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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보고서는 혁명 발발과 뒤이은 독재 몰락이 왜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인지 분석한다. 혁명은 예고 없이 일어나 절대권력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독재는 억압과 감시, 통제로 유지되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정확한 여론 형성을 막는다. 따라서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는 물론 시민들까지도 사회 구성원의 불만이 혁명으로까지 이어질 만큼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다. 혁명 직전의 전조현상도 눈치채지 못한다.

1979년 이란,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혁명과 독재의 몰락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 CIA는 이란 혁명 발발 6개월 전의 보고서에서 “샤의 권력이 한층 공고화되었기 때문에 1980년대에도 이란 정치 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샤가 이란을 빠져나가기 4일 전에 작성된 보고서 역시 “샤의 반대 세력들은 서로 경쟁하느라 함께 저항을 조직할 수 없다. 최근 일련의 반샤 시위가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Mousavian and Shahidsaless 2014, Richelson 1997). CIA는 빅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 대한 예측 보고서도 심하게 빗나갔다고 회고했다(Morell and Harlow 2015).

혁명 이전의 상황은 독재 체제가 임계점으로 치달아 폭발 직전의 압박을 겨우 버티는 단계이다. 공안정치, 인권유린, 부정부패, 무능과 비효율성, 불평등과 빈부격차, 생활고와 실업 등 독재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은 반정부 혁명을 일어나게 할 충분한 조건들이다. 하지만 독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어려움들은 체제의 약점일 수 있으나 정권 몰락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정권 생존의 가장 큰 위협은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가 체제의 인위적 안정성과 실제의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최정예 비밀경찰과 군이 주도한 이란, 튀니지, 이집트의 철권 공포정치 하에서 시민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철저히 숨기고 거짓 충성을 보였다. 지배 엘리트도 동료의 변심 가능성을 쉼 없이 체크하면서 충성 경쟁을 벌였다. 불안하나마 유지되는 협력과 안정 속에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 시위 선도그룹, 일반 시위대, 미국 정부 어느 누구도 장기 독재자가 비무장 시위대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혁명의 출발은 독재 정권이 돌발 사고로 국가 장악력과 여론 통제력을 잃는 순간이다.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독재들 가운데 혁명 발발의 여부와 선후가 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혁명은 일단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된다. 우발적 계기로 시민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나오면 독재자는 예상치 못한 거센 분노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장기 독재의 여론 통제와 감시로 인해 독재자는 자신의 지지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한다. 냉혹하던 독재자가 우왕좌왕하며 단호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면 엘리트는 정권의 미래를 의심하고, 시위대는 혁명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강경 대응이 아닌 유화책 카드를 꺼낸 독재자의 변화에 측근 엘리트와 시위대 모두 흔들리고 만다.

이때 측근 엘리트의 집단적 불안, 시위 선도그룹의 다발성 집회, 혁명 성공 여론의 확산이 동시에 진행된다. 상호 의존적 눈치보기 구조에서 엘리트 한 명의 이탈 움직임은 주변 엘리트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일반 시민이 시위 참여를 두려워할 때 영웅적 소수가 시위를 끌고 사람들을 독려한다. 점차 혁명 성공에 대한 확신이 번지면서 엘리트는 집단적 이탈, 시위대는 거센 저항을 시작한다. 이어 독재 몰락의 희망적 여론이 분기점을 향해 신속히 확산된다.

중동의 독재자 샤, 벤 알리, 무바라크 역시 숨가쁘게 진행된 혁명 과정에서 독재자의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장기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강경 엘리트 처벌과 내각 총사퇴를 단행했으며, 대국민 사과 연설을 통해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이는 엘리트가 기대했던 정권 수호의 결연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독재자의 새로운 메시지는 측근 엘리트 간의 결속을 깨뜨렸고 결국 군부의 중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샤, 벤 알리, 무바라크가 강력한 힘의 과시 대신 전향책을 발표하자 시위대는 더욱 과감히 독재자 퇴진을 요구했다. 시위대 조직화의 배후에는 독재의 폭력을 두려워 않는 이란 울라마 성직자, 튀니지 지방 노조원, 이집트의 인터넷 활동가 전위그룹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이란과 아랍의 사례처럼 북한의 독재 역시 매우 극적인 모습을 띠며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정은이 한 순간 긴장을 놓거나, 뜻밖의 오판을 할 경우 측근 엘리트의 불안이 시작될 것이다. 곧 엘리트와 시민들은 미래에 대한 계산과 눈치보기에 돌입할 것이다. 숙청이 난무하는 3대 세습 독재 하에서 엘리트의 충성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침묵하던 시민들 역시 새로운 여론에 맞춰 연쇄적으로 태도를 바꿀 것이다. 여론 통제와 감시가 심할수록 불만의 분출은 돌발적인 상황으로 이어져 북한의 불안한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는 독재자에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목차

들어가며

1. 혁명 발발과 독재 몰락의 불가측성
(1) 공포정치와 독재자의 오판
(2) 엘리트의 집단적 눈치보기와 변심
(3) 시위 선도그룹의 등장과 여론 확산
(4) 사후 인과관계 추적의 오류

2.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 샤 왕정의 몰락
(1) 철권통치자 샤의 유화책
(2) 빠르게 흔들리는 샤의 엘리트
(3) 성직자 전위그룹과 반샤 시위의 확산
(4)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3. 2011 아랍의 봄 혁명과 튀니지·이집트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
(1) 당황한 벤 알리와 무바라크의 강경책 철회
(2) 튀니지·이집트 엘리트의 선택: 독재자와 거리두기
(3) 튀니지 지방 노조원과 이집트 인터넷 활동가의 시위 선도
(4) 아랍의 봄 혁명 이후

4. 북한 정권 미래의 불가측성: 여론 부재와 독재의 극적 붕괴

나가며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연구부문 / 중동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외교부의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국제개발협력 등이 있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Asan Institute 2012,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혁명의 우발성과 다양성: 2011년 ‘중동의 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 2011), “세계화 시기 자본의 민주적 함의: 이슬람 자본의 성장에 따른 무슬림 포괄 정당의 부상에 대한 이론적 고찰” (국제•지역연구, 2010),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