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위기 상황에서 한미연합사는 유지되어야 한다.

* 본 글은 2013년 3월 정몽준 명예이사장이 쓴 것으로, 현 시점에서도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와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게재합니다.

 

2015년 12월이 되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단일 지휘부인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된다. 현재 한미연합사가 행사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에 전환된다. 2006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이는 한미관계가 최악이던 시절 두 정부가 내린 결정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연합사가 전작권을 행사하는 것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규정하고 한국군이 ‘전작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처음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한국 대통령이지만 전쟁이 날 경우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이 없다고 하자 럼즈펠드는 “대통령님께서는 지금 이미 열려있는 문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Mr. President, you are knocking on an open door.) 라고 했다.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을 포함한 모든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을 적극 검토 중이었는데 한미연합사가 마치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묘사되자 극도로 불쾌해 하면서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에 적극 동의한 것이다.

2006년 8월, 미국은 전작권 전환시기를 2009년으로 결정하자고 전격 제의했고 이에 놀란 노무현 정부가 오히려 2012년으로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청하여 전작권 전환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국전쟁 이후 지나 60년간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이었던 한미동맹을 뿌리째 흔드는 결정을 내린 이유치고는 너무나도 유치하고 경솔한 것이었다.

전작권은 전쟁 중 다국적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편이다. 작전통제는 특정임무를 위해 변경된 지휘계통하에서 해당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지휘권 보다 매우 제한된 권한이다. 주권이나 통수권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한미연합사령관인 미국 사령관이 전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시에 한국 대통령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이 없다거나, 한국에서 미군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휘권’과 ‘작전통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오는 몰이해의 소치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군은 효과적인 연합작전을 위해 1943년 후반부터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을 동맹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해 단일 지휘부를 구성하였다. 종전 후 미국과 서구국가간에 결성된 군사동맹인 나토의 작전통제구조는 현재의 한미연합체제와 대동소이하지만 나토회원국들 중 이를 주권침해로 여기는 나라는 없다.

6.25가 한창이던 1950년 12월 초 중공군과 북한군 역시 지휘 통일을 위해 ‘중조연합사(中朝聯合司)’를 설치하여 중국군 사령관 팽덕회가 중국과 북한의 연합군을 지휘하였고 김일성은 종전까지 군사작전문제에 전혀 간여하지도 못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역사를 고쳐 쓰면서 중국의 도움 없이 김일성 혼자의 힘으로 한국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수십만의 중국군 묘지들을 없애버리면서까지 중국의 기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군의 참전과 중국사령관이 지휘한 중조연합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북한정권은 없다.

아직 비밀로 분류되어 있지만 일반에 많이 공개된 한미간의 작전계획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미군은 69만의 병력과 5개의 항공모함, 160여 척의 함정, 2500여대의 항공기를 파견하게 되어 있다. 미국은 국내문제로 인하여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경우 실제 계획처럼 막대한 군사지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연결고리가 되는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은 이러한 지원이 필요 없다고 우리가 스스로 발로 걷어차는 격이다. 설사 미국이 계획대로 대규모 병력과 첨단 장비들을 보낸다 하더라도 한국군의 지휘 아래 효과적으로 운용하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2008년 1월 미국 워싱턴 방문시 만난 크리스 힐 당시 국무성 차관보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 일본, 유엔이 힘을 합하여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협정의 근거(umbrella agreement)가 사라진다고 크게 우려한 바 있다. 현재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는 한미연합사령관은 전쟁 발발시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물론 유엔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갖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체결된 미국과 일본, 유엔과 일본간 협정에 의해 현재 일본에 있는 7개의 미군기지도 활용할 수 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 유엔이 우리를 지원하기 위해 보내는 대규모 병력과 첨단 장비를 운영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후방 기지들이다. 그러나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사라진다.

오늘의 중국은 북한의 군사동맹국이고 지리적으로는 북한에 접해있다. 유사시 곧바로 북한에 지원군과 물자를 보낼 수 있다. 반면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다. 미군이 일단 한반도를 떠나면 전시에 다시 불러오기는 힘들다.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으로 잡은 것이 한미정상간의 합의였기 때문에 이를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무책임한 논리다. 국가안보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동맹국가간의 합의를 번복하는 것이 어려워서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를 방치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편협한 민족주의와 군사동맹의 성격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하여 국가안보를 위협하기에 이른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 계획은 폐기되어야 한다.

 

 

[매일경제] 이란 핵합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미국과 이란이 핵합의 복원 협상을 두고 신경전 중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란에 핵합의 우선 복귀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에 제재 우선 해제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버락 오바마 정부 주도로 주요 6개국 및 유럽연합과 이란이 체결한 2015년 핵합의를 깨뜨리고 이란 제재를 부활하자 이란도 핵합의 이행을 파기하고 우라늄 농축 재개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원을 중동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 모두에 핵합의 복원은 절실하다. 2020년 12월 바이든 당선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동 안정을 위한 최선의 길은 이란 핵합의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외교안보 라인도 2015년 핵합의 주역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꾸렸다. 올 1월 미국평화연구소 회의에서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핵합의 복원을 바이든 정부 외교의 중대한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이란 온건파는 핵합의 복원이 실패하면 국내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을 벌이자 이란 강경파는 핵합의에 서명한 온건파를 공격해 코너로 몰았다. 강경파는 반미 이슬람혁명 수출을 위해 핵개발도 고려하지만 온건파는 핵포기와 이란의 정상국가화를 추구한다. 트럼프 정책의 여파로 2020년 2월 총선에서 강경파는 230석, 온건파는 20석을 얻었다.

2015년에도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에 핵합의는 절실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전 참전에 따른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 개발로 인한 중동 의존도 하락,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중시정책 부상으로 `중동 떠나기`를 준비했다. 떠나기 전 오바마 정부는 핵합의를 성사시켜 이란 온건파에 힘을 실어주면 강경파 견제와 나아가 역내 수니·시아파 힘의 균형까지 이뤄낼 것이라 계산했다. 핵합의는 강경파의 핵무기 1기 제조에 필요한 브레이크아웃기간을 최소 10년간 1년 이상으로 연장했다. 게다가 국제연합전선의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 격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은 이란 도움이 필요했다. 시아파를 주적으로 삼는 ISIS는 이란에도 위협이었다. 핵합의를 둘러싼 화해 무드 속 미국과 이란은 공동의 적 ISIS를 상대로 함께 싸웠다.

2015년 핵합의는 이란 온건파에 강경파 주도 정국 속 오랜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였다. 강경파의 핵개발 의혹에 2011년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본격화됐다. 이에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2013년 대선에서 온건파 하산 로하니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됐다. 국내 여론의 압박 앞에 최고종교지도자는 온건파의 핵합의 추진을 허락했다. 로하니 대통령과 자리프 외무장관은 강경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핵감축을 받아들이고 제재 해제를 이뤘다.

미 민주당 정부와 이란 온건파의 핵합의 진정성은 여전해 보인다. 하지만 6년여 세월은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달라진 건 이란 강경파의 막강해진 파워다. 최고종교지도자의 군조직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 개입을 발판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시리아 친이란 민병대, 예멘 후티반군, 가자지구 하마스 등 꼭두각시 조직을 집중 지원하며 지역 헤게모니를 다졌다. 신형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도 공개했다. 역내 반대도 커졌다. 2015년 핵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인접국의 협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 핵무장을 우려하는 이스라엘은 핵과학자 암살, 핵시설 파괴의 비밀작전 지속을 공언하고 있다. 올 6월 이란 대선이 실시된다. 바이든 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2021년 핵합의 복원엔 이란 온건파 정부가 필요하다. 이는 절반에 못 미치는 가능성이지만 2013년 온건파 대통령 당선의 기적이 다시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

 

* 본 글은 03월 17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