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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7일 크리미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14년 3월 18일 크리미아와 러시아는 ‘크리미아의 러시아로의 가입 조약’, 즉 소위 ‘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이 무효임을 주장하며 정치적ㆍ법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이용한 우크라이나의 법적 투쟁의 현재 상황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016년 9월 16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 절차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핵심적인 주장은 러시아가 2014년 이후 흑해(Black Sea), 아조프해(Sea of Azov) 등에서 광물자원, 어족자원 등 천연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할 우크라이나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러시아는 유엔해양법협약상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의하면 러시아는 케르치해협(Kerch Strait)을 통한 우크라이나의 통항도 방해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 절차가 시작된 이후 5명으로 구성된 중재재판소가 구성되었다. 중재재판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출신 백진현(現 국제해양법재판소 소장) 재판관이 중재재판소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중재재판 절차에 참여하여 자신의 중재재판관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재재판 절차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러시아로서는 전향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이번 중재재판에 상당한 자신이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적인 주장에 대하여 러시아는 2018년 5월 21일 자신의 ‘선결적 항변’(preliminary objections)을 제출했다. 선결적 항변을 통한 러시아의 주장은 한 마디로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이 사건을 다룰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재재판 절차는 계속되었고, 2020년 2월 21일 중재재판소는 (최종적인 중재결정으로 가는 중간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선결적 항변에 대한 중재결정을 도출했다. 아래에서는 이번 중재결정의 핵심적인 내용을 잠시 살펴볼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제288조 제1항은 “제287조에 언급된 재판소는 이 부에 따라 재판소에 회부되는 이 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에 대하여 관할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에 대하여 중재결정을 내릴 관할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선결적 항변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분쟁의 법적 성격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양국 간 근본적인 또는 본질적인 분쟁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이 아니고, 영토 분쟁, 즉 크리미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라는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는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분쟁의 법적 성격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동의했다. 즉, 우크라이나의 상당수 주장은 흑해, 아조프해 등의 연안국(coastal State)이 우크라이나라는 전제에서 판단될 수 있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우크라이나가 영토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으로 ‘위장’하여 소송을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무조건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재재판소는 크리미아에 대한 영유권(또는 주권)을 놓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주장이 완전히 반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영토 분쟁이 아닌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을 다룰 수밖에 없는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어느 국가가 연안국인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가 연안국이라고 전제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는 흑해, 아조프해 등의 연안국이 우크라이나라는 전제를 가지고 판단할 필요가 없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대하여는 자신의 관할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본안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즉, 중재재판소의 시각에서는 어느 국가가 연안국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조프해와 케르치해협의 법적 지위 등과 관련이 있는 분쟁은 본안 절차를 통해 판단될 예정이다.

크리미아를 되찾기 위해 우회적으로 유엔해양법협약이 제공하는 절차를 이용하고자 했던 우크라이나의 시도가 일단은 실패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실 우크라이나 자신도 영토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으로 위장하여 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시도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했었을 것이다. 다만 유엔해양법협약을 통해서라도 러시아와의 분쟁을 법적인 차원에서 부각시키고 크리미아를 되찾기 위한 시도를 지속한다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의 전략은 이해가 되는 전략이다.

크리미아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본안 절차가 추가적인 관심을 끌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영토 분쟁을 부각시키기 위해 ‘위장된’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이 유엔해양법협약이 제공하고 있는 재판소에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성공할 수 없을지라도 영토 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국제재판소의 관련 기록에 남기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를 통해 크리미아를 되찾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영토 분쟁이 존재한다는 점이 이번 선결적 항변에 대한 중재결정 내에 분명히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2020년 6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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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