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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특히 강남3구의 고가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정부는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는 대출한도 정책을 넘어 보유세 인상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대출규제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상당수 주택은 현금 부자나 투자 목적 보유자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택 보유와 관련한 세제, 즉 보유세에 대한 논의다.
한국의 주택 보유세는 국제 기준으로 낮은 편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친 실효세율은 주택가격 구간에 따라 0.2~0.5%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평균 약 1% 내외, 런던은 0.3~0.8%, 캐나다 토론토는 약 0.6~0.9%로 대체로 서울보다 높다. 자산가치가 유사하거나 더 낮은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서울의 세부담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강남은 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사용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중은 거래세 포함 전체 부동산세를 포함하기 때문에 실제 주택 보유 단계의 세부담 수준을 정확히 보여줄 수 없다.
그 결과 강남의 부동산시장은 더 이상 국내시장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주택 보유 건수는 2024년 기준 약 10만채로, 서울이 2만3000채가량이며 상당수가 강남권에 집중돼 있다. 강남권 외국인 보유주택 중 상당수가 실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형으로 추정된다. 낮은 보유세율은 국내외 자본이 조세 부담 없는 황금자산으로 서울 강남 주택을 선호하게 만든다. 강남 아파트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국제적 포트폴리오의 한 항목으로 편입된 셈이다.
물론 세율 인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해서 처방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보유세는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담이 높아지면 장기보유자의 매물이 늘고, 시장의 유동성이 회복된다. 무엇보다 자산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조세의 형평성과 세대 간 공정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된다.
일각에서는 보유세를 높여도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세제의 직접 효과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성이다. 세금을 통해 집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거주 자산이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명확하게 주면 시장 심리가 바뀌고 투자 흐름도 달라진다. 지금처럼 기대수익이 과도하게 형성된 시장에서는 자산이 단기투기 대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한편 종합부동산세가 문제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재산세는 지방세이고 종부세가 국세라는 점에서 정책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보유세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둘 다 조정대상에 넣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정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 파리생활을 접을 때 단칸방 스튜디오라도 있으면 나중에 가끔씩 와서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보유비용을 확인해 보고 깜짝 놀라 포기한 적이 있다. 이런 경우 과연 서울 강남의 외국인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까. 그래서 실거주 목적이 아닌 외국인 소유 주택에 대해선 추가 과세나 비거주자용 별도 세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배타적 조치가 아니라 국제적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현재의 세부담 구조로는 한국의 주택이 세계 자본시장 속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된 자산’으로 남게 된다.
주택 정책의 핵심은 시점이다. 과거 정부들은 보유세 인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권 후반으로 미뤘고, 결국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시장이 재가열됐다. 이번에 정부 초기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세율 인상 대신 대출규제에만 의존한다면 나중에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초고가 주택에 대한 균형 잡힌 과세가 시장에 의도하는 효과로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인내를 감내하는 데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주택은 단순한 재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질서와 가치, 세대 간 신뢰를 담는 그릇이다. 이제 서울, 특히 강남의 부동산은 그릇의 크기를 넘어 글로벌 자본의 무대가 됐다. 그렇다면 세제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보유세 인상 논의는 더 이상 세금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앞으로 어떤 공동체의 모델이 될 것인가를 묻는 본원적인 질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답을 준비할 때다.
* 본 글은 10월 30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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