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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돈 먹는 하마'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가 국익이 되려면

작성자
양욱
조회
52
작성일
25-11-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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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을 보유한다.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맞춰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재명 대통령은 원잠 연료 제공을 요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이를 승인했다. 단 한화가 인수한 필리조선소에서 한국의 원잠을 짓는 것이 조건이다.


이런 보도 이후 국내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언론은 한국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이집트에 이어 세계 7번째 또는 8번째 ‘핵 잠수함’을 보유하게 됐다고 흥분했다. 국민은 드디어 한국이 20여 년의 숙원을 풀고 핵 잠수함을 보유하게 됐다고 자부하게 됐다. 또한 조선업이나 방산과 관련한 새로운 사업 등장에 주식시장도 기대를 보였다.


‘원잠의 저주’를 주의하라


그런데 원잠은 싸지 않다. 획득뿐만 아니라 유지를 위해 국가가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해군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해군력을 원잠 전력 유지에 쏟아부어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해군이다. 영국 해군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무력을 제공했었다. 그런 전통을 바탕으로 영국 해군은 여전히 항공모함 2, 원잠 10척 등 총 75척의 함정과 225개의 핵무기 그리고 350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원잠을 보유하기 위해 영국이 들여야 하는 엄청난 노력이다. 우선 영국 해군은 통상 약 600억파운드( 1148340억원), 국방비 18% 정도 예산을 사용한다.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각종 수상함을 만드는 등 엄청난 예산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충분한가 싶을 정도의 금액이다. 그런데 원잠의 운용 비용은 해군 예산이지만, 건조 비용은 해군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원잠 건조에는 국방 핵 분야(DNE· Defence Nuclear Enterprise) 예산이 투입된다. 영국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핵무기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별도 예산으로 국방 예산에서 할당하고 있다. 영국은 핵 3축 전력(전략폭격기·ICBM·SLBM) 가운데 오직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만을 운용하므로 원잠과 핵탄두, 원자로, 인프라 등의 비용을 DNE로 감당한다. 그런데 이 DNE 예산이 영국 국방 예산의 20% 이상이다. 즉 항모 2척을 운용하는 해군 전체 예산이 원잠 10척 확보 예산보다 적다는 말이다. 그만큼 원잠은 돈 먹는 하마다.


감당 못 하는 원잠 운용


문제는 실제 무려 40%의 국방 예산을 끌어다 쓰면서도 영국 해군은 돈이 부족해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억지로 원잠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주력 공격 원잠(SSN) 6척과 뱅가드급 전략 원잠(SSBN) 4척을 운용하는데, 뱅가드급은 초도함 함령이 33년에 이르러 차세대 드레드노트급을 건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유지·운용을 위한 정비가 엉망이란 점이다. 장기간 정비 대기에 독(dock)까지 부족해 어떨 때는 가용한 공격 원잠이 0척인 경우도 있다. 너무도 한심한 상황에 2025 10월 영국 해참 총장은 100일 정비 회복 계획을 준비하라고 서둘러 지시했다. 잠수함 승조원과 정비 인원 만성적인 부족도 원잠 운용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영국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간 동맹) 잠수함 계획에 참가하고 있어 대서양과 태평양에 원잠을 모두 보내야 하니, 인력 부족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원자로는 롤스로이스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가진 것을 유지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버리는 것도 문제다. 핵심 부품·기술의 국내 공급망을 갖추는 것은 좋지만, 수요가 한정된 시장의 단일 공급망이다 보니 모든 게 비용이자 리스크이다

게다가 원잠은 원자로의 방사능으로 인해 일정 기간 반감기가 지나야 해체가 가능하다. 영국 해군은 퇴역한 원잠 20여 척을 해체 및 처분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환경과 재정에서 엄청난 정부 부채가 매년 누적되고 있다


‘전략무기 보유에 예산을 아끼지 말자’


이렇게 영국 해군 사례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전략무기 보유 예산을 아껴서는 안 된다. 북핵 억제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원잠이 핵심적인 전략무기가 될 것인데, 예산을 아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 안보를 위해 당면한 최대 위협을 막는 데 예산을 아껴서는 안 된다. 다만 원잠이 ‘북핵을 막는 전략무기’인가.


우선 잠수함의 전략적인 가치는 아군 세력을 보호하고 적의 수상함 전력을 견제하며 적의 해양 활용을 거부하는 데 있다. 잠수함은 특히 원해에서 항모 전단 및 상륙 기동 전단을 보호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침공하는 해군 기동함대의 선봉에 서서 함대 전방 100해리 이상의 축선에 등장할 위협을 막는 게 가장 큰 가치다. 먼 항속거리로 원양을 달려 나가 작전하려면, 원잠이 유일한 선택이다. 전시 해상 운송로 보호와 대형 선단 호송에서도 원잠은 일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원잠이 있으면 초크 포인트, 즉 병목 지대를 장악하고 적 함대 이동을 막아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루손 말라카 지역이나, 쓰시마 일대에 원잠이 상시 배치돼 아예 배리어를 만들면 적 함대는 행동 자체가 봉쇄된다. 혹은 유사한 형식으로 연안 근해의 적 재래식 잠수함(SSK)을 탐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굳이 원잠이 아니라 무인 잠수정만으로도 센서 역할을 할 수 있고, 대잠 초계기나 수상함의 광역 탐지가 더욱 의미가 있다


그리고 SLBM을 장착한 적의 SSBN을 견제하는 임무에 원잠을 투입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잠수함 2척이 팀을 이뤄 표적 추적 및 보조 그리고 차단 임무를 나눠야 하며, 매우 장기간 적을 ‘스토킹’해야 한다. 은밀한 추적이 중요하므로 대잠 초계기나 대잠 수상함 등 기타 세력은 노출을 최소화하며 원거리 감시 역할에만 제한된다.


앞의 임무 유형 가운데 북핵 억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적 원잠 스토킹 임무다. 그런데 북한은 올해 원잠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선언했고 관련 기술 미비로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다. 게다가 현재 북한의 핵 능력 핵심은 다양한 지상 기반의 전술핵무기다. 원잠 확보가 북핵 억제에 필요한 일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이 우선순위인지는 의문이다.


원잠의 전략적 가치


한국이 원잠을 갖는 전략적 가치는 원양 작전과 해협 봉쇄가 더욱 크다. 이 말은 한국이 한반도에서 벗어나 동북아 국제 안보와미·중 전략 경쟁의 장인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다. 즉 북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 견제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일정한 가치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와 전략을 갖춰야 의미 있다는 말이다.


애초에 이재명 대통령은 원잠이 필요한 이유로 북한과 중국 잠수함 견제를 들었다. 물론 이후에 중국 쪽 방향의 잠수함을 견제하는 뜻이라고 정정했지만, 미국은 원잠 건조 승인 요청을 중국 견제 의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트럼프는 원잠 건조를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걸어서 미국의 경제적 실리까지 챙겼다


이 대통령이 언급했듯 원잠은 핵무기가 아니다. 영국처럼 핵전력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이 원잠을 위해 별도 예산 항목을 마련하기 쉽지 않고, 마련해도 액수가 제한될 수 있다. 핵무기도 아닌 원잠을 갖기 위해서 아마도 우리 해군은 항공모함은 물론 상당수 미래 함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포기가 의미 있을 만큼 우리 원잠에 전략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612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양욱

연구위원, 실장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뉴스매체를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실,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북한의 군사동향과 현대전쟁에 관한 연구를 계속 중으로,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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