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종전 후 약 70년간 패권국 지위를 유지해 온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론’에 시달렸다. 그 사이 중국은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미국을 위협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경기회복과 셰일가스 혁명 등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고속성장세가 주춤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미중(G2)의 국력 변화에 따라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은 동북아 질서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동북아 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미국 사이 갈등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에 대한 전망은 중국의 부상이냐, 아니면 미국의 패권 유지냐로 요약된다. 중국의 부상을 강조하는 측은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상대할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다고 본다. 반대로 미국의 패권이 유지된다는 데 무게를 둔 입장은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력을 갖추고 글로벌 가치를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전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어느 국가를 패권국으로 여기고, 협력상대로 선택하는지 살펴봤다.
미국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였다. 미국 호감도는 조사를 시작한 2010년 이래 항상 중립(‘전혀 호감 없음’ 0점, ‘매우 호감 있음’ 10점)을 의미하는 5점 대 이상을 기록했다. 주변국인 일본, 북한은 물론 최근 부쩍 가까워진 중국과 비교해도 미국에 대한 호감은 뚜렷했다. 또 한중관계를 협력적인 것으로 인식한 한국인은 50~60%대였는데, 한미관계를 그렇게 본 한국인은 70~80%대로 더 많았다. 그만큼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는 깊었다.
한국인은 ‘미국’ 하면, 자본주의 경제(시장경제)체제(28.6%), 군사력(26.7%), 민주주의 정치(20.6%)를 떠올렸다. 미국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역사 속에 비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61.4%의 한국인은 남북분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치경제에 미친 미국의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63.2%는 미국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장애물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81.5%는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고 봤다. 한국과 미국이 이해를 공유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44.5%는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가 다르다(이해관계 같다: 55.5%)고 생각했다. 이는 한국인의 실리적 판단을 보여준다.
현 시점의 미중 패권대결에서 한국인은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정치, 경제에서 미국을 강대국으로 본 비율은 올해 각각 84.6%, 63.6%로 다수였고, 중국을 꼽은 비율은 정치 4.9%, 경제 29.9%에 그쳤다. 그러나 한국인은 향후 중국이 경제에서 미국을 제치고, 정치에서 미국과 비슷한 위치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향후 경제적 영향력이 가장 클 나라로 중국 70.5%, 미국 20.2%을 꼽았다. 정치는 미국 47.6%, 중국 39.5%였다.
미국과 중국이 왜 강대국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한국인은 각각에 대해 다른 이유를 꼽았다. 미국에 대해선 전통적 요인인 경제군사력(‘경제규모’+’국방예산’)을 꼽은 비율이 53.0%로 가장 높았고, 과학기술과 문화(24.5%)가 그 다음이었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에는 잠재 성장요인으로 볼 수 있는 인구 및 영토(‘세계 최대의 인구’+’거대한 대륙의 국토’)라고 한 비율이 52.2%로 가장 높았다. 경제군사력(‘경제규모’+’국방예산’)은 37.0%로 그 다음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하드파워 경쟁이 치열했지만, 소프트파워(Soft Power)에서는 미국의 우위가 분명했다. 먼저 한국인은 중국 문화(57.2%)보다 미국 문화(68.9%)의 영향력 확대에 더 긍정적이었다. 특히, 20대(77.4%)가 긍정적이었다(60세 이상: 76.2%). 이러한 경향은 언어 경쟁력 면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났다. 최근 중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에도 66.7%의 한국인은 중국어보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국어를 선택한 비율은 27.2%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지지율과 상관없이 한국에서는 미국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소프트파워의 근원이었다. 국가수장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 오바마 대통령의 호감도는 6점 대 이상을 유지했고 조사대상 중 항상 수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중관계 개선에 힘입어 거세게 추격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비교해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은 뚜렷했다. 2015년 3월 호감도는 오바마 6.21점, 시진핑 5.24점으로 차이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 호감도는 미국 호감도(2015년 3월: 5.93점)와 비교해도 높았다.
소프트파워에서 우위를 점한 미국은 국제사회 리더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수의 한국인(72.4%)은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리더 역할을 긍정적으로 봤다. 중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본 한국인이 2013년 29.4%에서 2015년 52.1%로 늘었지만 미국에 미치지는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수의 한국인(58.7%)은 미중 대결구도가 지속되면 미국과 협력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을 택한 비율은 30.5%였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미국의 건재를 믿었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층에서 두드러졌다. 2000년대 초 반미정서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적이 있지만 최근엔 미국에 대한 신뢰가 젊은 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젊은 층은 중국의 부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음에도 중국 보다 미국의 리더십을 긍정적(20대: 79.9%, 30대: 72.8%)으로 평가했다. 향후 우리나라의 협력 파트너에 대해 물었을 때에도 20대는 74.8%가 중국 대신 미국이라고 답했다. 이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었다. 영어와 중국어 중 더 중요한 언어를 물었을 때에도 20대는 75.5%가 영어(중국어: 19.9%)라고 답했다.
최근 동북아 내 미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인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부상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리더십이 강력한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봤다. 많은 한국인은 국제사회에서의 정치력과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아직도 중국 보다 앞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비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지만 한국인에게 미국은 아직 충분히 매력적인 국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