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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국’ 지위로만 대화하려는
대화조건 조율하려는 정부의 ‘중매외교’… 당사자 지위 놓는 꼴
한미공조 훼손 없이 국제사회 공조 통해 비핵화 추구해야

정부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미국과 북한 간 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보면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조건이 맞는다면(right condition)”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고위급 대표단 방한 시 우리 측 당국자들과의 대화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비공개회의를 통해 드러났다. 물론 당국자들은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그간 정부가 밝힌 북한 대표단과의 대화 내용, 즉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의 발표 내용으로만 보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미국이지 북한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든다. 상황과 문제의 본질이 왜곡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와 핵 지위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대화 간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가 왜 사실대로 대화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대북특사 파견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방법론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그리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거쳐 평창 올림픽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는 조급하고 목말라하며 북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늘, 바다 그리고 땅의 통로를 다 열어 주어 대북제재에 손상을 가져왔다. 결국 한국이 대북제재 국제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 되었다. 또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소니사 해킹의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순순히 받아주었다. 김영철의 방문을 통해 남북 관계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고 북한의 입장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화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일면 그런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처리 과정은 너무나 서툴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로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입장은 대화의 주도권과 내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로 나온 것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정말 아쉽고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한국의 모습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정체성에 우려와 의심을 갖게 하고 한미 공조에 문제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거나 ‘중매’한다고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의 조건을 낮출 것을 요청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비핵화에 관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중재나 중매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타당한 것인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이는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 온 ‘한반도 운전석론’과 맞지 않는다. 핵 문제를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 간 문제로 규정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 둘 사이를 조정하고 중재한다는 것이다. 당사자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핵 문제는 우리의 안보에서 핵심적인 위협이자 도전인데 이를 미국과 북한 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넘긴다는 발상을 ‘운전석론’을 주장했던 정부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핵심 안보 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중재나 중매가 한미 공조와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 나아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간의 접점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재와 중매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약화할 것이고 이는 북한을 대하는 한국의 전략적 위치 역시 약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며, 성과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비핵화에서의 진전이 있어야만 남북 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는 ‘한국판 쌍궤론(雙軌論)’을 펼쳤다. 이러한 말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 본 글은 03월 03일자 동아광장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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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최강

연구부문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부원장이자 수석연구위원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