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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일협력의 길과 피해자 존엄 회복

작성자
최은미
조회
63
작성일
25-09-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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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둔 이시바 일본 총리가 이달 말 한국을 방문해 지방소멸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국이 오랜 갈등을 넘어 공동 과제를 협력으로 풀려는 모습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씁쓸함도 남는다. 지금의 한일 관계 대전환을 이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가 어느 순간부터 양국 정부의 대화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한일 관계는 안보·경제·문화 전반에서 긴밀히 얽혀 있지만, 과거사 문제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이다. 그중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사안이다. 한쪽에서는 ‘이미 끝난 문제’라는 피로감이, 다른 쪽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분노가 맞부딪친다. 그러나 생존 피해자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존엄 회복과 책임 분담을 위한 현실적 해법이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일본의 10억 엔 출연으로 한국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피해자 다수가 지원을 받았지만, 피해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본은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인정했다. 결국 재단은 해산됐고, 59억 원의 기금은 방치됐다. 생존자 대부분이 90세 전후에 이른 상황에서 지원이 지체될수록 권리 회복의 의미는 퇴색한다. 따라서 잔여 기금을 독립 신탁계정으로 관리하고, 의료·돌봄 지원, 구술사 채록과 역사 기록의 디지털화, 기념관 설립 등을 병행해야 한다. 일본 역시 법적 입장과 별개로, 사죄 재확인, 역사 교육 반영, 재발 방지 프로그램 지원 등 국제적 책무를 져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도 교착 상태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으나 일본은 1965년 협정을 근거로 반발했다. 한국 정부가 2023년 ‘제3자 변제 방식’을 도입했지만 민간 기여에만 의존해 보상이 불완전하다. 한국은 청구권 자금을 받은 기업의 정례 출연, 사회연대펀드 조성, 세제 인센티브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일본 역시 상징적 기부, 장학금, 사회 공헌과 추모 참여로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이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통해 나치 강제노동 피해를 해결한 경험은 일본에 중요한 선례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단순한 금전 보상을 넘어 피해자 존엄, 국가 간 신뢰, 미래 세대의 역사 교육에 직결된 과제다. “누가 옳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며 한국과 일본이 각자 책무를 다하고,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둔 해법을 함께 추진할 때 양국은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과거를 대하는 진정성이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다.

 

 

* 본 글은 925일자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최은미

연구위원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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