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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미국의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촉발된 미·이란 전쟁은 세계 경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고지도자를 잃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본 이란은 보복 조치로 주변국 미군기지와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는 한편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게다가 해협 통과를 원하는 선박에 최대 약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받고 통과시키면서, 이를 제도화하려 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이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전형적인 ‘국제해협’이다. 유엔해양법협약상 국제해협에서는 ‘통과통항권’이 모든 선박과 항공기에 보장되며, 이들은 해협을 계속적이고 신속하게 통과할 목적으로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연안국은 안보상의 이유로도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을 방해하거나 정지할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은 모든 국가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관습국제법이 됐다는 것이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해양국의 입장이다. 따라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통행료를 내는 선박에만 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것은 통과통항권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설령 이란이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이 아님을 내세워 통과통항권을 부정하더라도, 관습국제법으로 확립된 ‘무해통항권’은 준수해야 한다, 무해통항권이란,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와 공공질서 및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당 국가의 영해를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제법상 연안국은 영해를 통과한다는 이유만으로 외국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할 수 없으며, 오직 특별한 용역에 대한 대가만 청구할 수 있다. 이란이 제도화를 추진 중인 통행료 부과는 안전 항로 제공을 명분으로 하지만, 이는 이란이 설치한 기뢰 위치를 알려주거나 항행 선박에 대한 공격 자제를 의미할 뿐이어서 적법한 수수료 부과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란의 행위는 국제인도법 위반이기도 하다. 해전(海戰)에 관한 관습국제법을 정리한 ‘산레모해전법 매뉴얼’에 따르면, 교전 당사국이라도 전쟁과 무관한 중립국 상선의 항행 자유를 박탈하거나 국제해협을 전면 봉쇄하는 것은 금지된다. 한국과 같은 중립국 선박의 통항을 막고 돈을 요구하는 것은 전쟁법상으로도 근거가 없는 위법 행위이다.
현재 26척의 한국 국적 선박이 걸프만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원유 및 가스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국제법 원칙에 어긋나는 통행료 지불을 승인하거나 방임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국제법적 권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이란의 통행료 지불 요구에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유사 입장국들과 연대해 이란에 통과통항권과 무해통항권 보장을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확보를 위해 논의 중인 다국적 공동 작전 참여 문제는 향후 중동 및 이란, 미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다각적 검토를 거쳐 결정하되, 국회와도 긴밀히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 본 글은 4월 29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선임연구위원
심상민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나왔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한국 전력산업에서의 기후변화 법-정책 문제를 연구주제로 하여 법학박사학위(JSD)를 취득하였고, 미국 환경법연구소(ELI) 방문연구원,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조교수,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국제법 강의 외에 다양한 국제법 이슈에 관해 연구 및 정부 자문을 행하고 있으며, 특히 핵비확산·북핵 문제, 해양법, 북한인권, 국가책임, 기후변화, 그리고 비전통안보 현안(환경, 에너지, 경제, 인간안보)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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