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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현지시각)부터 이틀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G20 정상회의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회의가 다가올수록 G20 정상회의의 의제보다는 미국과 남아공 간 외교적 긴장, 이것이 가져오는 파장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아공 백인 농부 학살설을 이유로 미국 정부는 이번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에 어떤 인사도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6년 미국이 주최하는 G20 정상회의에 남아공을 초대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편 미국은 최근 남아공에 대해 3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국가에 대해 차별적인 상호 관세율을 적용한 바 있다. 이래저래 양국은 불편한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불참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체포의 위험으로 참석할 수 없으니, 이번 G20 정상회의는 처음으로 미·중·러 정상 모두가 불참하는 회의가 돼버렸다. 이번 정상회의는 아프리카와 세계 경제문제를 논의하는 경제 포럼의 장이지만, 미국이 주장하는 다자회의 무용론과 중국·러시아 정상의 외면으로 시험대에 올라있다.
남아공 G20의 핵심 주제는 아프리카 중심의 글로벌 전환
남아공이 올해 G20 의장국으로서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연대(solidarity), 평등(equali-ty) 그리고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선호하지 않는 개념이다. 하지만 남아공은 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의제를 종합해 △부채 지속성(debt sustainability) △기후 금융(climate finance) 및 정의로운 에너지전환(just energy transition) △주요 광물(critical minerals)과 산업 및 무역의 재편 △재난과 복원력(resilience)의 의제를 제안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가 오랫동안 제기해 온 개발 격차와 글로벌 금융 비용의 부담이 이번 정상회의 의제 전면에 등장했다.
가령 올해 G20 재무·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발표된 ‘2025~2030 G20 아프리카 참여 프레임워크(Africa Engagement Frame-work)’는 인프라, 금융, 거버넌스 차원에서 아프리카를 단순한 개발원조 수혜지가 아닌 공급망과 산업의 허브, 글로벌 거버넌스 변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는 공급망과 자원 및 제조의 새로운 축이 형성되고 있다는 신호에 유의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광물 분야에서 전략적 진출이 더욱 필요한 때다.
예상되는 주요 쟁점과 현실적 제약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주목되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불평등과 부(富)의 집중 문제다. G20 산하의 별도 태스크포스(TF)는 상위 1%가 전 세계 신규 부의 41%를 점유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격차는 단지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리스크로 인식된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중심 의제는 글로벌 불평등 완화와 시장 접근 확대, 금융 비용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아프리카 중심의 무역과 공급망 재편 문제다. 아프리카는 이제 단순 원자재 수출국에서 제조·가공·서비스 허브로 변신하고자 한다. G20의 무역·디지털·산업 논의는 이에 맞춰 가치 사슬 내 지역 가공 강화와 무역 장벽 해소에 초점을 둘 것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에 원료로 사용되는 핵심 광물에 대한 아프리카의 통제를 강화하고 아프리카를 위한 전략적, 지경학적 고려를 강조할 것이다.
셋째, 기후·에너지 전환에 관한 아프리카의 강력한 요구에 주목해야 한다. 남아공은 회의 참가국에 기후 적응(adaptation) 및 손실·피해(loss·damage) 기금의 본격 운용을 요구할 것이다. 손실·피해 기금은 2022년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합의된 사안이다. 기후 피해 개도국에 대한 보상 기금 설치가 핵심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입은 국가가 수년간 요구해온 사안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오랜 갈등 끝에 극적으로 도출된 결과였다.
2023년 두바이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세계은행이 기금을 운용하기로 하고, 기금 분담 방식과 수혜국 선정 기준 등에 대한 초안을 마련했으며, 선진국 일부가 초기 자금 출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금 규모, 선진국의 실질적 분담 의지, 수혜국 선정 기준에서 이견이 있다. 물론 이번 정상회의에는 모든 기대를 충족할 수 없는 도전 과제와 현실적 제약이 있다. 세계경제는 2025년 기준 약 3.2% 수준의 저성장 국면이며 무역 증가율도 2%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지정학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정, 미국의 공세적 관세정책 등이 겹치면서 G20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참석하지는 않지만 서방 G7(주요7개국)과 브릭스 주요국 간 국제 질서, 개발원조, 민주주의 등 기본 가치 등에서 이견은 여전하다.
APEC에서 G20으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한국은 세계 제조업과 무역에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해 왔고 반도체, 배터리, 차세대 선박 등 첨단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경제, 공급망 회복력 등의 의제를 주도해 왔다.
다가오는 G20 정상회의는 한국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첫째, 기후 금융과 녹색 전환 분야 협업 확대다. 남아공이 강조하는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 금융 확대는 한국 기업의 친환경 인프라, 배터리, 수소 사업 등이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진입로가 된다. 둘째, 광물 공급망 분야다. 아프리카가 보유한 핵심 광물은 한국이 확보해야 할 전략 자산이며 이번 정상회의 의제에서 핵심으로 다뤄진다. 셋째,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다. 가령 남아공이 제안한 불법 금융 유출 문제는 국제 조세, 금융 투자, 기업책임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도 이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한국은 공급망 복원력 강화, 중심 공급망 허브 참여 및 친환경·디지털 협력이라는 삼각 축 전략으로 외교·통상 지형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협력과 규범 설계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전환의 문턱에서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번 G20 정상회의는 미국의 보이콧과 중국·러시아 정상의 외면으로 빛이 바랬지만, 아프리카가 제기한 개발과 공급망 전환, 및 기후 금융 의제를 기반으로 한국의 전략적 참여가 요구된다. 요하네스버그는 한국이 질적 성장을 이룰 전략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를 얼마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 아프리카 허브화, 디지털·친환경 산업 전환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G20이라는 틀은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기회이자, 시험대로 활용될 수 있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612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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