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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직업 특성상 다른 국가와 양자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에 자주 참석한다. 얼마 전 참석한 한 영미권 국가와의 포럼에서 외국 참가자들이 모두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를 사로잡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11년 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20억뷰를 찍고 그 뒤로 봉준호 감독,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작가 한강 그리고 케데헌이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 계보를 잇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환호하는 것을 보며 한국의 문화적 힘에 대해 한없는 긍지와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이런 소프트파워에 걸맞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엄청난 창의력과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는 문화예술인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소프트파워에 어울리는 사회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외적으로 비치는 우리의 소프트파워에 한참 못 미치는 부끄러운 한국 사회의 모습에는 산업재해, 특히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도 포함된다. 2024년 국내 산재 사망자 수는 2098명으로 노동자 1만명당 1명에 근접한다. 외국인 노동자 사망은 2022년 85명, 2024년 상반기에만 47명 등 최근 10여년간 꾸준히 연 100명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고용에서 외국인 비율은 5% 정도인 반면 2024년 산재 사망에서 외국인 비율은 11.8%다. 2021년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전체 산재 사망 평균의 7배에 달하기도 했다.
아직 기억이 생생한 2024년 아리셀 참사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작년 8월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미얀마 노동자가 감전으로 사망했다. 작년 7월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던 건강한 20대 베트남인이 폭염에 사망했다. 폭서기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단축근무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예외였다. 비인간적으로 열악한 숙소에서 지내다 한겨울 추위에 사망한 외국인 농촌 노동자의 사례도 여럿이다. 얼마 전에는 지게차에 외국인 노동자를 매달아 국민적 공분을 산 일도 있다.
과거 많은 한국 사람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갔다. 이들이 이룬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바탕이 되었다. 지금 동남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고 있다. 이들이 죽지 않고 안전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룰 수 있어야 한국의 소프트파워도 온전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 "죽지 않는 사회, 일터가 행복한 사회, 안전한 사회 꼭 만들어야" 한다며 모든 산재 사망사고를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주 노동자, 외국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 인권 침해"도 언급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이주 노동자, 외국인에게까지 정책적 관심이 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거창한 대외정책 못지않게 한국에 온 외국인의 안전과 생명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인의 산재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도 돌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꼭 정책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본 글은 1월 6일자 파이낸셜뉴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수석연구위원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2012년까지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다. 현재 한국동남아학회 부회장, 해양경찰청의 자문위원이고,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최근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적 공간의 등장(2015), 북한과 동남아시아(2017),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에서 성공하려면(2018),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의 역할(2018),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공통분모와 신남방정책(2019),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2019), 피벗: 미국 아시아전략의 미래 (2020, 역서),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2020), “Southeast Asian Perspectives of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 SWOT Analysi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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