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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美 먼로주의 회귀와 한미동맹 재설계

작성자
양욱
조회
108
작성일
25-12-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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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는 세계가 시작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국가안보전략서(NSS)를 통해 미국의 전략 전환을 공식화했다. 글로벌 역할 축소와 동맹에 대한 부담 이전이 새로운 NSS의 핵심이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 온 우리에게 NSS는 거대한 구조적 도전이다.

 

이번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때부터 예견된 흐름이었다. 미국은 산업 경쟁력을 잃고 국가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동맹을 위해 희생할 여력이 없으므로 한국과 일본 같은 부유한 동맹이 더 큰 몫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제 미국은 더는 아틀라스처럼 세계를 떠받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전략의 기저에는 ‘현대판 먼로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1823년 당시의 먼로주의는 결코 고립주의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구세계로부터 신대륙을 지키려는 결단이었다. 트럼프의 시각에서 유럽은 다문화·다자주의에 매몰돼 경제·사회적 활력을 잃고, 저출산과 이민 문제로 흔들리는 ‘문명적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조차 유럽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 왔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의 유럽 디커플링은 가치와 명분만 말하면서 책임은 회피하는 유럽의 위선에 대한 냉소다.

 

중동과 아프리카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에너지 독립과 공급망 재편으로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진정한 관심은 서반구 전체를 장악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외부 세력으로부터 차단하는 데 있다. 미국은 서반구 밖에서는 비용 대비 이익이 확실할 때만 개입할 것임을 NSS는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 억제가 유일한 관심사다. 중국을 군사적 위협 중심으로 바라보고 대만 유사시 즉각 개입하겠다던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트럼프는 중국의 군사 위협보다는 경제적 위협에만 집중한다. 중국의 군사 위협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제1도련선에서 막도록 하는 것이 인·태 전략의 핵심이다. NSS에는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한·일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해야 함도 명시했는데, 한국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 건조를 허용한 것도 결국 중국 억제의 맥락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태 지역에서도 관심은 오직 중국 억제이기에 미국은 NSS에서 북핵 억제나 북한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한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다. 미국은 동맹 안보는 동맹이 스스로 책임지라고 한다. 핵 억제력이 없는 한국은 미국 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자동적이지 않다. 북·중·러 전략 연대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북핵 억제는 중국 견제의 핵심임을 미국에 인식시키고, 향후 발표될 미 국방전략과 합참 군사전략에 북핵 억제를 명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가 그랬듯이 이제 우리도 동맹을, 기대는 울타리가 아니라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질적 수단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미국을 부르는 수동적 안보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동맹을 재설계하지 못한다면, 무질서 속에서 국가안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동맹 외교가 필요한 때다. 이것이 ‘미국 없는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본 글은 129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양욱

연구위원, 실장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뉴스매체를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실,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북한의 군사동향과 현대전쟁에 관한 연구를 계속 중으로,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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