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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2월 20일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약칭 ‘ICJ’)는 대륙붕의 경계획정에 관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바로 ‘북해 대륙붕 사건’(North Sea Continental Shelf Cases)이다. 이번 호에서는 국제법상 해양경계획정의 주춧돌로 평가받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945년 9월 28일 미국 트루만 대통령은 소위 ‘트루만 선언’(Truman Proclamation)이라 불리는 대통령 선언(Presidential Proclamation) 제2667호를 통해 미국 해안에 인접한 대륙붕의 하층토(subsoil)와 해저(sea bed)에 존재하는 천연자원이 미국의 관할권과 통제 하에 있다고 선언했다. 국제법상 해양영역이 영해와 공해로만 구분되고 있던 1945년 당시 천연자원의 탐사 및 개발을 이유로 대륙붕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자 했던 트루만 선언은 충격이자 하나의 롤 모델이었다. 트루만 선언이 천명된 이후 1945년 10월 29일 멕시코의 선언을 필두로 아르헨티나, 칠레 등 여러 중남미 국가들은 트루만 선언과 유사한 선언을 공포하면서 대륙붕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었다.

대륙붕에 대한 국가들의 관심이 증폭되자 대륙붕이 국제법상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음에도 국제사회는 조약을 통해 대륙붕 관련 문제를 규율하고자 했는데, 1958년 채택된 ‘대륙붕협약’(Convention on the Continental Shelf)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대륙붕협약은 대륙붕의 정의를 제공했음은 물론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규칙도 포함했다.

하지만 1958년 대륙붕협약이 채택되었음에도 여전히 상당수 국가들은 이 조약의 구속을 받기를 주저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륙붕협약 제6조가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규칙으로 (특별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등거리선이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등거리 원칙’(principle of equidistance)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등거리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 독일과 같이 해안의 모양이 ‘오목한’(concave) 국가들은 인접한 국가들과 대륙붕의 경계획정 시 다소 좁은 면적의 대륙붕만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대륙붕협약의 당사국이 되었으나 독일은 끝내 대륙붕협약의 당사국이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위한 자신들의 협상 시 적용하기 위한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국제법상 원칙 및 규칙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역사상 최초로 대륙붕의 경계획정 관련 문제가 국제재판소에 회부된 것이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북해 대륙붕 사건을 통해 우선 국제법상 대륙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분설했다. 예를 들어, 국제사법재판소는 대륙붕은 연안국의 육지 영토의 ‘자연적 연장’(natural prolongation)으로 ‘시원적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어떤 연안국의 대륙붕에 대한 주장이 ‘선언될’(declared) 수는 있지만 ‘창설될’(constituted)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다. ‘자연적 연장’이라는 용어가 이후 유엔해양법협약 제76조 제1항이 대륙붕의 정의를 설명할 때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엔해양법협약 채택을 위한 협상 시 북해 대륙붕 사건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대륙붕의 경계획정과 관련하여 국제사법재판소는 상당한 분량의 논의를 제공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1958년 대륙붕협약 제6조가 제공하고 있는 등거리 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자격으로 독일을 구속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짧은 기간에도 국제관습법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으나 1969년 당시 대륙붕협약 당사국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던 점, 등거리 원칙이 적용된 다른 몇몇 대륙붕의 경계획정 사례들을 국가들의 일반관행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점, 등거리 원칙의 적용에 있어 법적 확신을 발견하기 어려운 점 등을 제시하며 등거리 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자격으로 독일을 구속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는 자신의 시야를 (대륙붕의 경계획정에 관한 언급을 최초로 포함하고 있던) 1945년 트루만 선언으로 확장하여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국제관습법을 찾기 시작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하면 국제관습법상 대륙붕의 경계획정은 관련 국가들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합의는 ‘관련 사정들’(relevant circumstances)을 고려하여 ‘형평한 원칙들’(equitable principles)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규칙을 ‘형평한 원칙들-관련 사정들 규칙’이라 부른다.

등거리 원칙의 강제적인 적용을 배제하기 위해 제시된 국제사법재판소의 ‘형평한 원칙들-관련 사정들 규칙’은 유엔해양법협약 채택을 위한 협상 시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상당수 국가들이 등거리 원칙이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위한 규칙으로 유엔해양법협약 내에 포함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형평한 원칙들-관련 사정들 규칙’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종의 타협책으로 현재 유엔해양법협약 제83조 제1항은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규칙으로 ‘형평한 해결’(equitable solution)의 도달만을 규정하고 있다.

북해 대륙붕 사건은 등거리 원칙이 국제법상 국가들을 구속하는 구속력 있는 (대륙붕의 경계획정을 규율하는) 규칙으로 적용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봉쇄했다. 이는 등거리 원칙이 1958년 대륙붕협약 내에 포함되었음에도 적용하기 쉽지 않은 원칙으로 전락한 이유가 된다. 북해 대륙붕 사건에 관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다시 한 번 협상을 진행했고, 그 결과 독일은 등거리 원칙이 적용되었을 경우보다 상당히 넓은 대륙붕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이론적 쟁점을 선도적으로 정리한 국제재판소 판례는 두고두고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북해 대륙붕 사건에 관한 판결이 내려진지 5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이 사건이 연구되고 있고, 새로운 국제재판소 판례 내에서도 관련 내용이 쉽게 발견되고 있는 이유이다.

 

* 본 글은 2020년 5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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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