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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우크라이나, 대만, 그리고 한국

작성자
윤영관
조회
48
작성일
25-12-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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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주 동안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보면 지금 국제정치가 어떻게 꼬여가고 있는지 보인다. 한 마디로 미국은 자유세계를 이끄는 리더십의 포기를 넘어서서 러시아와 중국의 수에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주 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28개 조 협상안을 우크라이나가 받으라고 압박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점령지뿐 아니라 아직 러시아가 점령하지도 못한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까지 러시아에 넘기고, 나토 가입은 불가하며, 군병력을 감축하라는 요구였다. 이 협상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는 고위급 러시아 관료에게 푸틴이 트럼프와 통화할 때 이스라엘·가자협상 타결한 것을 칭찬할 것, 그리고 푸틴이 젤렌스키·트럼프 회동 전에 트럼프와 통화하는 것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제공하는 것을 막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등의 친절한 지침까지 제공해 주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결국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지난주 제네바에서 유럽·우크라이나·미국 측 대표들이 만나 19조 수정안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해서든 종결시키고 러시아에 매장된 희토류 개발 등 러시아와의 거대한 비즈니스 딜의 성사를 원한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그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활용해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을 갈라치기하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유럽인들은 매우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나토의 전 정책기획관 파브리스 포티어는 “미국의 지상군은 아직 안 떠났을지라도, 마음과 생각이 이미 유럽을 떠났다”고 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눈앞의 경제 이익에 집중하는 단기적 시각에서 협상을 타결하고 발표하는 것을 원한다. 동맹과의 관계는 2, 3차적인 것이다. 이는 미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을 스스로 포기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점을 러시아와 중국이 전략적으로 파고들어 미국과 동맹국들을 갈라치기 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문제가 되었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의회 답변에서 대만에서의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그것은 일본에의 긴급사태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아마도 단순한 말실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발끈해 중국인의 일본 방문 자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이 일본처럼 대만 문제를 자국의 안보 문제로 연결시키면서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더 나아가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동안 통화했다. 그리고 그중 30분 동안 대만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고 한다. 대만의 중국으로의 통합은 2차 대전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부분이고 미국과 중국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해서 함께 싸운 전우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미국이 일본의 행동을 제어해달라는 부탁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미국과 일본을 갈라치기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와 지난 화요일 통화를 했고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부산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후 모처럼 찾아온 협상 분위기를 깨지 않고 중국과의 통상협상을 타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산 대두를 중국이 약속한 대로 빨리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서다.

 

중국은 그러한 트럼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다. 트럼프의 최고 관심사인 단기적 통상문제에 협조해 주는 대신 미국의 대만 지지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과 달리 대만 문제에 대해 함구해 왔다. 최근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도 늦어지고 있고, 라이칭더 총통의 미국 경유 여행도 거부했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역력하다.

 

그러한 시점에서 미국은 일본이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제 대만도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대만, 그다음은 어떤 나라가 버림받을까?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자제하라는 요청을 들었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과연 한국은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서는 러시아와의 딜을 위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소외시켰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의 딜을 성사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을 소외시키려 하고 있다. 권위주의 지도자 푸틴, 시진핑과의 딜을 위해 기존의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무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여러 번 호감을 드러냈고 만나자고 해왔다. 김정은은 미국이 비핵화만 거론 안 하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고, 트럼프는 북한은 핵을 가진 국가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아마도 내년에는 북·미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과연 미국은 가장 중요한 핵심 당사국인 동맹국 한국을 어떻게 대할까? 우크라이나, 대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정말로 예사롭지 않다.

 

 

* 본 글은 1129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윤영관

이사장

윤영관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입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한국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연구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 II 공동의장(2011-2012)과 국회의회 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2019-2020)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국제정치경제, 한국 외교정책, 남북관계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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