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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asty Woman

“Nasty.” 오늘 3차 토론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두고 한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추잡한’, ‘더러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이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도 쓰인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중계에서 투수의 공을 보고 해설자가 종종 이 표현을 쓴다. 까다로움을 넘어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을 두고 하는 말인데, 아마도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의 공을 생각하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오늘 클린턴의 토론은 리베라의 커터처럼 Nasty했다. 물론, 트럼프는 사전적 의미로 썼겠지만.

두 명의 후보 모두 이전 토론보다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다. 트럼프조차 정책과 아젠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전 두 번의 토론에 비해 훨씬 정돈된 느낌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그 간의 토론회 중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1차 토론이나 큰 한 방이 없어 아쉬움이 남았던 2차 토론에 비해, 이번에는 킬러본능을 맘껏 보여주었다. 자신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정책중심의 토론이 되니 물을 만난 듯 여유 있으면서도 흠결 없이 주장을 이어갔다. 불리한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주제를 돌려 도리어 트럼프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기도 했다.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꼽히는 장면은 클린턴 재단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확실히 만족할만한 답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트럼프 재단을 역공격하기도 했고 트럼프의 세금납부 문제를 다시금 걸고 넘어졌다. 지난 30년 동안 정계에 있으면서 그 이상한 세법이나 고치지 뭐했냐는 트럼프의 비아냥 섞인 비판에 완벽하게 준비한 답변을 내놨다. ‘네가 흑인 세입자한테 인종차별로 고소당할 때 난 흑인 아동 교육증진을 위한 재단 활동을 했었고, 베이징에서 열렸던 세계여성회의에서 연설을 했을 때 넌 미스 유니버스인 알리시아 마차도를 향해 Eating machine이라 모욕했고, 상황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지켜볼 때 넌 Apprentice나 진행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네가 시시껄렁하게 놀고 있을 때 나는 사회와 국가를 위해 열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차토론떄의 ‘스따미나’ 공격을 일격에 날려버렸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1, 2차 토론 때 왠지 갑갑했었던 클린턴 지지자들은 이번 토론을 통해 꽤 속 시원했을 듯 하다.

물론, 첫 30분 동안은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다. 연방 대법원 판사 관련 주제에서 수정헌법 2조 수호와 낙태 반대 주장을 매우 공격적으로 펼쳤다.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민 이슈와 관련해서는 훨씬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트럼프답게) 오바했다. “Bad Hombres.” 이민법 강화와 불법 체류자 추방이 어느 인종 그룹을 향한 것인 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알고 있다. 자신의 지지자들이 모인 유세장도 아닌, 전국에 중계되는 대통령 토론회에서 “hombre”라는 단어를 쓴 것은 히스패닉 유권자그룹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어떻게 표로 응답해 줄 지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이후 경제나 세금정책에 대해서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고 중동과 시리아, 아사드 정권, 러시아 이야기를 할 땐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 건 지 잘 이해가 안 됐다. 벼락치기 공부는 했는데,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일단 대충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듯 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우리에게 익숙한 트럼프가 등장했다. 원색적 비난, 끼어들어 말 끊기 등.

그러나, 최악의 순간은 선거 결과를 ‘보고’ 받아들이겠다고 한 부분이다. 트럼프는 이미 이번 선거가 조작되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선거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 확답을 주지 않은 것이다. 런닝메이트인 펜스 주지사와 트럼프 선거매니저인 콘웨이조차도 당연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 이야기한 상황이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일부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많은 유권자들이 이 대답에 기가 막혀 했을 것이다. 특히 11월에 상원의원, 하원의원 선거를 기다리고 있는 공화당 후보들은 아마 머리를 부여잡고 “F”자 들어가는 욕을 했으리라.

정치인으로서의 미숙함과 뒤처진 자의 조급함은 크리스 월러스가 부탁한 최종발언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지를 짧게 어필하라고 했을 때, 클린턴은 준비한 답변이 나왔다. 그리 감동적이지도 않았지만 크게 무리도 없었다. 반면, 트럼프는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보다 클린턴이 되면 왜 안 되는 지를 설명하는 데 1분을 썼다. 캠페인 강의 101: 주로 뒤쫓아가는 주자가 네거티브를 쓰게 마련이지만, 네거티브는 표확장력이 떨어진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 1분의 호소 아닌 호소를 보고 ‘맞아 맞아 클린턴은 안돼’라고 했겠지만, 다른 유권자들은 ‘근데 뭐? 그래서 넌?’ 했을 것이다. 소중한 1분을 그렇게 헛되이 썼다. 경험의 부족이다.

이제 아마 클린턴 캠프는 얼마나 크게 이기는 가에 집중할 것이다. 이미 미쉘 오바마 여사를 유세를 위해 아리조나로 급파했다는 소식이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찍어온 아리조나가 흔들린다는 의미이다.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 대승을 거두어서 ‘조작된 선거’ 논란을 묵살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에게 하고 싶은 말 1: 토론회 이전에 비염은 고쳤어야 했다.
트럼프에게 하고 싶은 말 2: 멜라니아한테 꼭 사과하기를. 말만이었다 해도 파트너에게 매우 예의 없고 큰 모욕과 상처를 주는 형편없는 대화였다.

* 본 글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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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김지윤

연구부문 / 여론연구프로그램

김지윤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연구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선거와 재정정책, 미국정치, 계량정치방법론 등이다. 주요 연구실적으로는 “Cognitive and Partisan Mobilization in New Democracies: The Case of South Korea”(with Jun Young Choi and Jungho Roh, forthcoming, Party Politics), “The Party System in Korea and Identity Politics” (in Larry Diamond and Shin Giwook eds. New Challenges for Maturing Democracies in Korea and Taiwan. 2014. Stanford University Press), “기초자치단체에서 사회복지비 지출의 정치적 요인에 관한 연구” (이병하 공저 의정연구, 2013), 『국회의원 선거결과와 분배의 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10), 『Political Judgment, Perceptions of Facts, and Partisan Effects』 (Electoral Studies, 2010), 『Public Spending, Public Deficits, and Government Coalitions』 (Political Studies, 201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 버클리대학에서 공공정책학 석사를, 미국 MIT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