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해 말의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이후 올 들어 남북한 ‘국경선’(1월 6일)과 ‘해상 국경선’(2월 14일)을 언급했고, 지난 9일에는 남북 도로·철도 연결로를 완전 폐쇄하고 이 지역을 요새화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우리와의 물리적·심리적 단절을 위한 행보를 진행해 왔다. 이로 인해 북한이 지난 7~8일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두 국가론과 서해 ‘해상 국경선’을 명문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남북 관계의 대립과 절연을 강조하면서도 헌법에 반영하지 않은 데에는 적대적 두 국가론이 지니는 자기 부정과 논리적 모순에 대한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첫번째 고민은 남북 관계를 새로 규정하고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선대의 유산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 이상으로 통치철학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 창건 이후 자신을 중심으로 한 권력구도 창출을 위해 한반도에서의 ‘미완의 혁명론’을 표방했다. 이는 6·25 남침의 논리적 기반이 됐다. 1960년대 들어 김일성은 당 독재 대신 1인 독재를 확립하기 위해 ‘주체사상’에 따른 수령론을 내세웠는데,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영도자로서 수령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두 국가론은 이러한 혁명 과업의 포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수령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수령의 존재가 부인되면 혈연 계승으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은의 정치적 토대 자체가 상실된다.
둘째, 북한은 고도의 동원사회이고 대중 동원을 통한 ‘자강론’으로 각종 난국을 돌파하려 해 왔다. 북한 지도자들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혁명 완성을 위해서는 북한 내 혁명 역량이 강화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충성과 노동력을 요구했다. 두 국가론을 가지고는 ‘왜’ 내핍과 억압 속에서, ‘누구를 위해’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기존 혁명 노선을 변경했는지 주민들을 제대로 설득시킬 수 없다. 김정은에게는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달리 주체사상의 신탁(神託)을 달리 해석할 만한 뚜렷한 사상적 참모도 눈에 띄지 않는다.
셋째, 두 국가론은 결국 북한의 체제 경쟁에서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북한은 조국통일 구호를 강하게 내걸었고, 이는 당시 남북한 국력 격차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평양의 자신감을 반영한 행동이었다. 우리가 북한을 추월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도 북한이 ‘민족통일’ 구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 데에는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 병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자칫 위축과 자신감 상실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칭하고 핵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오히려 남북한이 별개 국가라고 주장하는 평양 지도부를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더욱이 ‘두 국가’를 강조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60여배(2023년 통계청 추계 한국 2161조8000억원, 북한 36조2000억원)에 달하는 초라한 성적표가 더 드러날 수도 있다.
이같이 북한이 헌법에 두 국가론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통치 이념상 발생할 수 있는 자기 부정과 대남 열등감 자인 등을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고, 노동당 우위라는 북한 체제 특성상 ‘조국의 통일발전과 융성번영’을 규정한 노동당 규약이 먼저 수정돼야 할 필요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당분간 남북한이 별개 국가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지만, 김정은의 고민은 이러한 문제가 북한 스스로 변화하기 전에는 해결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 본 글은 10월 14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