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주간조선] 2013-05-13

맞대응 전략 평판을 쌓아야 게임 주도한다

2256_302007년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 핵시설. 오른쪽은 이스라엘 공습 후 핵시설이 사라진 인공위성 사진이다. photo AP

*(기고문)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

이스라엘은 자국의 ‘묻지마’ 핵무기 보유와 주변국의 핵개발 사전 차단을 통해 안보를 지켜왔다. 1948년 건국 직후부터 핵개발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자체 핵무기 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했다. 동시에 이웃나라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을 선제공격해 무력화했고 최근 이란의 핵개발도 비슷한 방법으로 저지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유인책으로 핵을 포기한 리비아를 제외하고 중동에서 핵 보유를 시도한 나라는 모두 이스라엘에 의해 계획이 중단됐다.

이스라엘의 핵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새로운 평판 쌓기’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이제는 한국이 단호한 맞대응(tit for tat) 전략으로 나간다는 평판을 쌓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일관성 있는 맞대응 전략 모델에서 볼 수 있듯이 규칙을 어긴 쪽은 상대방이 단호하게 나오면 움츠러든다. 게임의 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핵무장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눈앞의 전쟁보다 훨씬 크다고 계산하여 공습을 감행했다. 역시 확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의 결정에 따라 1950년대 핵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버그만(Ernst David Bergmann) 핵물리학 박사는 기술을, 시몬 페레스 당시 국방부 국장(현 대통령)은 실무를 맡았다. 1955년 미국이 플루토늄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히자 이스라엘은 프랑스로 눈을 돌렸다.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1956년 수에즈 전쟁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함께 싸워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으나 미국과 소련의 철수 압력으로 곤경에 빠졌던 동병상련을 겪은 터였다.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기술 지원으로 네게브사막에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건설했다.

당시 핵 비확산을 강력히 주장했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이스라엘 핵 사찰을 감행했으나 핵무기 개발의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1969년에 와서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가 만나, 이스라엘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핵보유 사실을 밝히지 않는 조건하에서 미국도 사찰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압력을 멈추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핵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1970년대 초반 핵 탄도미사일 배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핵을 평화적으로만 사용하는 조건하에서 1960년대 노르웨이가 중수로 기술을,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우라늄 원료를 공급했다.

이스라엘의 진보 노동당과 보수 리쿠드(Likud)당은 국내 정치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워왔다. 팔레스타인과 정착촌 이슈가 한 예다. 노동당은 팔레스타인 측과의 평화조약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대화 창구를 열어 놓은 반면 후자는 이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양당은 핵문제에 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왔다. 1994년 팔레스타인과 오슬로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페레스 현 대통령은 노동당 출신임에도 이스라엘의 비밀 핵개발에 참여한 장본인인 것이다. 또한 양당 모두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주변국의 핵개발에 대해 단호한 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1981년 이라크와 2007년 시리아의 핵시설 선제공격, 최근 이란의 핵개발 무력화 의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는 1970년대 중반 프랑스의 기술 지원으로 바그다드 남동쪽에 40㎽급 원자로를 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막기 위해 프랑스를 상대로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1979년 이라크 발전소의 건설 부품을 보관해오던 프랑스 내 창고를 폭파하기도 했다. 결국 1981년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라크의 오시라크(Osiraq) 원자로를 파괴했다. 선제공격을 통한 조기 무력화 정책은 당시 총리의 이름을 따 ‘베긴(Menachem Begin) 독트린’으로 명명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공습을 강력히 비난했고 같은 해 말 유엔 안보리는 대이스라엘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시리아는 1990년대 초 중국의 기술을 도입해 원자로 건설을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보이자 2007년 이스라엘은 시리아 동부 사막 지역의 알 키바르(al-Kibar) 핵시설을 폭격했다.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핵 과학자 암살, 핵시설 사이버 공격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10년 이래 5명 이상의 이란 핵 과학자가 모사드 요원에 의해 암살됐고, 2012년 이란 나탄즈(Natanz)의 핵농축 시설이 이스라엘 사이버 정예부대의 스턱스넷(Stuxnet) 공격으로 파괴됐다. 같은 해 9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에서 이란이 20% 농축우라늄 240㎏을 비축할 경우 바로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이러한 이스라엘의 핵우위 모델을 따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선,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제공 장치로 인해 독자적인 핵개발이 어렵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 정치인들은 북핵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나라의 생존 문제와 별개라고 여기거나 북핵 위협에 대한 대미 의존증으로 일관한다. 이스라엘처럼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둘째, 북한은 이미 3차 핵실험을 마친 사실상 핵 보유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식의 선제공격 옵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모델은 핵무기 제조 이전 단계에서 비확산을 강제해내기에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더욱이 우리에겐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같은 유능한 정보기관도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모델에서 얻을 교훈은 분명히 있다. 바로 맞대응 전략이다. 북한에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라는 엄중한 경고를 주고 이후 핵게임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북한처럼 돌발 행동의 가능성이 높은 상대일수록 고정된 행동 패턴을 보여주고 게임의 룰을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큰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우리는 맞대응 전략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스라엘은 맞대응 전략가라는 평판 덕분에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격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2007년 9월 이스라엘은 알 키바르 핵시설을 폭격한 후 이에 대해 침묵했다. 공습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체면 유지를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반드시 취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시리아가 곧장 반격하리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알아사드 대통령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파괴된 시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비밀리에 핵개발을 진행했다는 약점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다는 굴욕적인 사실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반격을 하면 이스라엘이 더욱 강하게 응징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평판을 쌓지 못했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대미·대남 관계가 악화되면서 경제적 불이익을 겪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새로운 평판을 쌓아야 한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와 한·미 군사훈련을 넘는 새로운 대응책을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북한이 또 도발하면 우리는 몇 배 더 높은 강도로 대응한다는 평판을 쌓아야 게임이 안정된다. 평판은 바뀔 수 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 중동연구프로그램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외교부의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국제개발협력 등이 있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Asan Institute 2012,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혁명의 우발성과 다양성: 2011년 ‘중동의 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 2011), “세계화 시기 자본의 민주적 함의: 이슬람 자본의 성장에 따른 무슬림 포괄 정당의 부상에 대한 이론적 고찰” (국제•지역연구, 2010),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