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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다시 문을 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 명령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에 따르면
2025년 들어 9월까지 39만 명이 강제 추방됐는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과 견줘 28% 늘어난 수치다. 게다가 법원은 불심검문과 주거지 수색을 통해 불법체류자를 찾아내는 행위가 합법이라고 판단했다. 난민 수용 규모도 2020년 8만
명 수준에서 2025년 2만3천 명으로 줄었다. 기억하라.
2025년 1월20일 트럼프가 취임 뒤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가 관세 부과가 아니라 콜롬비아 불법체류자를 항공편으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이민을 위험으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
그러나 위험은 불법체류자가 아닌 합법적 이민자와 유학생, 연구자에게 오고 있다. 세계 각국의 두뇌들이 전문직비자(H-1B), 유학비자, 연구자 체류 허가로 미국의 혁신을 지탱해왔지만, 이제 그 통로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이민국(USCIS)에 따르면, 전문직비자 신규 승인 건수는 2024년 75만8천 건에서 2025년 47만 건으로 급감했다. 미국 기업들이 신규 외국인 인력 채용을 주저하거나, 복잡한 심사 절차를 피하려는 움직임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25년 9월19일 서명된 행정명령은 신규 전문직비자 신청 수수료를 1천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약 1억4천만원)로 대폭 올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부담을 크게 늘렸다. 선정 방식도 기존 ‘무작위’에서 ‘고임금·고숙련 우선’으로 바뀌었다. 표면적으로는 효율성과 공정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특정 산업과 국적에 편향된다. 특히 신흥국 출신 엔지니어, 연구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국외 유학생도 뚜렷한 감소세다. 미 국제교육연구소(IIE)가 발표한 2024~2025학년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약 81만 명으로 2018년에 견줘 20% 이상 줄었다. 특히 스템(STEM), 즉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대학원생 중 외국인 비율은 2022년 55%에서 2025년 48%로 하락했다. 비자 발급과 갱신 절차가 길어지고, 졸업 뒤 취업·체류 절차에 불확실성이 생겼다. 일부 국적자는 추가 서류나 소셜미디어 계정 제출을 요구받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을 통제해야 할 위험으로 간주한다. 단속은 강화되고, 추방 명령은 늘었으며, 국경 장벽은 상징적이다. 순혈주의를 강화하면서 국민의 불안을 자양분으로 삼는 포퓰리즘 정치가 횡행한다. 이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위그노 추방과 20세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 지식인과 인재를 내쫓은 나라의 끝은 바로 쇠퇴였다. 미국에서 지금 사라지는 것은 미래 그 자체다.
스스로 산업의 심장을 도려낸 ‘태양왕’
17세기 절대왕정의 시대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었다. 극심한 종교 대립으로 유럽을 황폐화한 30년전쟁(1618~1648년)에서도 가톨릭 국가 프랑스는 개신교 편으로 뒤늦게 참전하는 탁월한 정치적 선택을 함으로써 전쟁 피해는 제한적인 반면, 오히려 전후 영토를 넓히고 유럽 패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1643년부터 1715년까지 무려 72년간 프랑스를 통치한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 찬란한 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1685년 칼뱅파 개신교도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는 퐁텐블로 칙령을 발표한다. 그의 할아버지 앙리 4세가 36년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프랑스 종교전쟁(1562~1598년)’으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경험한 끝에 선포한 관용의 정신을 담은 낭트 칙령을 87년 만에 폐지한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100여 년 동안 계속됐던 신·구교 간 살육전이 30년 종교전쟁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시점에서 루이 14세가 꺼내든 퐁텐블로 칙령은 시대착오적 조치였다.
이 칙령으로 말미암아 위그노 수십만 명이 개종을 강요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됐다. 역사학자들은 20만~25만 명의 위그노가 프랑스를 떠났다고 추산한다. 당시 위그노는 프랑스 인구의 2% 남짓에 불과했지만 상공업과 금융, 출판, 직물, 금속과 유리 가공 분야에서 프랑스 경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강제 추방의 결과, 프랑스의 방직 기술과 금융 노하우는 영국으로 옮겨가 런던은 방직 및 유럽 금융과 자본의 중심지가 되었고,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을 통해 국제무역을 지배했다. 스위스는 지금까지도 명성을 유지하는 시계 산업을 꽃피우게 되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의 대표 격인 장자크 루소는 시계공이자 위그노의 후손인 아버지 이자크 루소의 아들로 1712년 개신교 도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반면 프랑스는 기술력, 자본, 기업가정신을 한꺼번에 잃었다. 프랑스의 견직물 수출은 1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상공업이 전반적으로 쇠퇴했다. 프랑스는 정치적 순혈주의로 신앙의 통일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산업의 다양성을 잃었다. 그 찬란한 시대에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스스로 산업의 심장을 도려냈다.
독일은 어떻게 과학 주도권을 잃었나
20세기 초 독일은 세계 과학의 중심이었다. 1900년부터 1930년까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30%가 독일인이었다. 독일의 괴팅겐, 베를린, 하이델베르크는 현대 물리학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유대인 학자와 지식인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1933년부터 1939년 사이에 2천여 명의 과학자와 지식인이 독일을 떠났다. 독일을 떠난 학자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요한 루트비히 폰 노이만, 막스 보른, 쿠르트 괴델, 에르빈 슈뢰딩거, 오토 로베르트 프리슈 등 과학자뿐만 아니라, 카를 포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허버트 마르쿠제,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한나 아렌트 등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르놀트 쇤베르크, 발터 베냐민 같은 예술가와 문인, 그리고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 등 정신분석학자도 있다. 이들은 주로 미국으로 향했다.
인재 유출은 놀라울 정도로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1930년대 독일 대학의 물리학 논문 수는 10년 새 절반으로 줄었고, 1950년대 들어서는 미국이 독일보다 세 배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엔리코 페르미,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는 미국 핵물리학과 전자공학, 컴퓨터과학의 기초를 세웠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과학자 6명 중 4명도 유럽 출신 망명자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핵무기 개발에서도 이후 전자공학과 컴퓨터 과학에서도 그렇게 빨리 세계를 선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과학 패권을 얻었고, 독일은 주도권을 잃었다. ‘순혈’을 고집해 인재를 내쫓은 독일은 다시 예전 지위로 돌아가지 못했다.
미국의 과학기술 패권은 개방성에서 나왔다. 미국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나라다. 미국이 인구고령화 문제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이유도 젊은 인구가 끊임없이 유입되는 미국적 예외주의 때문이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 출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는 헝가리 난민이었다. 구글 등 주요 테크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전문직비자로 입국한 인도인이다. 그들이 만든 기업의 시가총액은 2025년 기준 약 3조6천억달러,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이른다. 미국 내 스타트업 창업자의 45%는 이민자 출신이며, 미 경제지 포천이 발표한 500대 기업 중 43%가 이민자 혹은 그 2세가 창립했다. 현재 미국 내 노벨상 수상자의 약 38%는 외국 출생자이며, STEM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의 45%가 외국인이다. 미국 명문대 이공계 대학원생 절반 이상이 외국 여권을 가졌다. 전미과학재단(NSF)에 따르면, 이들이 연구실과 스타트업을 통해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는 연간 1조달러를 웃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도, 미국의 과학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국민 일자리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국가 경쟁력의 토대를 흔든다. 지식과 기술은 국적보다 자유를 먹고 자란다. 트럼프 정부의 조치는 미국의 개방성을 약화하고, 젊은 세대의 창의력을 억누른다. 인재를 배척하는 정책은 정치적으로는 통쾌해 보일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자해 행위다. 위그노를 쫓아낸 프랑스가 그랬고, 유대인을 박해한 독일이 그랬다. 이제 미국이 그 길을 닮아가고 있다.
인재를 배척하는 정책의 결과는
지금의 정책 기조가 이어진다면 미국의 미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선 대학과 연구기관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둘째, 기술기업의 성장이 둔화된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중 38%가 외국 출신이며, 스타트업 창업자의 절반이 비이민 비자를 사용한다. 비자 제한은 곧 혁신 속도의 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불확실한 행정, 추방 위협, 높은 장벽은 기회의 땅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무너뜨릴 것이다. 최근 미국 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STEM 유학생의 42%가 “졸업 후 미국 대신 캐나다나 영국에서 일하겠다”고 응답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캐나다는 인공지능(AI) 연구자 신규 이민자의 37%를 미국에서 유치했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도 이민 완화 정책을 발표하며 미국 인재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위그노를 내쫓은 프랑스는 기술과 산업을 잃었다. 유대인을 박해한 독일은 과학을 잃었다. 이제 미국이 그 길을 가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둔하고 놀라울 정도로 폭력적인 선택이다.
* 본 글은 10월 16일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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