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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사회는 미국·중국의 패권 경쟁, 지역 분쟁 장기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첨단기술 다툼 등 ‘복합위기’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외적 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지키는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의 역할은 나날이 막중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력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우리의 최전선 방어막인 외교의 인프라가 국력에 부합하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존 햄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명예회장은 “한국의 경제 규모는 네덜란드의 2.5배지만, 외교부 규모는 절반에 불과하다”며 국력에 부합하는 외교 역량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전체 외교 인력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2879명인 데 비해 네덜란드는 5899명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가 오히려 2배 많은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격차는 더욱 충격적이다. 2025년 기준 한국의 외교부 총정원은 인구 10만 명당 5.6명 수준에 불과하나 네덜란드는 32.5명이나 된다. 네덜란드의 인구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인구 대비 외교 인력은 무려 5.8배나 많다. 이는 한국 외교가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며 심각한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외교 현장의 척박한 현실은 예산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2026년도 외교부 예산은 3조61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5% 삭감돼 사상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정부 전체 예산 중 외교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0.5% 정도다. 반면 네덜란드 외교부 예산은 전체의 3.5%인 28조 원으로, 우리의 8배에 이른다. 유럽연합(EU) 분담금이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등이 포함돼 있다 해도, 수출 중심 통상 국가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표방하는 시기에 외교부 살림살이가 작아진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양질의 인력 충원을 위해 국력에 걸맞게 예산을 과감히 증액해야 한다.
외교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과 그들이 구축하는 ‘네트워크’로 이뤄진다. 인력이 부족하면 그 한계가 분명하고, 결국 현안 처리 위주의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외교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외교 인력의 대폭 확충 등 외교 역량의 근본적인 체급 올리기가 선행돼야 한다.
나아가 양적 확대와 더불어 전문성의 질적 도약도 시급하다. 현대 외교는 기후변화, 인공지능(AI) 및 첨단기술 거버넌스, 핵심 광물 확보, 우주와 사이버 안보 등 고도의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급격히 확장됐다.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순환 근무의 한계를 극복하고, 특정 분야에서 장기간 전문성을 축적한 ‘스페셜리스트’를 적극 양성하고 영입해야 한다.
외교는 국가안보를 수호하고 경제성장의 기반을 개척하는 제1 방어선이자 핵심 성장동력이다. 외교 인력과 역량 투자를 단순 행정 비용 증가로 인식하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효율적인 안보 투자로 봐야 한다. 다극화 시대의 룰메이커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국격에 걸맞은 외교 인프라 확충에 초당적인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다.
* 본 글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선임연구위원
심상민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나왔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한국 전력산업에서의 기후변화 법-정책 문제를 연구주제로 하여 법학박사학위(JSD)를 취득하였고, 미국 환경법연구소(ELI) 방문연구원,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조교수,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국제법 강의 외에 다양한 국제법 이슈에 관해 연구 및 정부 자문을 행하고 있으며, 특히 핵비확산·북핵 문제, 해양법, 북한인권, 국가책임, 기후변화, 그리고 비전통안보 현안(환경, 에너지, 경제, 인간안보)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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