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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좁은 수로,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세계경제의 급소로 부상하고 있다. 하루 수천만 배럴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오가는 에너지의 목줄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해협이 사실상 세계 식량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관문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만약 이곳이 막힌다면 충격은 주유소 가격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식탁도 함께 흔들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닌 현실적 리스크가 됐다. 문제는 유가 상승만이 아니다. 오늘날 식량은 에너지, 비료, 해상 물류가 촘촘히 얽힌 글로벌 시스템에서 생산되고 이동한다. 그리고 호르무즈해협은 이 복합 네트워크가 수렴하는 핵심 연결점에 있다. 이곳이 흔들리는 순간, 에너지 시장을 넘어 식량 공급망 전반에 연쇄 충격이 번질 수밖에 없다.
해협 하나에 묶인 식량 공급망
걸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호르무즈해협은 밀·옥수수·쌀·대두·설탕·사료 등 주요 식량 자원이 걸프 지역으로 유입되는 핵심 관문이다. 글로벌 곡물 무역의 상당 부분이 이 수로를 거쳐 이동하며, 특히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등 걸프 국가가 소비하는 식량의 약 70~90%가 수입에 의존하고, 그중 대부분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은 이 지역의 구조적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이 지역 인구는 약 1억 명에 이른다. 단순계산으로도 하루 8000만~9000만㎏(약 1억8000만~2억파운드)에 달하는 식량 수요가 있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때 이 막대한 물량을 단기간에 다른 경로로 조달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사회의 대응 여력 역시 제한적이다. 가령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2024년 기준 하루 약 150만파운드(약 68만kg) 수준의 식량을 8000만 명 인구에게 지원하고 있다. 이는 걸프 지역 단일 권역의 수요와 비교해도 턱없이 작은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연안의 제다항을 활용하거나 일부 국가가 육상·우회 항로를 마련해 두고 있지만, 이는 단기적 완충장치에 불과하며 장기 봉쇄를 견딜 수 있는 대안은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결코 지역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걸프 지역은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에너지와 식량이 교차하는 글로벌 허브다. 이곳에서의 수급 불안은 곧바로 국제 곡물 가격 상승과 물류 병목으로 이어지고, 취약국의 식량 접근성을 급격히 악화한다.
나아가 식량 부족이 심화할 경우 대규모 인구 이동이 촉발되면서,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를 넘어서는 지정학적 충격과 인도적 재난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 없는 농업은 없다
현대 농업은 본질적으로 에너지산업에 가깝다. 농기계는 디젤과 전기에 의존하고, 관개 시스템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수확 이후의 저장·가공·냉장·운송 역시 모두 에너지 집약적 과정이다. 가령 대규모 곡물 생산에서 트랙터와 콤바인 수확기는 거의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수확한 곡물은 건조 시설을 거쳐야 하고, 이후 냉장·냉동 물류망을 통해 이동한다. 식품 가공 역시 고온·고압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농업 생산비 전체가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운송이다. 세계 식량 교역은 해상 물류에 의존한다. 선박 연료 가격이 상승하면 곧바로 곡물 가격에 반영된다. 결국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에너지 충격은 단순히 생산 비용 상승이 아니라, 전 세계 식량 가격 체계 전체를 밀어 올리는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비료와 물, 글로벌 농업의 숨은 병목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글로벌 식량 시스템에 치명적인 또 다른 이유는 비료 때문이다. 현대 농업 생산성의 상당 부분은 비료에 의존한다. 특히 질소 비료는 천연가스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에너지 시장과 직접 연결된다. 질소 비료 생산의 핵심은 암모니아 합성인데, 이 과정에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중동은 천연가스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동시에 인산염(모로코 등), 칼륨(러시아·벨라루스 등)과 함께 질소 비료는 글로벌 공급망이 고도로 집중된 산업이다. 문제는 이런 비료가 단순히 생산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된 비료는 다시 해상 운송을 통해 전 세계로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호르무즈해협은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다. 전 세계 교역 질소 비료의 약 30~40%가 이 경로를 통과한다는 점은 이 해협이 단순한 에너지 통로가 아니라 농업 생산성의 병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료 공급이 흔들리면 농민은 즉각적으로 투입량을 줄인다. 이는 몇 달 뒤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 충격은 시차를 두고 나타나지만 광범위하게 확산한다. 실제로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후 비료 가격 급등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생산 감소와 식량 불안을 초래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이보다 더 큰 충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물이다. 걸프 국가는 담수화 설비에 크게 의존하는데, 이 시설은 안정적인 에너지와 해상 환경을 전제로 작동한다. 만약 군사 충돌로 해수가 오염되거나 설비가 타격받을 경우, 식수 공급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는 생존의 문제다. 식량 공급이 흔들리고 물까지 부족해질 경우, 사회 불안과 정치적 충격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과거 식량 가격 급등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진 사례가 반복되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이러한 위기를 단기간에 압축해 발생시킬 수 있다.
한국은 과연 안전한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낮고, 에너지와 비료 모두 수입의존도가 높은 전형적인 개방형 경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식량 조달에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에너지와 식량을 통합해서 봐야 한다. 농업은 에너지 의존 산업이며, 에너지 안보는 곧 식량 안보다. 둘째, 비료 공급망 안정화가 핵심 과제다. 비축을 넘어, 원료 확보, 생산 기반 다변화, 장기 계약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해상 물류 리스크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특정 해협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 항로와 물류 네트워크를 사전에 확보해야 한다. 넷째, 곡물뿐 아니라 비료, 에너지, 심지어 물류 능력까지 포함한 통합 비축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급망 충격이 가격으로 전이되는 속도를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 관리 차원의 접근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더 이상 에너지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식량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이다. 그리고 이 충격은 비대칭적이며 연쇄적으로 확산한다. 하나의 병목만 흔들어도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 그리고 이를 완전히 방어할 수 없는 현실, 이것이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의 본질이다. 이제 위기는 주유소를 넘어 식탁에서 시작될 수 있다.
* 본 글은 3월 30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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