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여전히 절박함 부족한 한·일

2023년 윤석열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법 발표(3월), 서울(5월)과 도쿄(3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복원했고, 이는 그해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출범하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그러나 관계 복원 후 1년이 지난 한·일 관계는 여전히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정부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1위가 상대 국가의 국민일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미지는 개선됐지만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등과 같은 갈등 유발 요인 역시 여전히 남아 있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물 반잔’ 역시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 최근 ‘라인야후’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란 역시 기업 간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의 대응이 깔끔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과 일본 모두 서로에게 상대방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해답, 즉 한·일 관계 개선의 절박성에 대한 공감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적 인연이 있는 양국 간 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자유민주주의, 인권, 규칙기반 세계질서 등의 가치를 공유하므로 협력이 더욱 의미 있다는 점에 대해선 원론적으로 공감할 수 있지만 이런 설명은 거의 모든 양자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만약 한국과 일본 모두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을 택했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 여전히 한·일 관계는 한·미·일 3각 협력의 약한 고리로 남게 될 수밖에 없고, 한·일 관계 역시 표정관리 이상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없는 인식을 억지로 만들어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일 간에는 여러 면에서 협력의 절박한 동기가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북한 핵 위협에 대한 잠재적 피해자이고, 떠오르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공통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만약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차기 미국 행정부가 동맹정책과 대북정책을 급격히 변환한다면, 그래서 북한의 핵 능력을 적당히 기정사실화하는 선(군축협상)에서 타협하고 그 위협은 동맹들이 알아서 대응하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양국 모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한국이 파고에 휩쓸리고 그 파도가 쓰나미로 변화되면 일본 역시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정부가 현재의 대외·대북정책을 지속한다 해도 그들이 북한과의 타협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확장억제 공약 강화를 요구하는 것도 한·일 모두의 과제다.

이제 한국과 일본의 국가 이익, 특히 안보를 위해 상대방이 없으면 곤란해진다는 인식이 양국 간에 공유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하고, 한·일 관계 발전의 중요성을 양국 국민 그리고 외교·안보 부처 이외 정부 인사들과 정치권도 체감할 수 있게 설명해 나가야 한다. 외교적 수사를 넘어 새로운 협력 관계 정립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 양국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긴요하다는 인식이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확산돼야 근본적인 해법이 마련된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한·일 협력의 미래를 위해선 이제 양국이 공유하는 이익과 공통으로 대처해야 할 위협이 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때이고, 필요하다면 양국 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도 추진돼야 한다. 여전히 일본 몫의 ‘물 반잔’이 채워지는 속도가 느리고 때로는 증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

 
* 본 글은 5월 13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중앙SUNDAY] 통일의 꿈, 버릴 것인가?

통일 이야기를 꺼내면 좀 생뚱맞게 느껴지는 요즈음 사회 분위기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틀 전 (재)통일과나눔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때 밝힌 필자의 소견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국제정치는 한반도 통일의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원심력이 커졌다. 미국과 중국이 7년 전부터 대결 구도로 들어섰고 상호 간에 경쟁과 불신의 강도가 높아졌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를 놓고도 서로 합의를 이뤄 낼 여지가 적어졌다. 6자 회담 틀에서 북한 비핵화에 협력하던 중국과 러시아가 지금은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을 비난하는 안건 채택에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구도를 강화하고 있는데 남북이 반대 진영에 서서 대결하는 형국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통일의 방향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힘, 즉 구심력이 매우 약화되었다. 북한의 핵 개발로 남북 경협이 단절된 지 오래다. 더구나 북은 2019년 하노이 핵협상 실패 후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며 남을 위협하고, 작년 12월 말 남북 관계를, 같은 민족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별거가 아니라 아예 이혼하자고 나선 셈이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다.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4년 69.3%에서 2022년에는 53.4%로 감소했는데, 특히 20대 청년층의 경우는 61.5%에서 39.1%까지 떨어졌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통일방법론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하다.

그러니 이제 통일의 꿈은 버려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절망스럽게 보이는 강고한 국제정치 구도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주변 국가들의 내부 상황이 그렇다. 저성장으로 접어든 중국 경제는 인구 감소, 부채 누적, 부동산 버블, 외국기업 철수 등의 구조적 요인들로 상당히 어렵다. 국민은 공산당 일당 지배를 수용하고 정부는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는 당과 국민 간의 묵계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이는 정치·사회적 불만과 불안 요인이다. 미국도 올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내정과 외교가 크게 변할 수 있다. 북한은 남북 적대국가 관계론을 내세워야 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 불만과 사상적 이완이 심각하다. 주변국들의 이런 내부 요인들이 언제 어떻게 터져 나와 국제 정치 구도를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 독일도 통일 1년 전까지 냉전 붕괴로 통일이 가능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도 흔들림 없이, 긴 호흡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한반도 통일이 국제사회에도 큰 플러스가 됨을 설득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통일되면 지금과 같은 군사적 초긴장 상태의 골칫거리 한반도가 아니라 네덜란드처럼 통상·물류·문화의 허브 국가로 거듭나, 주변국들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될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남북 차원에서도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는 튼튼히 하면서도 우발적 충돌의 확전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소통 창구 마련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에 입각해, 의료지원 등 북한 주민의 삶을 조용히 돕기 위한 직접적 또는 우회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 국내에서도 통일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통일의 기회가 와도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그것을 감당 못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같은 극단적 정치 양극화로는 통일과 같은 큰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정치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이질적 정치 체제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을 민주주의로 통합해 내는 데 지방자치제도가 대단히 중요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지양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효율성과 복지를 아우르는 사회 통합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살벌한 무한경쟁 체제에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으니, 국민들의 마음이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통일이냐”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3·1절, 광복절, 6·25전쟁 기념일마다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며 감사하고 기린다. 그렇게 선조 덕을 본 우리들이 피를 나눈 아들, 딸, 손주, 그 자손들이 더 떳떳하고 더 풍요롭게 살게 될 통일에 대해서는,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 더 내야 할 통일은 못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역사’와 ‘공동체’는 사라지고, ‘지금’의 ‘나’에게만 매몰되어 있는 모습이다. 또 그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 어른들이다.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대국 사이에 끼어 세 번씩이나 영토를 분할 당했다. 그러다 1795년부터 아예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23년의 긴 세월 동안 그들은 국가 재건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 소멸 후, 1830년과 1863년 등 수차례에 걸쳐 국민적 봉기가 있었다. 그러한 열망이 있었기에 1차 대전 종전으로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져 힘의 공백이 생겼을 때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뜻이 있었기에 길도 열렸다. 우리는 어쩔 것인가?

 
* 본 글은 5월 11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조선일보] 동맹을 흔들어 미국의 고립을 자초하는 트럼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해야 하고, 만일 한국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은 그가 취임하던 2017년 9507억원에서 2023년에는 1조2896억원으로 35% 이상 증가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동맹국인 미국을 신뢰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9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1.6%가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이는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한국민들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와 존경은 단순히 미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고,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인들은 소련을 “공포와 멸시(fear and contempt)”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반대로 소련 사람은 미국을 “공포와 존경(fear and respect)”의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에 대한 공포심뿐만 아니라 적대국의 국민들로부터도 존경을 얻을 수 있었던 저력 때문이었다.

동맹을 부부 관계와 비교해보자. 부부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처럼 동맹도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동맹을 경제적인 손익으로만 따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발상은 미국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와 존경을 훼손하고 오히려 미국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게 유지되려면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우리’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툭하면 부인에게 생활비를 더 내라고 하면서 안 내면 이혼하겠다고 하면 그런 가정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덩치만 큰 이기적인 국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미국의 지위는 흔들리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다.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에는 수많은 동맹국의 기여가 있었고, 구(舊)소련·중국·북한이라는 공산권 세력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맹과 우리 국민의 노력의 결과였다.

1950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에치슨이 한국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 실수를 저지르자 여섯달 만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해 유엔군을 결성하고 16개국의 전투병 파병과 7개국의 의무 지원을 이끌어내어 유엔 깃발 아래 공산 세력의 침공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6·25전쟁에서 우리 민간인 100만명과 한국군 15만명, 미군 3만4000명이 포함된 유엔군 4만1000명이 사망했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데, 만일 그 당시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국가였으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았을까?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비문에는 “미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라고 쓰여 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글귀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한반도는 강대국의 안보 이익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인데, 6·25전쟁은 공산 세력이 유라시아 전체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북한을 앞세워 저지른 것이었고, 만약 한국이 공산화되었다면 일본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며, 서태평양 지역의 정세는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미국의 융성과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도 어려워지면서 오늘날의 세계사는 다시 쓰여야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공정(fair)’한 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상호(mutual)’라는 문구는 미국만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지켜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한국 역시 언제든 미국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고, 이것이 공정한 방위조약의 정신이다.

지난 2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인도-태평양사령관 인준 청문회에서 새뮤얼 파파로 지명자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동맹 및 파트너국 중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고,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도 “주한 미군은 돈을 받고 한국을 지키는 용병이 아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해도 트럼프와 같이 동맹국을 마구 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평등하며, 이는 유엔 등 국제기구의 1국 1표 원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트럼프는 이 원칙을 망각하고 미국이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데, 이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일이다.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미국은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국가가 미국의 가치에 공감하고 그 전략에 동참하는 것은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방주의를 자제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트럼프의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은 동맹을 흔들고 미국이 만들고 수호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위협할 것이다.

 
* 본 글은 5월 13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