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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란 저항 서사의 착시

작성자
장지향
조회
37
작성일
26-04-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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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마지막 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불안정하나마 휴전에 들어갔다. 지난 한 달여간 긴박한 전쟁 전개를 두고 여러 해석이 쏟아졌다. 낯선 지역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전쟁이 국제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우리네 일상까지 불안하게 만들다 보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선명하고 단순한 설명을 찾기 시작했다. 역사적 의미까지 덧입혀 깔끔한 인과관계로 정리하면 더 수긍이 갔다. 여기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슈퍼파워 미국 앞에 약자로 보이는 이란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기도 했다. 힘의 비대칭이 도덕적 문제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서사가 있다. 이란이 절대 강자 미국과 최첨단 무기 강국 이스라엘에 맞서 의외로 잘 버틴다며 페르시아 민족 특유의 저항 DNA나 열세 속에서도 순교를 택한 시아파의 '카르발라 정신'의 발현이라는 해석이다.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 페르시아의 자긍심과 7세기 순교자 이맘 후세인의 정신을 현재 이란에 겹쳐놓은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 비난과 고립은 아랑곳없이 전 세계를 볼모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채 협상을 중재하던 오만과 제재 위험에도 경제적 도움을 주던 카타르에까지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한 이란의 행동 어디에서 저항과 순교의 정신, 서사의 감동을 찾아야 할까.

 

실제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래 최대 전력을 중동에 배치하고 고도화된 정보 자산과 AI 역량에 기반해 이스라엘과 체계적인 공중전을 벌였다. 이란의 핵심 안보 자산 2만여 개가 무력화되고 미사일·드론·해군 전력이 타격을 입었다. 나아가 이란 지도부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돼 하루에도 몇 번씩 상반된 메시지를 내놓으며 내부 조율 기능을 잃은 듯했다. 특히 수뇌부의 잇단 폭사로 통제 지휘 체계가 흔들린 혁명수비대는 지역 단위에서 파편화된 개별 공격을 벌였다. 개전을 만류했던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 등 이웃 걸프국의 에너지·상업·물류 인프라까지 미사일·드론 4000여 기로 무차별 공격했다. 궁지에 몰리자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반응한 것이다. 걸프국 방어망이 발사체의 90% 이상을 요격했지만 나머지 400여 기는 그대로 떨어져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아울러 이란의 저항과 순교 서사는 이란을 하나의 단일 행위자로 여기는 근본적 오류도 내포한다. 반미·반이스라엘 이슬람혁명의 경직된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위압적 권위주의 체제에서 지배층이 내세우는 국익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이익과 겹치지 않는다. 이번 전쟁에서 열두 살 소년병까지 동원하려는 혁명수비대의 행태가 보여주듯 이들은 공익이 아니라 집단 사익과 체제 유지에 몰두한다. 결국 이들이 기를 쓰고 지키려는 체제는 이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현대사를 가르는 분기점은 2026 1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당국의 유례없는 유혈진압이다. 기관단총까지 동원된 강경 진압으로 최대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희생자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였다. 이란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이들은 더 이상 이슬람혁명이나 시아파 순교 서사에 자신을 투영하지 않는다. 만약 '저항의 DNA'를 말해야 한다면 그건 혁명수비대와 성직자 지배층이 아니라 바로 올 1월 이들의 철권 공포 정치에 분연히 맞서 거리로 나선 이들 청년에게서 찾아야 한다. '진정한 약자'인 이들은 이슬람혁명 수출과 핵개발을 위해 국제 제재를 기꺼이 감수하라는 집권층의 요구에 맞서 "이슬람은 아랍에나 돌려주라"고 외쳐왔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조국 이란의 영광과 미래를 절박하게 아꼈다.

 

 

* 본 글은 41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장지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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