받고 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김정은이 호언장담한 ‘원양작전함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 재래군사력 균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북한의 무기체계나 병력이 양은 많으나 성능 면에서는 우리에게 한참 못 미치고, 핵 위협만 안정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면 북한의 도발이나 침공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는 기존의 계산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재래군사력 면에서 우리를 따라잡기 시작하면 ‘핵그림자’를 활용한 협박 역시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북한의 핵 개발이 대규모 재래전력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선택으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핵전력과 재래전력은 상호보완성을 지니는 것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핵전력에만 집중하면 모든 상황이 핵무기 공방으로 귀결될 수 있기에 선택지가 심각하게 제약되기 마련이다. 북한 역시 이러한 딜레마를 알고 있기에 재래군사력 현대화를 꾀했으나 그동안은 경제 상황으로 진척이 더뎠고, 북·러 밀착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의 발 빠른 재래군사력 증강으로 인한 무력감에 빠져 평양의 선의만을 기대하는 자세를 보이거나, 미래의 위협에 무조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국방개혁 혹은 국방혁신을 통해 첨단 정예군을 건설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고, 그동안 우리가 착실히 건설한 미래전 대비 군사력은 북한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북한이 재래군사력 면에서도 우리에 대한 추격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여 이미 예정된 전력증강 계획들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조기 달성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적정 국방예산의 확보가 중장기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준비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한·미동맹과 한·미 연합전력의 변함없는 유지 및 증강 역시 필수적이다. 우리가 북한에 비해 현격한 질적 우위에 있다고 자신하는 근거에는 주한미군과 전시 미군 증원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의 보장성이 강화되어야 북한의 핵 위협과 재래군사력 모두에 대한 대응능력이 갖추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미국 언론이 보도한 주한미군 일부 규모 조정 가능성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도발 욕망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분명히 상기시켜야 한다. 북·미 협상의 카드로 주한미군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핵 및 재래군사력 건설은 ‘자위적’이라는 북한의 강변, 평양의 ‘합리적 안보우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글은 5월 26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