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물

기고

검색창 닫기 버튼

[중앙SUNDAY] 한·일협력, 선택에서 생존의 문제로

작성자
윤영관
조회
94
작성일
26-05-26 10:36
  • 프린트 아이콘
  • 페이지 링크 복사 아이콘
  • 즐겨찾기 추가 아이콘
  • 페이스북 아이콘
  • 엑스 아이콘

한·일 관계 안정화한 이재명 정부

북·중·러 밀착, 미국 불확실성 속

양국 협력하면 전략적 입지 강화

경제뿐만 아닌 군사협력도 필요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안동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 동안 일본 총리와의 6번째 만남으로 한·일 정상 간의 셔틀 외교가 자리 잡았다. 김대중 정부를 제외한 역대 진보정권과 달리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 노선은 한국의 외교 환경을 상당히 안정시켰고 많은 국민들을 안도하게 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LNG·원유 비축, 스와프, 공급망 복원력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란전쟁의 여파가 양국의 에너지 안보에 큰 충격을 주고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 보인다. 전쟁이 끝나도 고유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데 한국의 원유 비축분도 계속 줄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중동발 공급망 압박에 공동 대처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수출주도 성장을 해온 한국에 보호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국제경제 환경은 대단히 불리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서둘러야 하고, 여기에 일본 정부도 적극 협력해 주기를 희망한다.

 

경제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영토주권, 자유무역 등 국제질서의 규범이나 동맹보다도 힘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베이징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뒤시진핑과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매우 상세히 논의했다고 밝혔고,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이를좋은 협상 카드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는 1979년 미·중 수교 후 미국이 대만을 버리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미국-대만 관계의 근간이다. 그리고 이것을 중국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1982년 레이건 행정부 이래 대만에 대한 6개 약속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한국·일본·필리핀 등 미국의 동맹국들에 충격을 주었다. 미국으로부터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이나 북한과 협상하는 경우, 상대 국가가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한·미 동맹, ·일 동맹의 핵심 공약이 거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이 중국과 타협해서 동아시아에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해 줄 경우 중국에 인접한 두 민주국가,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 위상은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다. 또한 북·미회담이 재개되어 북한이 만일 ICBM 제거를 제안하고 나오는 경우, 미국이 비핵화나 단·중거리 미사일 문제는 방치한 채 북한과 딜을 성사시킨다면?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겠지만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계속 노출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 한국의 안보 상황에 대한 외국 전문가들의 우려가 부쩍 늘었다. 스탠퍼드대의 군사전문가 마스트로(O.S. Mastro)는 올 5~6월호 포린어페어즈지에서 북·러 간 동맹과 군사적 밀착으로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중국에 추가해서 러시아도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억제는 이제 북·· 3국 억제를 의미하게 되었는데 2026년 미국 국방전략보고서는 대북 억제의 주임무를 한국에 맡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핵무장에 추가해 러시아 동맹 확보로 자신감에 찬 북한 수뇌부의 오판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니,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하게 한국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의 어느 문서에서도 북의 대남 핵공격의 경우 미국이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종래의 공약이 안 보인다.

이것이 한·일협력이 긴요한 이유다. 물론 미국의 의지가 강해져서 한·· 3자 협력이 굳건해진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미국의 의지가 흔들리는 경우, ·일협력 강화는 북한 및 북·러 동맹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국 혼자 대응하기보다 일본의 정보·해상·미사일 방어 능력과 연결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일본 측도 지정학적 불안정성의 증대와 경제 안보 위기라는 측면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지난 4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이시바 전 총리는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과 미국의 동맹국 간의 횡적 연대를 통한 아시아판 집단안보 체제를 주장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없으면 한국의 유사시 일본으로부터 신속하고 체계적인 물자 지원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것이다.

이제 한·일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과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질서 안에서의 협력이었다면, 지금은 미국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생존형 협력에 가까워졌다. 미국이 흔들릴 때 미국의 방기 위험에 민주국가이자 규범기반 국제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상황이 왔다. 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북·러 동맹, ·중 경쟁, 미국의 불확실성에 취약해질 것이고 협력하면 양국 각자의 주변국들에 대한 전략적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동북아의 안보 공백도 부분적으로 메꿀 수 있을 것이다.

양국 정부는 국내 정치적으로 상대국 여론을 자극하는 언행을 지혜롭게 통제해 가면서 한·일협력의 이득을 최대한 살려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윤영관

이사장

윤영관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입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한국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연구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 II 공동의장(2011-2012)과 국회의회 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2019-2020)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국제정치경제, 한국 외교정책, 남북관계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