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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블라디미르 푸틴, 김정은. 국제사회에서 미움받고 배척되는 3인의 독재자가 중국의 톈안먼 광장에 모였다. 36년 전 민주화를 외치던 중국 시민이 공산당의 군대에 잔인하게 짓밟혔던 그 장소다. 9월 3일 중국은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로 톈안먼 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했다. 톈안먼 광장의 열병식 단상에서 북·중·러 세 정상은 혐오스러운 브로맨스(bromance·남자 간 우정)를 연출하면서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국은 전승을 기념할 자격이 있나
중국, 정확히 얘기하면 공산당의 중국은 중일전쟁의 ‘승리’를 8월 15일로 기념해 왔다. 애초에 현재 중국은 전승의 주체가 아니다. 국민당 정부의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이 일본의 지나파견군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은 날이 9월 3일이기에 국경일로 정해졌었다. 그러나 중국을 차지한 공산당은 전승절이 중화민국의 기념일이라면서 8월 15일을국경일로 정했다. 그랬던 공산당이 2014년부터 다시 9월 3일이 전승절로 정했다.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니 국민당이 정했어도 굳이 피할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게다가 중국은 공산당 국가답게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일’이라는 타이틀을 더하면서 이날에 이념을 더한다. 지금도 중국은 공산당이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고 선전·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공산당은 승전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는 게 전쟁 사학자의 통념이다. 애초에 공산당은 일본과 교전을 피하고 공산당의 세력 지역(소위 해방구) 확장에만 몰두하면서 전쟁에 그다지 기여가 없었다. 심지어 마오쩌둥(毛澤東)은 중일전쟁을 공산당의 발전 기회로 삼아 전력 70%를 공산당 세력 확대에, 20%를 국민당 대응에, 나머지 10%를 항일에 사용한다는 지침까지 내렸다.
그래서 중일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국민당의 중화민국이었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역사를 뒤바꾸려는 또 다른 ‘동북공정’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하고 있다. 애초에 프로파간다는 공산당의 주특기다. 연합국이 이룬 전승의 이미지를 자국에 투영해 미·중 전략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전달하려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력 과시
중국은 그간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한 1949년 10월 1일 국경절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열병식을 벌여왔다. 대대적인 열병식은 1999년 50주년, 2009년 60주년 그리고 2019년 70주년에 벌어졌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후 전승절 열병식이 갑자기 추가되면서 2015년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을 시작으로 이번 80주년 행사가 거행된 것이다.
열병식은 항공 사열을 필두로 기갑, 포병, 야전 방공, 대함(극초음속 미사일), 수중 타격 체계, 대공 탐지, 지역 방공, 대드론, 정보 작전, 전자전, 정보 지원, 무인 지상 전투 체계, 무인 해양 전투 체계, 무인 전투기, 군수 지원, 전략 타격 체계(순항·탄도미사일), 핵무기 등의 제대 분열로 실시되었다. 전반적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첨단 재래식 전력을 자랑했다. J-20과 J-35 등의 비행으로 2종 스텔스 전투기를 실전 배치했음을, 99B식과 신형 100식 등 최신 전차나 08식 등 장갑차로 지상군의 기갑 역량을 자랑했다.
우선 중국이 가장 많이 자랑한 것은 다양한 미사일이었다. YJ-15,17,19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과시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해군 함정을 격파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CJ-20A, YJ-18C, CJ-1000 등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선보이면서 대만을 포함한 주변국에 대한 타격 능력도 과시했다. 여기에 YJ-21, DF-17, DF-26D 등 괌이나 미 항모 전단을 겨냥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더했고, 마지막은 DF-31BJ, DF-61, DF-5C 등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특히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신형 ICBM인 DF-61의 등장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미래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2017년 시진핑이 지능화 전쟁의 화두를 던진 이후 중국군은 무인 체계와 인공지능(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교훈을 직접 전달받으면서 최신 무인 전투의 전술과 교리도 가다듬었다. 중국은 민수용 드론 산업에서 세계를 장악한 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드론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스텔스 형상의 무인 전투기 2종에 더해 100t급의 대형 무인 잠수정 등이 포함된다. 외양이나 기능은 분명 미국의 첨단 무기를 흉내 낸 것이지만, 중국의 저렴한 양산 능력이 결합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만들어내게 된다.
북·중·러 연대로 신냉전을 주도하려는 중국
시진핑은 전승절 기념 연설에서 인류는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 협력과 제로섬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막을 수 없으며, 인류 평화 발전을 위한 대의는 승리한다고도 했다. 중국이 정의이며 자국 중심으로 똘똘 뭉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 옆에 선 국가를 보면 중국의 정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 수 있다. 시진핑의 옆을 지킨 것은 푸틴과 김정은이었다.
사실 그간 중국은 러시아나 북한과 양자 관계는 유지해 왔지만, 북·중·러 삼각 연대 같은 직접적인 밀착은 꺼렸다. 북·러와 노골적인 연대로 인해 중국의 국가 위상이 전쟁과 범죄를 일삼는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서구에 의해 같은 수준의 국가로 규정되면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야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양자 협력 중인 국가와 연대했을 때 커다란 실익은 없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된 후 상황은 바뀌었다. 트럼프는 푸틴과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김정은과는 비핵화 협상을 추구하면서 피스메이킹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북·러를 아우르는 맹주로서 중국이 군림한다면, 미·중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중국이 북·러에 대한 또 다른 대화 루트로서 존재한다면 이에 따른 영향력을 충분히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중·러 3국 정상의 회동 모습을 연출한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애초에 친중 행보를 기대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일 공조를 이어가고 심지어 ‘안미경중’을 부정하는 반응을 하자, 이에 대한 견제와 보복을 한 것이다.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은 8월 28일에야 발표되었는데, 이날은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날이었다. 애초에 중국이 북·중·러의 그림을 연출해야만 했다면, 사실 지난 5월 러시아 전승절이 더욱 적절한 장소였다. 그러나 동북아 안보 협력이 중국에 유리하지 않게 펼쳐지자, 시진핑은 북한을 끌어당김으로써 한국을 견제하고 한미 동맹을 흔들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의 정치 성과를 어부지리로 얻은 북한
이러한 상황에서 승자는 단연 북한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낙담하고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자력갱생을 외쳤다. 그러나 애초에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북한은 중·러를 향해 반제국주의 연대를 외쳤지만 중·러는 굳이 이에 응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러시아가 북한에 군수와 무기 공급 그리고 파병까지 도움을 받으면서 북한의 입지는 유리해졌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목표는 북한 정권 생존을 통한 안보적 완충지대 확보이며 북한 정권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은 북·러의 밀착에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아 왔지만, 이제 신냉전 세력을 과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북·중·러 연대와 함께 북한을 포용했다.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트럼프 2기 정부가 지속되는 동안 북·중·러 3국은 끈끈한 연대를 통해 미국에 대항해야만 한다.
결국 이번 전승절 최고의 승자는 북한이 되었다. 북한은 핵무장국으로 중·러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런 추세라면 북·중·러 연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뤄질 날도 머지않았다. 북한은 한반도를 박차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까지 나가 러시아를 혈맹으로 만들고, 트럼프 취임 후의 국제정치 상황을 이용해 중국과도 밀착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나 중·러와 교역 재개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안보 역량을 키우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파트너로서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본 글은 9월 15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연구위원, 실장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뉴스매체를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실,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북한의 군사동향과 현대전쟁에 관한 연구를 계속 중으로,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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