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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경제성장은 완만하고, 국제 질서는 흔들린다

작성자
김흥종
조회
46
작성일
26-01-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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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맞았다. 붉은 말의 해는 흔히 화력과 추진력, 변화의 상징으로 불린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을 놓고 본다면, 2026년은 이러한 상징에 걸맞게 급격한 전환과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거치며 유라시아의 양 끝에서 동시에 안보 질서의 균열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 영역에서도 팬데믹 이후 이어져 온 장기 회복 국면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질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이 일련의 변화는 지난 80여 년간 유지되어 온, 이른바 ‘20세기 국제 질서’가 점진적으로 소멸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안보의 귀환, 경제의 조건화

 

우선 글로벌 안보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는 특히 유럽과 동북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자체 방위 능력 강화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강요된 과제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역할 역시 재정의되고 있다. 이는 유럽이 안보를 미국에 위임해 왔던 20세기적 예외 상태를 정리하고,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반복되어 온 전통적 지정학적 안보 환경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EU) 차원의 자체 안보역량 강화는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2026 7월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릴 예정인 나토 정상회의는 과거의 나토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동북아의 안보 환경 변화도 만만치 않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북한과 중국의 관계 회복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기한 ‘한반도 두 국가론’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역학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동북아 안보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점 역시 중요한 변수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역할 분담 요구, 이를 기회로 ‘보통 국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일본의 전략, 사안별·국가별로 분리 대응하며 각개격파를 시도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북아의 전략 환경은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2026년에 개최될 한·미·일 안보 관련 회의는 그 격과 형식에 관계없이 주요한 관심사가 될 것이며,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 여부와 시기 역시 한국의 전략적 위상과 맞물려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의 변화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가 더 이상 미·중 대립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구조적 상수지만, 향후 몇 년의 대외 환경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은 당분간 ‘불안한 동거’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며, 여기에 전쟁을 통해 영향권을 재편하고 있는 러시아가 더해지면서 사실상의 미·중·러 삼각 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질서의 핵심적 특징은 경제와 안보의 결합이다. 공급망, 에너지, 기술, 금융 접근이 모두 안보 논리와 연결되면서 경제활동 자체가 조건부가 되고 있다. 단순한 수출 통제를 넘어 투자 압박, 기술이전 요구, 현지 생산, 규범과 표준 수용을 전제로 한 조건부 시장 접근이 한국 같은 중견국에 새로운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 안보는 더 이상 보조적 개념이 아니라 전통적 안보와 직결된 핵심 변수다. 이러한 환경에서 중견국의 전략적 선택 공간은 구조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을 대리해 다른 한쪽을 선제적으로 적대시하는 접근은 비용만 키울 뿐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성장률은 ‘완만’, 불확실성은 ‘구조적’

 

2026년을 맞이한 세계경제 역시 단순한 경기 순환의 연장선이라기보다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성장 경로와 위험 요인이 동시에 재편되는 국면에 가깝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전망 기관의 최근 전망을 종합하면, 2026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 내외의 완만하지만 비교적 견조한 수준이 예상된다. 미국은 금리 인하 전망을 바탕으로 2%대 중반, 유로존은 독일의 회복과 스페인 등의 성장에 힘입어 1%대 초중반, 중국은 부동산 조정과 내수 회복 지연 속에서도 4%대 후반의 성장이 점쳐진다. 한국 역시 수출 회복과 반도체 업황 개선을 토대로 2% 안팎의 성장률이 거론되고 있다. 수치만 보면 위기 국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의 질과 지속성이다.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는 통화· 재정 정책이라는 전통적 경기 관리 수단보다 각국의 산업 정책과 안보 전략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고 있다. 이는 성장률의 변동성이 특정 사건이나 정책 결정에 의해 급격히 증폭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형상 안정적인 성장 국면처럼 보이지만, 정책과 전략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각국의 정책 결정과 기업의 투자 판단을 지배하는 변수는 더 복잡해졌다. 지정학, 지경학, 안보, 기술, 통상이 서로 얽히며 경제 환경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역시 이러한 질서 전환의 영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단기적으로는 대미 투자 흐름, 미국 통화정책 방향, 지정학적 충격,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환율을 흔들 수 있다. 다만 한국의 펀더멘털(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주요 지표)은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단기 변동성을 완화하는 정책 대응과 함께 내수 투자 확대, 원화 수요를 자극하는 제도 개선, 자본시장 투명성 제고가 병행된다면 환율은 점진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 구조, 외환보유액 규모, 기업 부문의 대외 건전성을 감안할 때 2026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초반에서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는 중동, 우크라이나, 대만해협 등에서의 지정학적 충격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전망이다.

 


위험 요인과 전략적 과제

 

2026년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정책 충돌과 질서의 불확실성이다. 미국의 산업·통상 정책은 동맹국에도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중국은 시장 접근과 기술협력을 연계하는 전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 또한 자원과 시장을 지렛대로 조건부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경제의 핵심 정책 목표는 단순한 성장률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급망, 통상, 외교, 안보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전략 역량이 요구된다. 이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경제협력을 관리된 형태로 지속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선진국 파트너십과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병행함으로써 전략적 선택 공간을 확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2026년은 고성장의 해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를 축적할 수 있는 해가 될 수는 있다. 세계경제와 안보 질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2026년에는 그 윤곽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지금은 성장의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 본 글은 15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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