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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 미, 일 3국 공동전선은 물샐틈없는 공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공동전선의 균열은 기본적으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얼마나 철저히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한국과 미·일 사이의 입장 차이에 기인한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 완료시까지 제재 지속’이라는 입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남북관계 발전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선순환 논리에 따라 국제제재를 우회해서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을 추진하려고 한다. 반면에 미국과 일본은 섣부른 제재 완화가 북한 비핵화를 방해한다는 인식 하에, 10여 개의 유엔안보리 결의와 개별국가의 제재로 구성된 국제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최대의 압박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견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한편 21세기 국제사회의 질서로 자리 잡은 ‘강대국 경쟁 시대’에 한국과 미·일 간의 입장 차이는 동북아 질서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의 협조 하에 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핵문제가 강대국 경쟁의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의 공조 현황을 짚어보고, 북한 핵문제가 아시아판 강대국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한 만큼 장기화가 불가피한 가운데 한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 정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 한미 공조

지난 해 한미관계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대화의 속도 조절과 대북제재를 유예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양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의 말대로 “양국 간의 정책차이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양국 간의 의견차이가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안보위협을 해소해준다며 한미 연합훈련을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트럼프는 연합훈련을 값비싸고 도발적인 전쟁게임으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기한을 넘긴 채 중단된 상태이다. 그는 주한미군이 비용에 걸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철군카드까지 흔들고 있다. 반면에 김정은에 대해서는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볼튼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취임한 이후로 국가안보실 차원의 의사소통도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궤를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고려할 때, 2차 미북정상회담의 결과도 극과 극으로 갈라질 수 있다. 트럼프가 북한의 ICBM 감축에 만족하고 미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해소했다며 어정쩡하게 타협할 가능성과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술에 속았다고 선언하고 무력사용을 포함한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반반이다. 문제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국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미국에 대해 여려 차례 제재완화를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그만큼 미국에 정치적인 빚을 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에 타협이던 강경이던 트럼프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어려운 여건이다.

 

2. 한일 공조

북한의 핵위협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일 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철벽공조를 유지해야 맞다. 양국이 한목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행보도 일정부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재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좋지 않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약속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채택 20주년이 작년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명박 정부 말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양국관계가 회복의 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정부의 위안부 합의 재검토와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일본정부가 크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레이더 갈등은 양국관계 악화에 기름을 붓는 겪이다. 광개토대왕함이 작년 12월 대화퇴어장 인근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어선을 구조하는 데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근접 비행하면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광개토대왕함이 추적레이더를 두 차례 쏘았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그런 사실이 없고 일본 초계기가 위협적으로 비행했다는 입장이다. 레이더 갈등은 정치, 외교 영역에 머물던 불협화음이 군사안보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양국은 과거사, 교과서, 영토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협에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지난 2016년 11월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된 것도 이러한 한일 공조의 일환이었다. 2019년 국방백서에서는 이전 백서에 있던 “한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도 사라졌다. 한일관계 악화가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공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3. 미일 공조

한미, 한일 공조와 비교할 때, 미일은 명실상부하게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납치문제를 제외하고 북한과 긴급하게 해결할 현안이 없기 때문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해결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 남북 및 미북 관계개선 분위기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일북대화를 시도하긴 했지만 국내정치적 비중은 약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일본과의 대화는 한국 및 미국과의 대화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일본은 대북관계 개선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만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목표가 비핵화보다 더 광범위하고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핵은 물론 화학, 세균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가 일본의 목표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일본의 노력은 국제협력을 선도하는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제재회피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해상에서의 불법환적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다국적 감시활동을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1월 10일 아베 총리와 메이 영국총리는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이행하기 위해 영국이 금년 상반기에 호위함을 일본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 다음날 일본과 프랑스도 외교·국방장관회담을 갖고 프랑스가 해상초계기와 함정을 일본에 파견해서 해상활동 감시에 협력하고 해상연합훈련도 실시하기로 했다.

 

4. 강대국 경쟁과 북한 비핵화

한편 탈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강대국들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자국 중심의 지역질서로 대체하려는 경쟁시대에 들어선 것도 북한 비핵화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국제사회는 상호협력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상생의 질서를 구축하려던 탈냉전시대를 지나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지역패권을 노리는 혼란기에 들어섰다. 아시아에서는 북한 핵문제를 고리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경쟁을 벌이면서 한반도가 강대국 다툼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보호 의지를 시험하고 경쟁하는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드배치에 대해 중국이 전례없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한반도가 미중 전략게임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한의 안보우려가 해소되어야 한다며 ‘쌍중단’과 ‘쌍괘병행’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이를 지지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러시아 모두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양국은 북핵 폐기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도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안보리 언론성명 채택을 시도했다. 물론 북한도 핵개발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미중, 미러의 경쟁관계를 잘 이용해왔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중·러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한다는 것을 잘 아는 북한은 핵개발의 원인으로 미국의 위협을 들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나가는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는 김정은과 시진핑의 4차 정상회담도 이러한 북중 공조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북한 핵문제가 미중, 미러 경쟁의 대리전으로 부상할수록 한미가 바라는 북핵 완전폐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기존질서를 자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부담을 주는 지정학적 게임을 펼칠 것이다.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지원했던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면서 대미 견제 카드로 활용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결국 북한의 핵독점에 놓인 상황에서 중·러가 북한 핵문제를 대리전으로 삼고 지역 안보질서를 바꾸는 중장기 전략게임을 벌이는 강대국 각축의 장이 현재의 한반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미, 한일의 균열은 단순히 핵문제에 국한된 지엽적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지정학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정부는 향후 1∼2년간 우리가 취할 행보가 향후 30년 이상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와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 본 글은 자유마당 2019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연구부문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