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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조선 협력이 양국 경제 관계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스가’(MASGA)로 불리는 한국의 대미 조선 협력 구상은 지난 수십 년간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 조선업을 한국 조선사의 기술과 자본으로 되살리려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규모만 1500억달러(약 217조원)에 이른다.
이 구상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처진 미국 조선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다. 조선 경쟁력의 약화는 미 해군 전력 증강에도 직접적 제약을 주고 있다. 첨단무기를 아무리 많이 확보해도, 그것을 운용할 함정과 잠수함을 제대로 건조하지 못한다면 해군력은 근본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조선업 ‘낮은 생선성, 높은 수익률’ 왜?
현재 어떤 상황인가. 2023년 중국이 1749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단지 5척을 완성했다. 전체 상선 규모에서도 미국은 178척에 불과해, 7천 척 이상을 보유한 중국과는 비교조차 어렵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품의 대부분은 외국, 특히 중국 선박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 미 해군조차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오랜 기간 쇠퇴해온 만큼 조선 산업의 부진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조선 산업은 낮은 생산성에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기묘한 특징이 있다. 선박 한 척을 건조하는 데 과도한 기간이 걸리고, 납품 지연이 상시화됐으며, 건조 비용은 한국의 두세 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조선사들은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는 미국 조선사가 안정적 수익을 내는 이 역설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배경에는 이른바 ‘존스법’(Jones Act)으로 알려진 ‘1920년 상선법’(Merchant Marine Act of 1920)을 비롯해, 선박 건조 및 운항과 관련된 11개 법령이 있다. 이 보호 규정에는 500t 이상의 선박을 미국 영토 밖에서 재건조하거나 수리할 경우 미 재무성에 보고해야 할 의무, 미국 내에서 선박을 건조해야 할 의무, 미국 국적 선박을 통한 국내 항로 운송 의무, 그리고 미국인 선원 고용 의무 등 내국 산업을 보호하는 강력한 조치가 담겨 있다. 이러한 극단적 보호 조치가 미국 조선업의 ‘실질적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존스법이 미국 조선 산업을 지탱하는 보호막이자 족쇄가 된 현실은 17세기 영국의 항해법을 연상시킨다. 영국은 그 법으로 제국을 세웠지만, 결국 그 법을 버림으로써 더 강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영국은 어떻게 해운과 조선업을 보호했고, 그 족쇄를 벗어던지며 번영을 구가했는가.
보호에서 자유로, 영국 항해법이 남긴 교훈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잉글랜드의 호국경이 된 올리버 크롬웰은 1651년 ‘항해법’(Navigation Act)을 제정해 영국의 조선·해운 산업에 강력한 보호 조치를 시행했다. 당시 해상왕국이던 네덜란드를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사실 항해법을 처음 제정한 것은 크롬웰이 아니었다. 1381년 처음 도입된 항해법은 애초 해운 활성화와 해상 방어 강화를 의도했지만, 당시에는 조선업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여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1651년에 이 법이 재도입되고 1673년까지 잉글랜드 의회에서 아홉 차례 개정, 강화되면서 단순하지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중상주의 시대를 잘 구현한 항해법의 기본 철학은 “영국과 영국령으로 드나드는 모든 상품은 영국 국적 선박 혹은 생산국의 선박으로만 운송한다”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법 때문에 네덜란드와 전쟁했고, 몇 번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한 잉글랜드는 항해법을 더욱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이를 근거로 식민지와의 해상거래를 독점하게 된다. 영국의 국외 식민지가 넓어짐에 따라 영국의 조선·해운 산업이 크게 확장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항해법은 해운과 군사, 조선 산업이 얽힌 국가 전략의 모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 법은 족쇄로 바뀌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의 결과 동력 혁명과 첨단 기계기술로 세계를 제패한 영국에 더 이상 해상무역에서 보호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 시기 항해법은 오히려 운반 비용 상승과 영국 상품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 법의 부작용으로 식민지 아메리카에서는 봉기가 일어났고, 이는 미합중국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유주의 부르주아 진영의 강력한 요구로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해 자유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연 대영제국은 1849년과 1854년에 걸쳐 항해법도 폐지하게 된다. 당시 휘그당의 리처드 코브던 의원은 “이제 세계는 해적의 바다가 아니다. 영국 상선은 자유무역 속에서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항해법이 왜 19세기 영국에서 폐지돼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놀랍게도 항해법 폐지 뒤 영국 조선과 해운업은 더 강해졌다. 증기선과 철제선 시대의 기술혁신이 보호의 빈자리를 메웠고 런던과 글래스고, 뉴캐슬의 조선소들은 세계 선박의 절반을 공급했다. 항해법 폐지는 영국 조선 산업의 몰락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과 성숙으로 이끌었고, 영국은 보호에서 자유로 족쇄를 던짐으로써 해상제국에서 기술강국으로 진화했다.
“존스법은 시대착오적 규제”
한 세기 뒤,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은 영국의 17세기를 답습했다. 존스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법의 주요 골자는 미국 항구 간 화물은 반드시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미국 국적 선박으로, 미국 선주와 미국인 선원이 운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7세기 항해법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이 법은 당시 산업 보호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산업 고립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존스법은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대표적 규제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사실 영국의 항해법이 17세기에 와서야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항해법의 핵심인 해운 통제가 조선업에서의 지원으로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에서 1381년 제정된 최초의 항해 조례는 당시에는 잉글랜드 소유 선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 1540년 법 제정 때 영국의 상인들은 크고 불편한 잉글랜드 배보다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네덜란드 선박을 훨씬 더 선호했기 때문에 법은 외면받았다. 크롬웰이 항해법을 제정하던 시기에 이르러서야 영국 조선업은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조선 능력이 물량으로는 세계 최대였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미국 조선업이 세계 1위였던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보호된 미국의 조선과 해운업은 빠르게 경쟁력을 잃어갔다. 2025년 6월12일, ‘미국 해상운송 자유화법’ 발의 때 인터뷰에서 마이크 리 상원의원이 “존스법은 미국 가족과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는 시대착오적 규제다.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게 하고, 미국의 에너지 자립과 안보를 위협한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이 항해법을 폐지하며 제국을 유지했듯, 미국이 존스법의 굴레를 벗지 않는 한 미국 조선 산업의 부활은 어쩌면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기술혁신 게을리할 위험 경계해야
이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세계 조선시장에서 중국에 이어 2위의 수주량을 점유한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군수지원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가 시동을 거는 이때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기회가 미국의 보호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존스법이 유지되는 한, 미국은 기술과 인력이 부족함에도 대부분의 공정에서 국내 건조를 고집할 것이다. 한국의 기술과 자본, 미국의 시장과 안보 논리가 결합된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조선업의 부활 가능성은 좀더 커지고, 한국 조선업도 안정적인 추가 수익을 얻으리라 예상된다. 보호된 시장에서 안정적 발주를 확보하고, 군수와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사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존스법이 존속되면 한국의 기술과 설비 일부가 미국 내 합작조선소 형태로 이전돼, 한편으로는 국내 산업기반이 약화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조선사들이 안정적 수요를 기반으로 기술혁신을 게을리할 위험이 있다. 바로 미국 조선산업이 걸어온 길이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보호의 파도 위에서 기술의 균형을 잡고, 이를 기반으로 경쟁의 바다로 다시 뛰어드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마스가 협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존스법이 폐지돼야 한다. 존스법은 종국에는 한국 조선사에 독이 될 것이다.
19세기 중반 대영제국이 항해법을 버리고 세계 조선과 해운의 중심으로 부상했듯, 한국도 기술과 개방을 결합한 제3의 항로를 개척해야 한다. 보호는 단기적으로 산업을 키울 수 있지만, 경쟁만이 산업을 지속시킨다. 진정한 해양강국은 장벽 뒤가 아니라 자유와 기술이 만나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 본 글은 11월 18일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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