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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이란·북한 ‘핵’ 방치 中, G2 자격 있나

작성자
최강
조회
49
작성일
26-04-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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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의 2차 종전 협상이 주말에 열릴 듯하다지만,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맞선 미국의 역()봉쇄로 세계 물류는 심각한 동맥경화를 보이고 있다. 전쟁 발발 전인 2 27일 배럴당 68.40달러이던 두바이유는 지난 13일 기준 106.50달러로 치솟았다.

 

유엔은 실질적 중재도 하지 못하고, 강대국들 역시 책임 있는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 2013년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며 주요 2개국(G2)으로서 국제질서 공동 관리자를 자처해온 중국은 ‘적대행위 중단’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할 뿐,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나 사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크링크’(CRINK) 권위주의 연대의 이해관계를 의식한 선택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자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설 멤버임에도 2015년 주요 6개국(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간에 합의된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허용된 3.67% 농축 한도를 크게 초과한 고농축 우라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5월에 나온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농축도 6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약 408㎏ 보유함으로써 핵무기 보유의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책임 있는 강대국의 역할이다. 그러나 중국은 IAEA의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개발 저지에 소극적이었고, 전쟁 상황에서도 ‘대화와 긴장 완화’라는 외교적 수사에만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북한 문제에서도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긴커녕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라는 논리로 핵무장을 사실상 옹호해 왔다. 그 결과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고, 한반도는 구조적 핵 위협에 노출됐다. 최근에는 ‘비핵화’ 대신 ‘안정’과 ‘대화’가 강조되면서, 핵 보유를 전제로 한 관리 중심 접근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국제 비확산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위험한 변화다. 비핵화라는 목표가 흐려진다면 핵개발 국가들의 행위가 기정사실화하고, ‘핵 도미노’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이란 전쟁의 수혜자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에 호르무즈 해협은 핵심 통로이며, 통항 불안정과 고유가 지속은 중국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해상 물류 위축과 세계 교역 감소 역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단기적 이익이 장기적 구조적 리스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이란이라는 두 가지 문제는 중국의 책임성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G2라는 지위는 단지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돼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중국의 책임 회피를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며, 미·이란 전쟁과 관련해서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 보장이 국제경제 질서를 위해 필수임을 강조해야 한다.

 

 

* 본 글은 415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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