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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날짜와 장소까지 정한 북한 김정은과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24일 전격 취소했다. 북한이 김계관과 최선희의 담화를 통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펜스 부통령을 지목하며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과 핵 대결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사적인 회담이 무산된 만큼 한반도의 안보지형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를 시작으로 전개한 평화 공세와 대외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핵무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을 끌어들인 후 미국에 직접 위협인 핵 탑재 ICBM만 포기하는 선에서 미국과 타협하고 핵을 보유한 채 경제개발에 나서려던 전략에 일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정은으로선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정상회담이 취소된 근본 원인은 북한의 핵무력 보유 입장과, 미국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PVID) 입장간 간극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완전한 핵 포기의 전형인 리비아식 모델을 거론하며 PVID를 요구하자 북한은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트럼프는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할 의사가 없다고 보고 정상회담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의 결정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북한으로선 충격이 클 것이다. 첫 반응으로 대화를 계속하자는 김계관의 담화를 낸 것은 허를 찔린 북한의 당혹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회담 파국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며 워싱턴으로 공을 넘긴 것이기도 하다. 당분간 북한은 중국·한국 등을 동원해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 보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미국을 증오하며 대내외적으로 실추된 위신을 살리기 위해 김정은이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국지도발,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사이버 공격 등 북한의 비대칭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회담 취소에 한국 정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고위당국자가 회담 개최를 99.9% 장담했고, 대통령의 방미 하루 만에 접한 소식이기 때문에 정부의 대미 외교력과 한·미 공조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 요구가 제기될 것이다. 아울러 판문점 선언을 기반으로 완전한 북핵 폐기를 실현하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려던 정부의 구상에도 전반적인 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리 정부의 평화 구상과 트럼프 행정부의 미·북 정상회담 계획은 공통의 전제조건을 갖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함으로써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3국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은 이 목표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 보유가 지속되는 상황에 대비해 안보적 차원의 플랜 B, C가 필요하다. 실존하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는 건 정부의 존재 이유다.

정부는 전략지정학(geostrategy) 관점에서 핵 문제를 다룰 역량을 갖춰야 한다. 시진핑이 김정은을 연이어 만난 것이나, 트럼프가 북한이 변한 것 같다며 그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한 것은 북핵 문제가 더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북핵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간의 패권경쟁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우리의 선의와 이상, 희망과 기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각성을 해야 한다.

* 본 글은 05월 25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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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