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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2018년 한 해 국내외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이 북핵폐기를 핵심 의제로 삼고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와 달리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이행을 둘러싼 이견과 대립으로 북핵폐기에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이 우세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본 논문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3대에 걸친 세습 정권의 집요한 핵보유 전략과 더불어 북한의 핵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쪽으로 새로운 국제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김일성 시절부터 한국과 미국이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위해 만들어낸 ‘비핵화’(denuclearization) 용어를 차용해서 겉으로는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연막을 치고 내부적으로 핵개발에 전력을 다했다.1 1991년 남북한이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한 이후 지금까지 미북 회담, 4자회담, 6자회담을 통해 많은 합의가 체결되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데 실패했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의 합의위반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던 북한이 국제적 압력을 회피하고 시간을 버는 데 국제적 합의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정권의 핵개발 전략은 성공했고, 김정은이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2 더 나아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공언하면서 핵무력은 선대의 염원이고 인민의 보검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을 믿음직하게 지켜낼 수 있는 최강의 국가 방위력을 마련하기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장군님과 위대한 수령님의 염원을 풀어드렸으며 전체 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었습니다.”

한편 탈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역의 강대국들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자국 중심의 지역질서로 대체하려는 강대국 경쟁시대가 도래한 것도 북핵폐기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되었다. 현재 국제사회는 상호협력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상생의 질서를 구축하려던 탈냉전시대를 지나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헤게모니 장악을 시도하는 혼란기에 들어섰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북한 핵문제를 고리로 강대국 경쟁을 벌이면서 한반도가 강대국 각축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21세기 강대국 경쟁시대에 현상변경세력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 과정을 분석하고 강대국 경쟁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임을 밝힌 후 핵을 보유한 북한을 관리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통일을 도모하는 국가전략 차원에서3 한국이 취해야 할 정책방안을 제안하였다

 

Ⅱ. 강대국 경쟁시대의 부활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는 전쟁과 분열, 갈등과 경쟁의 역사를 뒤로 하고 ‘민주적 자본주의’(democratic capitalism) 모델에 입각한 새로운 ‘지구적 통합’(global convergence)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로 충만했었다.4 냉전의 종식은 ‘역사의 종언’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이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Fukuyama(후쿠야마)의 주장은 탈냉전시대의 국제질서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토대로 공존, 공영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표방한 것이었다.5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냉전시대의 적대국들도 개혁개방과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고 사회안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인식되었다.6 그 바탕에는 인간의 역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계몽주의적 신념과 과거의 적대국들이 변화하도록 인내하면서 기다리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7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은 후 맞이한 새로운 세상인 만큼, 법과 제도에 입각한 보다 완벽한 국제시스템을 만들어서 공존, 공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구적 통합은 꿈에 불과했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Kagan(케이건)은 세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은 신기루이며 강대국 경쟁이 재현되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개별 민족국가의 야망과 국가간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강대국간 역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지위 다툼과 영향력 경쟁이 가열되고 있으며,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이슬람 극단주의와 세속주의의 마찰 등 구시대적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가 통합을 시도했던 짧은 시기를 지나 다시 ‘분열의 시대’(an age of divergence)로 들어섰다는 것이 케이건의 평가이다.8

21세기에 강대국 경쟁시대의 재현을 주도하는 러시아, 중국, 이란은 ‘강대국’(great power),9  ‘중심국’(central power),10 또는 ‘3대국’(big threes)으로11 명명되고 있다. 이들 3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s)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Mead(미드)는 미국 중심의 유라시아질서에 반감과 공포감을 가진 이들 3국이 기존의 세력균형과 규범이 자국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지정학이 작동하는 방식에 도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12 Herman(허만)은 21세기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주의’(-ism)의 시대를 벗어나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7년 이전의 시대로 돌아갔으며, 이제 크고 작은 주권국가들이 힘과 외교, 동맹에 의존해서 국익을 실현하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힘이 중요한 시대로 회귀했다고 평가했다.13 역사학자 MacMilan(맥밀란)도 현재 상황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진단했다:14 ①급격한 변화와 발전으로 세계가 가까워지고 문명화되어 전쟁은 더 이상 분쟁해결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오판하고(The Promise and Peril of Globalization), ②역사문제와 국민감정 등이 기존 강국과 신생 강국의 경쟁관계를 악화시키며(Rising Tides of Nationalism and Sectarianism), ③약소국간 적대감으로 동맹인 강대국들이 무력충돌에 휩싸일 위험이 높고(The Temptation of the Client State), ④대규모 전면전은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존재하며(The Complacencies of Peace), ⑤전쟁이 의지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힘으로 신속하고 제한적인 공격이 가능하다고 오판함(The Ultimate Deterrent and other Delusions).

미국과 서방 주도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이들 3국이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의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이건은 21세기 강대국 경쟁시대의 특징은 계몽사조 출현 이후 20세기까지 국제질서를 지배했던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 부활하여 지정학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파악했다.15 허만은 새로운 시대는 지정학이 강조되는 강대국 경쟁시대로서 마찰과 경쟁이 일상화되지만 강대국간의 경제적, 군사적 세력균형으로 큰 전쟁이 없는 안정적인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16 미드는 미국이 그동안 강대국 경쟁시대 부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이유로 우월주의에 함몰되어 외교에서 지정학, 세력균형, 전략의 요소가 실종되었고, 외교정책에서 도덕적, 법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했으며, 미국이 개입주의에서 탈피해서 과거의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에 머물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했음을 지적했다.17

 

. 미국의 상황인식과 대응전략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탈냉전시대의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강대국 경쟁시대의 부활을 냉엄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전략을 뒷받침하는 3대 문건이 강대국 경쟁시대의 재현이 국가안보에 위협이라는 공통된 인식에 기초해서 분야별 전략과 태세를 제시하고 있다.

1.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국가안보전략서는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경쟁적인 국제정세에 직면했다고 보고, 소위, ‘4+1“(중국·러시아·북한·이란 + 테러조직)의 도전을 당면한 위협으로 규정했다:18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훼손하고 미국의 힘과 영향력 및 이익에 도전하며,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를 막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정보를 통제하여 사회 억압과 영향력 팽창을 시도하는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s)이다. 북한과 이란은 지역의 불안정을 야기하고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며 자국민을 억압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s)이고, 초국가 테러조직은 미국에 대한 공격 시도를 멈추지 않는 테러집단이다.

국가안보전략서는 ‘4+1’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과 경쟁하면서 지역적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해 기술과 정보를 사용해서 경쟁을 가속화하는 ‘경쟁자’(rival actors)로 규정하고, 이들이 선전수단을 동원해서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반서구적 관점을 옹호하면서 미국 국민, 동맹국 및 파트너를 이간시키기 위해 거짓정보를 확산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금의 도전적 상황이 지난 20년간 미국이 대외정책 수립의 토대로 삼은 가정, 즉 상호 협력하면서 국제제도와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통해 경쟁자들을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경쟁자들은 자체 개혁은 하지 않고 주요 경제기구를 왜곡하거나 약화시켰으며 자유무역을 악용하여 합의이행을 취사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 대우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편입시키려던 시도가 실패했고 그 동안의 허니문기간이 끝났음을 자인한 것과 같다. 국가안보전략서는 강대국 경쟁이 부활한 현 상황을 “역사에서 핵심적인 연속성은 힘의 대결”(A central continuity in history is the contest for power)이라는 함축적인 표현으로 설명했다. 다만 경쟁이 곧 적대감을 뜻하거나 분쟁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이 성공적으로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강조하면서 힘의 우위를 토대로 경쟁자들과 협력을 추구하고, 특히 외교를 통해 대화를 유지하면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2.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

트럼프 행정부의 NPR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비전에 따라 핵무기의 역할 축소와 핵군축을 선도하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19  오바마가 중·러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선의의 정책을 폈지만 양국이 신형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등 세계평화에 역행했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국을 위협하고 이란도 핵무장 잠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핵확산과 핵테러 위협도 높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안보환경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NPR은 강대국 경쟁시대의 재현에 대응하여 국가안보전략에도 명시된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 유지’(preserve peace through strength)에 입각해서 기존의 핵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핵무기 수명연장 프로그램과 같이 전임 정부의 일부 정책은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안보상황에 맞는 새로운 전략과 그에 상응하는 핵전력 확충 계획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국가안보전략에서 핵심 적대세력으로 규정한 ‘4+1’이 제기하는 핵위협을 미국의 핵전력이 대응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했다. 러시아는 전략 및 전술 핵무기를 증강하면서 핵확전을 통한 우위 확보 전략을 추진하고, 중국도 기존 핵전력의 현대화는 물론 특정한 국가안보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맞춤형 핵능력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힘으로 주변을 억압하고 유럽의 지형을 바꾸려 하면서 ‘중거리핵미사일폐기조약’(INF)을 비롯한 각종 군비통제조약을 위반했고,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 등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양국은 핵의 역할을 줄이고 핵군축을 통해 평화를 증진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역행한 것은 물론 우주 및 사이버 공격능력과 반접근거부(A2AD) 능력을 확충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핵도발이 지역은 물론 세계 평화를 위협하며 이란의 핵야망도 해소되지 않은 우려사항이다. 북한은 수 개월 내에 본토를 타격할 핵미사일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며, 화학, 세균, 재래식 능력과 극도의 도발적인 언행으로 인해 미국과 동맹의 가장 긴급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협이다. 아울러 북한의 핵개발은 핵능력이 야기하는 직접 위협, 북한 핵이 제3자의 손에 들어갈 확산 위협 및 다른 비핵국의 핵무장으로 인한 핵 도미노 위협 등 3중 위협을 제기한다. 이란도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 종료되는 2031년 이후 핵프로그램을 재개한다면 1년 안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핵테러는 국제사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위험이며 테러집단은 핵을 손에 넣으면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핵테러를 저지하는 것은 미국 안보의 우선적 과제이다.

특히 NPR은 러시아와 북한을 하나로 묶어서 양국이 핵을 중시하는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명시적으로 핵위협을 높여왔다고 지적하면서,20 중국까지 포함한 3국이 사이버와 우주 공간에서 도발적인 행동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21 러시아가 핵무기의 선제 사용이나 핵확전 위협을 통해 유리한 방향으로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는 오판 하에 핵사용을 강조하는 핵전략을 채택했다고 우려하면서 북한도 러시아와 같이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핵으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한반도 전쟁에서 전술핵의 사용이나 사용위협을 통해 핵확전 우위를 확보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북한 지도부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국가방어전략서(National Defense Strategy)

국가방어전략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과 강대국간 장기전략경쟁의 특징을 갖는 복잡한 세계안보정세 속에서 위협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전쟁 양상의 변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국방부의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2 구체적으로, 미국의 당면한 안보위협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현상변경세력인 중국 및 러시아와의 장기전략경쟁은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핵심적 도전이다. 중국은 군사 현대화, 영향력 확대 공작, 경제적 약탈을 이용해서 주변국들을 압박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게 재편하려 한다. 중국은 단기적으로 인도·태평양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장래에는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군현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러시아는 주변국들의 정치, 경제, 외교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NATO를 무력화하며 유럽과 중동 지역의 안보와 경제구조를 자국에 유리하게 변경하려고 시도한다.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안보의 초석인 동맹과 파트너십에 기초한 국제질서의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원칙과 규범을 위반함으로써 기존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둘째, 불량정권인 북한과 이란은 핵을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하면서 지역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 북한은 WMD와 미사일, 재래식 및 비대칭 전략을 배합해서 정권유지와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란은 테러지원, 대리전 확대,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지역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경쟁하고 있다. 현상변경세력과 불량정권은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고 주권존중의 원칙을 위반하며 모호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육상, 해상, 공중,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도전받는 것은 세계안보환경의 또 다른 변화이다.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전쟁의 양상 변화도 안보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 테러집단, 초국가범죄조직, 해커 등 다양한 비국가행위자들이 보다 정교한 기술적 능력을 토대로 안보환경을 저해하고 있다.

 

Ⅳ.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의 전략적 성격

 
1. 미국의 군사적 대비 차원

미국의 3대 안보전략문서가 강대국 경쟁시대에 현상변경세력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북한을 미국과 서방 중심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불량국가이자 경쟁자로 규정한 것은 북한 핵문제가 더 이상 한반도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4자회담, 6자회담 등 다자회담이 있었고 유엔안보리 결의 등 유엔차원의 제재가 이뤄지는 등 외교적 차원에서 북한 핵문제가 더 이상 남북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데는 충분한 공감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위협과 장래에 예상되는 위험에 대비하는 전략을 강구하는 문서에 북한이 미국의 주요 위협요인으로 일관되게 명시된 것은 북한 핵문제의 국제화가 다른 차원에서, 즉 우리의 동맹인 미국의 군사적 대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이 정도로 심각하게 간주하게 된 계기는 바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다. 트럼프 NPR은 북한이 재래식 국지도발을 일으키고 전술핵을 선제 사용해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러시아의 핵확전 우위전략을 답습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러시아가 전술핵 우위를 바탕으로 국지전이나 저강도 분쟁에서 다양한 전술핵 옵션을 구사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오판하는 것처럼, 북한도 러시아와 비슷하게 오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북한의 핵도발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핵억지를 유지하고 전술핵 능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적대세력도 제한적인 핵확전이나 전략적 공격을 통해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연하고 다양한 핵억지 옵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유럽에 배치된 전술핵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동북아에도 필요한 경우 전술핵과 이중용도전투기를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NPR은 적대국의 핵사용에 대응하여 핵으로 보복하는 것과 별도로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상황도 규정했다. 미국이 자국과 동맹의 핵심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보복수단으로 핵사용을 고려할 수 있는 소위, ‘극단적인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 핵테러와 ‘중대한 비핵전략공격’(significant non-nuclear strategic attack)을 포함시켰다. 핵테러의 경우 미국은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갖도록 도와준 국가, 테러집단, 비국가행위자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지울 것이며, 적대세력은 핵테러가 극단적인 상황에 해당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대한 비핵전략공격은 미국과 동맹의 민간인들과 인프라에 대한 공격과 미국과 동맹의 핵전력, 핵통제 체제 및 침입경보 능력에 대한 공격을 말한다. 이와 함께, 화학, 세균, 사이버, 우주 공격과 대규모 재래식 침략 등 다양한 비핵전략공격에 대한 핵보복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국가안보전략도 핵억지가 핵공격, 비핵전략공격 및 대규모 재래식 침략을 예방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밝혔다.23

물론 강대국 경쟁시대가 부활했다고 해서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법이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미국이 지난 70년간 유지해왔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국제사회가 미국이 북한 핵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지 지켜보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동북아의 핵경쟁, 한미동맹의 와해, 미국의 입지 상실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핵폐기를 중시한다는 맥매스터 보좌관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24 외교적 해법의 중요성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군사적 대비가 강조되는 것은 북핵능력의 확대에 따라 위협인식이 매우 높아졌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가 강대국간 대리전으로 부상하면서 외교적 해법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미·중, 미·러간 한반도 대리전 차원

Mitchell(미첼)과 Grygiel(그리지얼)은 러시아, 중국, 이란이 각각 우크라이나, 중동, 남중국해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해서 미국의 동맹국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들의 목적은 단순히 주변국에 대한 헤게모니 장악이 아니라 세계안보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25 이들 3대 현상변경세력이 공격적 외교와 작지만 대담한 군사행동을 배합해서 미국의 영향력의 한계와 동맹의 탄력성을 시험하는 소위, ‘간보기 전략’(a strategy of probing)을 구사한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 이란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원처럼, 현상변경세력이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면서 미국의 관심이 덜한 목표를 상대로 저강도 위기를 조성해서 해당지역에 대한 미국의 방어의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 배우는 한편, 미국의 동맹국들은 중·러의 간보기 전략에 대한 미국의 대응태도를 보면서 미국의 안보공약의 신뢰도를 평가한다고 보았다. 또한 현상변경세력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간보기 전략에 안보불안을 느낀 미국의 동맹국들이 자체 군사력 확충이나 현상변경세력의 관계개선 등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특정 지역의 안보위기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첼과 그리지얼은 현상변경세력의 간보기 전략과 동맹의 약화로 인해 국제사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세계 주요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략적 경쟁이 발생한다. 현상변경세력들이 전쟁은 피하면서 간보기 전략으로 미국의 동맹을 시험하고 영토확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은 미국의 안보공약을 불신하며 어정쩡한 자구책을 강구한다. 둘째, 강대국간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짧지만 강렬한 전쟁을 벌일 수 있고 두 개의 분쟁을 동시에 치를 수도 있다. 셋째, 미국이 지역차원의 전진배치를 철회하고 본토로 후퇴한다. A2AD 기술의 발달과 중·러의 핵능력을 고려할 때,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후퇴하면 다시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강대국 경쟁은 무엇보다 동맹 확보를 위한 전략적 경쟁이기 때문에 현상변경세력은 미국의 동맹을 약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간보기 전략이 현상변경세력의 핵능력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핵무기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26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간보기 전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래식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핵충돌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동맹과의 전략적 협력에 핵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북한 핵문제는 미·중, 미·러 강대국 경쟁이 한반도 차원에서 진행되는 대리전임과 동시에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대등한 경쟁자로 참여하는 강대국 경쟁의 한반도 축소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의 강대국 경쟁의 대리전으로 인식하면서 북한을 이용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동맹관계를 약화시키고 영향력을 제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중국의 공격적인 사드 배치 반대가 대표적인 간보기 전략으로 꼽힌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도 해소되어야 한다며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과 ‘쌍괘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구축 동시 진행)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중국의 북핵문제 해법을 지지하면서27 2016년부터 한미 연합훈련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러시아28 모두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양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핵폐기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가운데 한반도 상황에 긍정적인 변화를 환영한다며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안보리 언론성명 채택을 시도하기도 했다.29

둘째, 북한은 핵문제가 시작된 1991년 이후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소위, ‘비핵화 국가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30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지 등 한미가 비핵화를 위해 수용한 조치들은 북한이 비핵화 국가전략에 따라 오래전부터 요구해 온 사항들이다. 이런 조치가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은 중·러가 미국을 상대로 전개하는 간보기 전략과 일치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중·러와 함께 한 축이 되고, 미국이 동맹인 일본과 한국을 끌어 들여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재 동북아에서 북한 핵문제를 고리로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 경쟁의 실상이다. 미첼과 그리지얼도 20세기 초 러시아가 발칸의 동맹국을 활용하여 역내의 세력균형을 시험했던 것처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주저하는 것은 대리인을 활용한 간보기 전략의 일환이며 미국의 경쟁자들이 북한을 이용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안보공약과 이익수호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31

 

Ⅴ. 결론 및 정책제언

 
1. 한국의 전략적 위치 공고화 및 중장기 국가전략 수립

미국이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경쟁 기조 하의 사안별 협력’으로 규정한 것은 향후의 국제질서를 규율하는 기본 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가 북한 핵문제를 고리로 세 나라의 전략적 이익이 충돌하는 경쟁의 장으로 부상한 가운데, 한국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전략적 위치를 공고하게 다지고 정권을 이어 지속할 수 있는 중장기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에게 한미 동맹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사드포대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마치 한국이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 것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된 것은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게 한중관계는 ‘먹고 사는 문제’이지만 한미관계는 ‘죽고 사는 문제’이다. 한미동맹은 현재의 분단상황은 물론 통일이후에도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활용해야 할 자산이라는 전략적 인식이 필요하다.

강대국 경쟁은 중국과 러시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한 장기간 지속될 국제질서이자 우리에게 부과된 전략적 조건이다. 동북아에서 강대국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의 역할과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중장기 비전과 국가전략 수립이 긴요하다. 이와 관련,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가 앞으로 전개될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다음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를 만들려는 경쟁자로 규정하면서도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경쟁 기조下 사안별 협력을 추구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예고했다. 다만 양국이 정보를 무기로 삼아 자유세계의 기반인 가치와 제도를 공격하고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정보 유입은 막으려 한다며 경계했다. 둘째, 자국을 정치적, 종교적 독재체제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군사안보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중·러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셋째, 시장에 대한 접근은 물론 공동의 정치·안보적 이익을 위해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미국이 개발도상국을 어렵게 만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주도 투자에 대안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은 상대국의 문화를 따르면서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 사유경제활동과 법치를 따르는 개발모델을 추구한다며 중·러와의 차별성을 부각했다.

2. 강대국 경쟁시대에 북한 핵문제의 장기화에 대비

현재의 북핵위기는 한반도에 국한된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대리인으로 삼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는 간보기 전략의 장임과 동시에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이다. 북한도 핵개발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미중, 미러의 경쟁관계를 잘 이용해왔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중·러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한다는 것을 잘 아는 북한은 오래전부터 핵개발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노리는 비핵화 국가전략을 추진했다.

북한 핵문제가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할수록 한미가 바라는 북핵 완전폐기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러시아의 지원 하에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기존질서를 자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는 기회로 북한 핵문제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부담을 주는 지정학적 게임을 펼칠 것이다. 한반도가 북한의 핵독점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대리인으로 삼고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면서 지역 안보질서를 바꾸려는 중장기 전략게임을 벌이는 강대국 각축의 장이 된 것이다. 한반도가 강대국 경쟁의 무대가 된 만큼 북한의 핵보유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첼은 현상변경세력이 미국의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간보기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도발에 대한 보복위협으로 맞서는 ‘징벌억지’(deterrence by punishment)보다는 도발의 목적 달성을 어렵게 만들어 도발 자체를 포기시키는 ‘거부억지’(deterrence by denial)가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32 현상변경세력이 서방과의 전쟁은 피하면서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애매한 도발을 하기 때문에 징벌억지보다는 경쟁국의 도발에 비례하는 가시적인 대응태세를 완비해서 도발 시도 자체를 차단하는 거부억지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쟁국의 현상변경 시도가 초래하는 비용을 높이고 군사력을 동맹국에 전진배치하는 조치를 통해 거부억지태세를 갖추고 동맹을 안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3.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억지태세 강화

한국은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한미 핵공유체제를 구축해서 대북 억지태세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33 현재 한미 동맹의 대북억지 태세는 북한의 재래식 도발에 대한 ‘재래억지’(conventional deterrence)와 핵도발에 대응한 ‘핵억지’(nuclear deterrence)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재래억지는 휴전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한미 동맹의 병력과 화력을 휴전선 인근에 전진 배치하는 태세를 유지했다. 북한의 도발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성공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서 애초에 도발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부억지태세를 갖춘 것이다. 휴전 이후 1·21 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비정규전 성격의 각종 도발은 있었지만 대규모 국지전이나 전면전과 같은 도발은 전진 배치에 기반한 억지태세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핵억지는 재래억지와 전혀 다른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배제한 채 對北 핵억지를 미국의 ICBM, SLBM, 중거리폭격기 등 역외 핵자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역외의 장거리 전략핵자산으로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보복을 가하겠다는 징벌위협으로 핵도발을 억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영토에 미국의 핵자산이 전진 배치되지 않는 징벌억지는 북한에 핵이 없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구시대의 유물일 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작금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아울러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해서 전술핵을 전진 배치해서 핵공유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NATO와 비교해도 타당하지 않다.

핵을 가진 북한을 제대로 억지하기 위해서는 재래억지와 핵억지의 괴리 현상을 시급해 해소해야 한다. 재래억지는 대응 옵션의 다양화와 전진 배치로 특징지어지는 거부억지 개념에 충실하게 유지되어 왔다. 한국은 주요 병력을 휴전선을 중심으로 전진 배치하고 다양한 공격 및 방어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함으로써 북한이 도발해서 군사적,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각인시켜왔다. 주한미군도 대부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되었지만 북한의 집요한 철수 요구에도 불구하고 육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북한의 도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탄탄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전술핵이 모두 철수한 1991년 이후 한반도의 핵억지는 징벌억지 개념을 따르고 있다. 한국 땅에 한국이나 미국의 핵자산이 전무한 상태에서 북한의 도발시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징벌위협만으로 핵억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소련에 핵이 없던 시절에 아이젠하워 정부가 대량보복 위협으로 소련의 도발을 억지했던 상황과 똑 같다. 소련이 핵탑재 ICBM을 개발해서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게 되자 케네디 행정부는 대량보복 전략이 비현실적임을 깨닫고 징벌억지에서 거부억지로 전략을 수정하고 소련의 다양한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거부억지태세를 구축하게 된다.

북한이 한반도에서 핵을 독점한 것은 물론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탑재 ICBM 능력에 근접한 상황에서 북한에 핵이 없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징벌억지를 고수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미 동맹은 핵분야에서도 거부억지 태세를 갖춰야한다. 거부억지는 한반도에서 북한의 재래식 도발을 성공적으로 저지했고, 유럽에서 NATO가 소련 및 러시아의 핵과 재래식 도발을 효과적으로 저지한 전략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핵전력 증강, 북한과 같은 약소핵국의 등장, 국지도발을 일으킨 후 전술핵을 선제 사용해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러시아와 북한의 핵확전 우위전략 등을 고려할 때, 핵시대에 진입한 한반도에서 한미동맹은 핵분야에서도 거부억지태세를 갖춰야 한다. 거부억지의 요체는 억지에 동원되는 자산의 다양화와 전진 배치이다. 미국의 역외 전략핵자산은 최후의 수단으로 한국을 방어하는 버팀목으로 두되 억지력의 다양성 제고 차원에서 전술핵무기가 필요하고, 또한 한반도 전장에 전진 배치되어야 한다. 한미동맹도 NATO와 같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서 핵공유체제를 구축하는 거부억지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핵전략이 거부억지를 강조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1991년 이후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기에 가장 좋은 정치적, 전략적 여건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본 글은 8월 북한학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 1. Cheon Seong Whun, “‘Denuclearization’: more than just two divergent conceptions,” Small Wars Journal, April 18, 2018, http://smallwarsjournal.com/jrnl/art/denuclearization-more-just-two-divergent-conceptions
  • 2. 김정은 신년사, 2018년 1월 1일, https://news.joins.com/article/22250044
  • 3. Seong-whun Cheon, “Managing a nuclear-armed North Korea: a grand strategy for a denuclearized and peacefully unified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 XXI, No. 1, Spring/Summer 2017, http://icks.org/n/data/ijks/2017-6.pdf
  • 4. Robert Kagan,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New York: Alfred A. Knopf, 2008), pp. 3-5.
  • 5.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Avon Books, 1992).
  • 6. Walter Russell Mead, “The return of geopolitics: the revenge of the revisionist powers,” Foreign Affairs, April 17, 2014.
  • 7. Robert Kagan,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p. 6.
  • 8. Ibid., pp. 4-5.
  • 9. Ibid., p. 10.
  • 10. Walter Russell Mead, “The end of history ends,” The American Interest, December 2, 2013.
  • 11. Arthur Herman, “The new era of global stability,” Wall Street Journal, December 19, 2017.
  • 12. Walter Russell Mead, “The end of history ends.”
  • 13. Arthur Herman, “The new era of global stability.”
  • 14. Margaret MacMilan, The Rhyme of History: Lessons of the Great War, The Brookings Essay, December 14, 2013.
  • 15. Robert Kagan,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p. 59.
  • 16. Arthur Herman, “The new era of global stability.”
  • 17. Walter Russell Mead, “The end of history ends.”
  • 18.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ashington, D.C.: The White House, December 2017).
  • 19. Nuclear Posture Review (Washington, D.C.: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February 2, 2018).
  • 20.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면서 “적들의 핵 전쟁 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1. NPR은 중국이 전술핵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서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고 우려했지만 선제 핵사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중국이 공식적으로 핵무기의 ‘선제불사용’(no-first-use: NFU)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 22. Summary of the 2018 National Defense Strategy (Washington, D.C.: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January 19, 2018).
  • 23.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 30.
  • 24. Uri Friedman, “The world according to H.R. McMaster,” Atlantic, January 9, 2018.
  • 25. A. Wess Mitchell and Jakub Grygiel, “Predators on the frontier,” The American Interest, February 12, 2016.
  • 26. Ibid.
  • 27. Joint Statement by the Russian and Chinese Foreign ministries on the Korean Peninsula’s Problems,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Russian Federation, 4 July 2017.
  • 28. “Russian military chief criticizes U.S., Japan and South Korea drills,” Reuters, December 11, 2012.
  • 29. 조선일보, 2018년 6월 30일.
  • 30. 전성훈, “美北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의 향배,” 국회 핵포럼 발제문, 2018년 7월 12일, http://www.asaninst.org/contents/美北-정상회담-이후-북한-비핵화의-향배/
  • 31. A. Wess Mitchell and Jakub Grygiel, “The vulnerability of peripheries,” The American Interest, March 1, 2011.
  • 32. A. Wess Mitchell, “The case for deterrence by denial,” The American Interest, August 12, 2015.
  • 33. 이 절은 필자의 다음 논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전성훈, “美 일각의 ‘북한 억지불가론’에 대한 반론과 거부억지 태세 강화,” 아산정책연구원, Issue Brief, 2018-09, 2018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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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전성훈

연구부문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