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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6일 그리스는 이집트와 동(東)지중해를 놓고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터키가 동지중해에서 확보하고자 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협정의 체결은 터키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동지중해를 놓고 자국의 해양영역을 주장하고 있는 연안국들의 숫자는 무려 8개이다. 바로 그리스, 터키, 싸이프러스,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이집트, 리비아이다. 이 중에서 싸이프러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주변 연안국들과 해양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해왔다. 즉, 싸이프러스는 이미 이집트, 레바논, 이스라엘 등과 해양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한 상황이다.

이집트는 그리스와 터키 간 오래된 해양 분쟁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집트는 2005년부터 그리스와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교섭을 시작했지만 터키와도 경계획정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 11월 27일 터키와 리비아는 동지중해를 놓고 (법적 구속력 있는) 터키와 리비아 간 해양경계획정 양해각서, 즉 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터키는 유엔 사무국에 등록을 위해 이 MOU를 송부했다. 그리스와 이집트의 (200해리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권원을 무시한 2019년 MOU를 놓고 그리스와 이집트는 이 MOU를 ‘불법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터키가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2020년 7월 21일부터 8월 2일까지 자원탐사도 실시하자 터키를 향한 이집트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집트는 그리스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움을 안겨다 주고 있다. 첫째,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전문(preamble)은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주권적 권리 및 관할권의 행사를 언급한다. 이는 양국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이 확실한 국제법적 근거를 가지고 체결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양국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의 제목에 ‘대륙붕’이라는 용어가 생략되어 있다. 이는 동지중해가 그리 넓지 않은 관계로 어떤 연안국도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넘는 대륙붕을 확보하기 쉽지 않고, 더구나 200해리 이내에서는 굳이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구분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오로지 5개의 점을 연결한 하나의 선만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한 선이 2019년 MOU 체결을 통해 동지중해에 파란을 일으켰던 터키(및 리비아)에 대한 일종의 ‘대응책’이 되는 것이다.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그리스의 크레타(Crete) 섬 및 로도스(Rhodes) 섬이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2항은 “… 섬의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은 다른 영토에 적용 가능한 이 협약의 규정에 따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섬이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3항에 규정된 암석(rock)이 아닌 한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터키는 그리스의 섬들이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없다는 다소 설득력 없는 견해를 견지해왔다. 이에 대하여 그리스와 이집트는 유엔해양법협약 내 관련 조문에 근거한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체결로 응수한 것이다.

그런데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오히려 터키를 배려한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터키 해안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그리스에 속하는 카스텔로리조(Kastellorizo) 섬 등을 이용하여 그리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터키와의 교섭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체결 이후 동지중해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2020년 8월 12일 동지중해에서 그리스의 호위함과 터키의 호위함은 조우했고, 이 과정에서 두 호위함이 살짝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어느 한 쪽이 의도를 가지고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으나 동지중해에 흐르고 있는 그리스와 터키 간 긴장을 상징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그리스는 동지중해 그리고 에게해를 놓고 터키와의 교섭을 통해 그리스의 섬들이 (200해리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자 한다. 크레타 섬의 경우 면적이 8,000㎢가 넘고 인구가 60만 명을 넘기 때문에 그리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동지중해 그리고 에게해에서 섬들을 거의 확보하지 못한 터키는 그리스와 교섭 과정이 불리하게 진행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리스에 대하여 다소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2020년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은 그리스와 이집트 간 조약임에도 사실상 그리스와 터키 간 갈등을 수면 위로 드러낸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리고 해양경계획정을 수행할 때 섬(들)의 효과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부각시켰다. 한국 정부도 이번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에 대한 검토 및 분석을 통해 해양경계획정을 수행하면서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권원을 가지고 있는 섬(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2020년 10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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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