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정권이 교체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갑작스럽게 치러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그리고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며칠 동안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대한 많은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북한 문제, 한미동맹, 중국 관계, 대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제안들은 차고 넘친다. 이 와중에 유령과 같은 존재가 있다. 아세안과 동아시아 지역협력이다. 누구도 새 정부가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국가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제안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외교안보 공약에서도 지역협력이나 아세안이 언급된 적은 거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에 아세안과 인도가 한번 언급되었을 뿐이다.

한국 외교와 안보 정책에서 북한문제, 미국, 중국, 일본이 늘 우선 순위를 차지해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는 당장 위협에 관한 문제이고, 현안을 풀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아세안을 한반도, 주변 4강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한가한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쉽다. 물론 동남아, 아세안이 북한 문제나 4강 외교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점은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4강 못지 않게 아세안과 한국의 현실적 경제, 사회문화 관계는 밀접하다. 한-아세안 무역은 한-미, 한-일 무역을 앞선다. 한국의 대 일본 투자보다 대 아세안 투자가 더 많다. 동남아에서 한류는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다.

현실적 관계보다 못지 않게 미래의 문제도 중요하다. 현실이 어렵다고 현실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미래를 바라볼 수도, 대비할 수도 없다. 매일 현안만 따라다니다 정작 다가오는 미래에 대비를 못하고 후일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한국 외교와 안보 정책에 있어서 아세안과 동남아는 일부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미래를 맞이하고 번영을 이루어 낼 것인가라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동남아와 경제, 사회문화 협력을 심화 시키는 동시에 아직 취약한 정치,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한-아세안 안보 협의체가 별도의 전략 및 안보 협의체로 분리되고 상호 안보 관심사, 지역의 전략적 환경, 그리고 비전통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동남아를 우리 안보 문제 해결의 도구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아세안 대표부 강화 등 외교부 차원의 제도적 역량, 지역 연구와 기능 분야 연구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지적 역량 강화, 국내 동남아 이미지 개선 및 동남아 내 한국학 진흥 등 동남아 정책 관련 공간의 확장 등 내적 역량 강화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 외교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세로 대처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외교를 펼친 정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왜 아세안인가?

한국 입장에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우리 외교의 4강이라 불리는 국가들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몇몇 분야에서는 4강 보다 한국의 이익에는 더 중요한 지역이 아세안이다. 다만 막연히 4강이 한국 외교에 가장 중요하다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편중된 시각 때문에 아세안의 현실적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을 뿐이다.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의 무역 상대 지역이다. 중국에 이어 2위고, 일본, 미국, EU 보다 한국의 무역에 중요하다. 단순 무역 규모 만 아니라 무역 흑자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아세안과 무역에서 약 300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이는 중국 (468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흑자다. EU, 일본과 무역에서 한국은 적자를 보고 있다. 300억 달러의 흑자는 아세안, 중국, EU, 일본,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가와 무역에서 한국이 내고 있는 흑자인 170억 달러의 두 배 규모나 된다. 한국의 대 아세안 투자를 봐도 마찬가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1~3위 국가는 중국, 미국, 아세안이 돌아가면서 차지하고 있다. 2011년, 2012년, 2015년 총 투자액 기준으로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위 투자대상지역이다. 아세안에 대한 투자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앞지른 해이다.1

한국이 연간 국제사회에 공여하는 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지역도 아세안 지역이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에서 약 20~25%에 달하는 부분이 아세안의 5~6개 개발도상국에 집중된다. 한국이 공적개발원조를 공여하는 국가가 전 세계 100개 국가가 넘는 상황에서 아세안 5~6개국이 한국 공적원조의 25%를 차지하는 것이다. 2014년 기준 아세안 국가 국민의 해외 관광 목적지를 보면 호주, 일본, 미국 보다 한국이 많다. 연간 180만명의 아세안 국가 국민이 한국을 찾는다. 연간 약 600만명의 한국인이 관광목적으로 동남아를 방문하는데, 이는 일본, 호주, 미국, 영국, 인도 등 국가보다 많고 중국에 뒤질 뿐이다. 아세안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30만 정도로 인데, 같은 숫자의 동남아인이 한국에 거주한다. 국적별로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아인은 미국, 일본인 보다 많다.

현실이 어려워도 미래를 위한 대비는 해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와 4강 외교는 한국의 현재 안보, 외교 문제를 좌우한다. 가장 큰 안보 위협인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4강 외교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가장 많은 외교적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안과 지금 당장의 위협에 매몰되어 미래를 대비하는 외교를 하지 않을 경우 후일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국이 가진 국력과 외교력은 지금 당장 눈 앞의 일만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현안 문제를 다루면서도 미래를 대비하는 데 눈을 돌릴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은 충분하다.

아세안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많은 경험을 축적한 지역협력체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세안중심성 (ASEAN Centrality)을 주장한다. 지역의 모든 다자협력 아키텍처에서 아세안을 핵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세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세안공동체 (ASEAN Community) 건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공동체라는 세가지 방향에서 동남아 국가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작업이다. 이미 아세안 정상들은 2015년 아세안공동체를 선언했다.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세 부문 중 가장 앞서 있다. 아세안경제공동체의 탄생은 인구 6억, 총 GDP 3조 달러의 단일 시장 탄생을 의미한다. 단일 시장으로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정치안보공동체와 사회문화공동체의 잠재력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아세안경제공동체 만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지역이 아세안이다. 한국이 이런 아세안공동체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는 향후 한국 경제의 활로 모색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지역 다자협력에 구현된 아세안 중심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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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동남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해

이렇게 중요한 동남아/아세안에 대한 신정부의 구체적 정책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나? 동남아, 아세안과 우리의 협력 방향은 크게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부문으로 나뉜다. 이미 경제와 사회문화 부문에서는 외형적으로 협력이 크게 성장했다. 이 부문에서는 내실화가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신정부에서 동남아, 아세안 방면에 대해서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정치, 안보 협력이다. 경제와 사회문화 협력은 일단 물꼬가 트이면 민간 부문에서 협력을 주도하게 되어 있다. 이후 정부는 조력자로 참여한다. 반면 정치안보 협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일이다.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끌고 가지 않으면 정치안보협력은 어렵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동남아, 아세안과 정치안보 협력은 지난 두 번의 정부를 거치면서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이의 복원이 필요하다.

 

대동남아 외교 청사진을 먼저 제시해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번 정부에서 한국이 동남아와 아세안에 어떻게 접근할지에 관한 포괄적 청사진 혹은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아세안특사 파견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일단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다르게 동남아에 보다 적극적 정책을 편다는 첫인상을 주기에 적절한 조치였다. 이런 조치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대 동남아/아세안 청사진이 나와야 할 것이다. 물론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으면 좋지만, 구체적 내용은 아니더라도 대 아세안 외교의 철학적 배경을 간단히 담은 캐치프레이즈 형태로 한국이 동남아, 아세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크게 선회한다는 신호를 주고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과 현 단계를 고려해 문재인 정부의 한-아세안 관계는 “한-아세안 관계 3.0” 정도로 부를 수 있다. 1단계가 냉전 체제 하에서 만들어 진 관계이며, 2단계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발전시킨 것이라면 제 3단계는 한-아세안 관계가 상호 이익과 지역 전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십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아세안 관계 3.0을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는 1) 한국 외교의 제 5강으로 자리잡은 아세안, 2) 상호 이익을 기반으로 나아가 지역 공동 번영을 이끄는 파트너십, 3) 상화 안보 문제 협력과 해결을 통해 지역 평화를 견인하는 파트너십으로 구성된다. 이런 새로운 방향성의 파트너십은 한-아세안 관계가 양자의 이익만 아니라 지역의 이익과 평화 문제까지 협력의 범위에 넣는 큰 그림을 목표로 한다.

<한-아세안 3.0 시대 3대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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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와 경제협력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사적 부문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지역화 (regionalization)의 추세를 어떻게 이를 촉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경제 협력 외형 성장은 이미 모멘텀이 있으니 이제 어떻게 경제협력을 내실화 할 것인가 고민할 시점이다. 10주년을 맞은 한-아세안 FTA의 활용률을 높이는 방안, 아세안 내에서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집중된 무역 관계의 다변화도 과제이다. 아울러 단순히 한국이 동남아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중상주의적 시각을 넘어서 우리의 경제이익과 동남아 국가의 성장을 어떻게 선순환적 관계로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동남아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 극복이란 과제를 동반성장이란 명제로 풀어가는 협력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사회문화 부문에 있어서는 사적 부문, 특히 한-아세안센터의 활발한 활동으로 큰 진전을 보았다. 곧 문을 열 아세안문화원은 이런 한-아세안 사회문화 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초기 한국의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 상품이 어떻게 동남아에 진출할 것인가가 화두였던 시기를 지나 이제 어떻게 양방향 사회문화 교류를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한-아세안 사회문화 협력은 발전했다. 신정부 하에서 사회문화 협력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전을 해야 한다. 향후 5~10년간 한-아세안 사회문화 협력은 단순 문화 교류를 넘어서 양자간 사회적 이해와 시민사회간 협력으로 나가야 한다. 시민사회간 활발한 협력을 통해서 아래로부터 공통의 고민을 함께 풀어가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또 다문화 사회로 이미 진입한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 경험이 많이 축적되어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사회 정책, 문화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이 아세안으로부터 배우는 사회문화 협력이 필요하다.

 

정치안보 협력, 접근방법과 시각이 중요

동남아, 아세안과 정치안보협력 분야에는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정치안보 협력은 아직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 동남아 정책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공약에서 한가지 힌트는 볼 수 있다. 대선 공약에 따르면 동북아더하기 책임공동체 구축과 번영 공간 확대라는 방향성 아래 “아세안과 인도와의 외교를 주변 4강과 유사한 수준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수준으로 격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3 아세안을 4강 외교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향은 아세안 국가로부터 큰 환영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를 ‘동북아더하기’ 혹은 동북아플러스라는 틀로 묶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정치안보 협력에 있어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를 2차적 대상 (second tier countries)으로 간주한다. 한국에게 1차적 외교 관심사는 한반도와 주변 4강이다. 아세안도 일차적 관심사는 아세안 문제와 미국, 중국이라는 강대국이고 한국은 2차적 관심대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의 지속은 정치안보협력을 방해한다. ‘동북아더하기’에 나타난 대 아세안 인식은 동북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아세안 국가를 본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동북아 문제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을 적극적 행위자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세안을 동북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행위자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한국도 아세안과 아태 지역의 보다 넓은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위자가 되겠다는 상호 호혜적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 동북아 문제를 다루는 지난 정부의 구상에서 아세안은 주변적 위치에 있었다. 우리의 입장을 아세안에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동평구 안에서 아세안은 발언권 없는 관찰자에 불과했다. 아세안을 동북아, 북한 문제 해결과 관리의 일정한 지분을 가진 동등한 행위자로 포함하지 않는다면 아세안의 적극적 지지를 얻어 내기 힘들다. 반면 한국은 북한 문제에 동남아 국가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남중국해 문제나 여타 동남아 국가들이 가진 안보 문제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우리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기회주의적인 태도로는 동남아 국가와 안보협력을 발전시키기 어렵다.

 

한국이 먼저 손 내미는 정치안보협력

이런 한계들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의 동남아 정치안보 협력은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 ‘동북아더하기’로 동남아 국가들을 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 국제 관계에 중요 행위자로 포함하는 동시에 별도로 동남아 방면에 대한 한국의 정치안보 협력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두 번째로 동남아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가지는 안보 협력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감안해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세 번째로 동남아, 아세안과 정치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한국이 가진 소프트파워를 활용해야 한다. 이미 경제, 사회문화협력, 그리고 한류 등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동남아 국가에 먼저 정치안보 협력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한국과 아세안 사이에는 이미 안보대화가 2013년부터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아세안 대화라는 전반적 협력을 다루는 회의의 일부로 남아 있다.4 이 안보대화를 한-아세안대화와 분리하여 별도의 상호 안보 관심사 (예를 들면 북한 문제와 남중국해)를 논의하고 지역 전략 문제에 대한 생각 (예를 들면 강대국 갈등과 압력에 대한 대처)을 공유하고 비전통 안보 협력을 내실화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안보 협력에 있어 한-아세안 거리를 좁히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상호 안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서로 안보 관심사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동남아의 안보 관심사를 모르고, 동남아는 북한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상호 안보 관심사에 대한 논의는 이런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세안과 비전통 안보 부문 협력에서도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비전통 안보 협력은 한국이 동남아에 시혜를 주는 접근법이었다. 이제 동남아 국가와 함께 어떻게 지역 비전통 안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동남아 국가들의 역량을 존중하고 한국과 아세안의 시민사회 참여를 활성화 해 공동의 노력으로 문제 해결에 다가 가도록 해야 한다. 과거처럼 시혜성의 비전통 안보 협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보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능력을 갖춘 국가들과 공동으로 동남아 혹은 아태 지역의 비전통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등한 협력을 전개해야 한다.

북한 문제 해결에 동남아 국가를 참여시키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아세안과 동남아 국가들은 남북 관계가 회복되었을 경우 보다 북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건설적 역할을 하려 한다. 북한을 압박하는 주문을 한국이 할 경우 이를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남북 사이에 동남아 국가가 중재 등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을 매우 환영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등은 남북 사이 대화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제안을 한국 정부에 자주 했었다. 아세안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 ARF)도 늘 남북 대화 및 타협의 장으로 ARF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 보내곤 했다.5 북한 문제에 대한 동남아 국가의 공헌은 이런 방향에서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한-아세안 간 외교 관계에서 신정부는 두 개의 중요한 해를 앞두고 있다. 먼저 2019년, 즉 신정부 출범 3년차에 한-아세안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이 도래한다. 한국과 아세안이 공식관계를 맺은 지 30년이다. 이미 20년, 25년을 기념하는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바 있다. 30주년을 어떻게 한-아세안 관계 도약의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 지금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 4년차에 해당하는 2020년으로 이 해는 한국과 아세안이 동맹을 제외한 가장 높은 협력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지 10주년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한-아세안 협력 관계를 돌아보고 향후 10년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고 이를 계기로 post-2020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 Action Plan을 준비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주요 이벤트가 없고 신정부 2년차인 2018년에는 아세안+3, EAS가 열리는 싱가포르 및 주변국 순방도 고려해 볼만 하다.

<연도별 주요 한-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고려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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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지향적 외교를 위한 역량 강화

앞서 언급한 미래 지향적 외교를 위한 동남아 및 아세안 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구체적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크게 세가지 주제 즉, 외교역량 및 인프라 강화, 아세안 외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적 역량 강화, 그리고 동남아 관련정책 공간 확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외교역량 및 인프라 강화를 위해서 당연히 지난 10여년간 지속되어 온 외교부 내 아세안, 동남아, 지역협력 담당 부서의 인적, 물적 보강이 지속되어야 한다. 수많은 협력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동남아 지역 한국 공관은 이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작은 규모이다. 나아가 아세안 대표부가 한-아세안 및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총괄, 조정하는 기능을 맡도록 해야 한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다양한 제도와 회의들이 현실적으로 아세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세안 문제를 다루는 아세안 대표부가 전반적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아세안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협력 사업들을 총괄적으로 파악하고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도 있다.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각 분야에 걸쳐 중앙 부처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 기관의 다양한 협력사업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아세안 간 협력 사업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중복투자의 문제도 나타난다. 중복투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원의 낭비이고 협력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협력 사업 중복에 따른 피로감도 일어날 수 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지적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 내 동남아, 아세안 연구자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서 크게 모자란다. 아세안, 동남아 지역 연구자의 보다 적극적 육성이 필요하다. 4강과 한반도 외 여타 지역에 관한 연구는 시장 논리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고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존 연구자들의 효과적 활용도 필요하다. 현재 한-아세안 협력을 보면 지역 전문성과 기능 전문성이 모두 필요한데, 여기에 심각한 단절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한-아세안간 비전통, 인간안보 관련 협력은 지역전문가와 기능분야 전문가의 유기적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 만으로 충분한 협력의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기능협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곳에는 지역전문가가 없고, 지역전문가가 참여하는 곳에는 기능 분야 전문가들이 없다. 이들 사이 효과적 의사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동남아 관련 정책 공간의 확대는 다양한 분야들을 포괄한다. 맨 먼저 국내의 아세안, 동남아에 대한 인식 교정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정치, 안보, 경제, 사회문화 분야에서 동남아와 한국의 연계성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동남아에 대한 인식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일반인들 사이 동남아는 덥고 가난한 나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 값싼 여행지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가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한-아세안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해도 이런 국민들의 인식이 존재한다면 정부의 정책 의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고 정책적 탄력을 받기 어렵다. 한국 정부의 노력, 그리고 동남아 국가와 한국 내 동남아 국가 대사관들의 자국 이미지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나 외교부도 동남아 국가 대사관들이 한국에서 자신의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공공 외교의 장을 적극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한-아세안 관계 발전을 위해 동남아 내 한국학의 진흥이 필요하다. 이미 한류 등에 힘입어 한국어 교육은 많이 확산된 편이다. 이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이 동남아에서 배출되어야 동남아 내 한국학 진흥이 지속될 수 있다. 동남아 내 한국학에 대한 지원은 이런 분야에 더 큰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소수의 동남아 국가 출신 한국 전문가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이들을 한국 학계에 많이 노출시키고 자국에서도 보다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내 동남아 출신 결혼 이주민의 적극적 활용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자국 문화에 대해서 일회성 수업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일정 자격을 갖춘 동남아 출신 이민자들을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끌어 내야 할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으로는 한국의 대 동남아 정책, 특히 사회문화 정책에 대해 일정한 자문을 하는 자문단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ASEAN-Korea Centre. 2016. 2016 ASEAN & Korea in Figure 통계를 바탕으로 재구성.
  • 2.Earnest Z. Bower. 2010. “A New Paradigm for APEC?” cogitAsia. August 3.
  • 3.더불어민주당. 2017. 제 19대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pp. 234-235.
  • 4.Lee Jaehyon. 2015. “25 Years of ASEAN-Korea Relations and Beyond: From a Slow Start to a Solid Partnership” in Lee Choong Lyon, Hong Seok-Joon and Youn Dae-yeong eds. ASEAN-Korea Relations: Twenty-five Years of Partnership and Friendship. Nulmin Publishing: Seoul. Pp. 211-213.
  • 5.Rodolfo C. Severino. 2009. The ASEAN Regional Forum.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Singapore. pp. 25-27; 18th ARF Chairman’s Statement. 23 Jul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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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연구부문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