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물

기고

검색창 닫기 버튼

[국민일보] 2025년을 보내며

작성자
김흥종
조회
59
작성일
25-12-26 09:17
  • 프린트 아이콘
  • 페이지 링크 복사 아이콘
  • 즐겨찾기 추가 아이콘
  • 페이스북 아이콘
  • 엑스 아이콘

2025년의 마지막 며칠을 남겨놓고 지난 1년을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어느 해라고 딱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년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이번 2025년은 정말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경제 분야만 국한해 본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국내외 악재를 온몸으로 맞으며 악전고투 끝에 그래도 잘 버텨낸 한 해라고 해야겠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12월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정국을 수습하는 데 국력을 소진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2%를 기록하는 등 주요 국제 기구가 지난해 가을 2% 내외로 전망했던 2025년 한국 경제 전망은 비상계엄 후 반토막이 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 결정 과정에서 지연되면서 4월 초 경기는 바닥을 찍었다. 탄핵 이후 정국이 조금씩 풀리고 마침내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서서히 개선됐다. 한때 0.8%까지 낮아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제 1%까지 올라갔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가장 중요한 대외 경제 이슈는 단연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의 공세적 관세 정책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통상 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무기로 사용했다. 지난 4 2일 소위 해방의 날에 발표된 10%에서 50%에 이르는 높은 수준의 미국의 대세계 상호관세율과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오르내리는 품목별 관세율은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흑자 규모와 정치적 친소관계에 따라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식은 자유무역 질서의 종언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보호주의가 아니라 미국 시장 접근 자체를 ‘입장료’로 정의한 신고립주의적 전환이었다.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공공재 제공자가 아니라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질서를 재편하는 행위자가 됐다. 자유무역과 규칙 기반 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20세기의 기본 문법이 끝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워싱턴DC로 달려가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 협의를 하는 와중에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통상 협의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칼을 뽑아 희토류와 대두 등 핵심 공급망 분야에서 미국에 일격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간에 합의된 통상 휴전은 안정의 신호라기보다 장기 경쟁을 관리하기 위한 전술적 조정에 가깝다. 적어도 미국이 향후 몇 년 동안은 중국을 심각하게 타격할 수 없다는 약점을 노출하며 양국은 불안한 공존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전쟁을 ‘관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지정학적 레버리지의 일부가 됐다. 에너지와 곡물, 안보 불안을 지렛대로 삼아 러시아는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전쟁 장기화는 러시아를 힘들게 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에도 상시적 위험 프리미엄을 얹는 요인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본질적으로 유럽의 전쟁이다. 그래서 유럽의 2025년은 냉혹한 자기 확인의 시간이었다. 성장 둔화, 산업 경쟁력 약화, 정치적 분열은 유럽이 더 이상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님을 보여줬다. 전략적 자율성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 국방비 증액, 우크라이나 전비 조달, 첨단산업에서의 부진 만회, 경제 성장 지속, 탈탄소 정책 추진 및 이민·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산적한 숙제만을 잔뜩 안고 있는 형국이다.

 

이 모든 변화의 밑바탕에는 20세기 규칙 기반 질서의 소진이 있다. 상호의존은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며, 오히려 압박의 수단이 됐다. 세계는 미·중·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편한 공존 속에서 다극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선택의 폭은 좁아졌고, 전략적 판단의 비용은 커졌다. 경제 체질과 외교 지평을 함께 넓히는 장기 전략 없이는 생존도, 번영도 어렵게 됐다.

 

2025년은 끝나지만 세계 경제의 새로운 굴곡은 이제 시작이다. 세계 경제가 더 이상 ‘회복’이나 ‘안정’이라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균열, 굴곡, 그리고 방향 상실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어울린다. 연말에 서서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세계 경제의 불안은 단기 충격이 아니라 질서 전환의 일부임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 질서와 동북아 질서를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매우 전략적으로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 본 글은 1225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view more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