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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반미 뭉치고 동맹 금가고…트럼피즘 지속 땐 신냉전 가속

작성자
윤영관
조회
66
작성일
25-09-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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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시 주석은 이제 미국에 맞먹는 패권국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전 세계와 중국 국민들에게 선언했다.

 

오랫동안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함께 미국이 혼란의 원인이라며 미국 주도 일극 체제를 비난해 왔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믿을만한 파트너라고 호소했다. 중국이야말로 진정한 다자주의,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시 주석의 그러한 주장에 어느 정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한 사람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거기에서 비롯된 서방 세계의 내부 균열이 주된 원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에 관세 폭탄을 동맹들에게 퍼부었다. 유럽 방위는 알아서 하라는 미국, 그런데 아직 그럴 준비는 안 되어 혼란에 빠진 유럽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인도·브라질 등 중·러로 밀쳐

 

한편, 미·중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자임해온 인도도 최근 미국으로부터 50%라는 관세 폭탄을 맞았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일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때 푸틴의 전용 리무진에서 50분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미국이 아니라도 인도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미국에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자들과도 충돌함으로써 이들을 시진핑-푸틴의 축으로 밀어붙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중국 중심의 수정주의 대안 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와중에 또 하나 분명해진 것은 규범 기반 국제 질서의 약화 흐름이다.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극진한 환대, 그리고 전승절 및 SCO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은 이제 완전히 풀린 모습이다. 예를 들어 이번 SCO 정상회의 합의문 어디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3년 전만 해도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려를 표명했고, 모디 총리는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충고했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범법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제 정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종의 노멀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규범이 아니라 힘을 앞세우는 권력 정치가 점차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수정주의 국가 연대는 세력 과시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도가 아닌 새로운 대안적 국제 질서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SCO 회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을 내놓았지만,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구호에 그쳤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노자의 도()를 말했지만, 며칠 후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중국의 최신 첨단무기를 과시함으로써 도보다는 중국의 힘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들 수정주의 국가들 간의 연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단한 축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편의상의 느슨한 연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이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네 나라를 공통으로 묶고 있는 고리는 반미(反美). 과거 냉전시대처럼 공동의 이데올로기는 없다. 그래서 이들 간의 협력은 진영 차원의 협력이 아니라 개별 국가 간의 양자 협력 수준에 그치고 있다.

 

먼저 중국은 러·북·이란과 달리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세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 핵심은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거리를 벌려 그 동맹국들을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유럽을 오히려 미국으로 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사실 SCO도 초기에는 이 두 경쟁국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 역할이었다.

 

중국과 북한의 경우도 전략적 목표에 차이가 있다. 중국은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 그러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추구한다. 문제는 그러한 북한의 정책이 한반도의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미군을 한반도, 즉 중국 가까이에 더 배치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원치 않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은 아직도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변화 가능성이 크다. 물론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북한군 파병에 대한 감사를 표했고 앞으로도 양국은 깊은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양국 간의 경제·군사적 교류는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은 다시 중국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북·중·러 이해관계 차이 노린 외교 펼쳐야

 

이러한 국제 정치 상황이 신냉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미국은 이들 수정주의 네 국가 간의 이해관계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좀 더 전략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서두르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원칙과 균형 감각을 갖고 협상을 중재해야 한다. 원칙 없이 러시아의 휴전 조건을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게 강요하는 경우, 수정주의 연대 세력에 승리감을 안겨줄 것이다. 둘째, 동맹들에 더 큰 방위 책임은 지게 하되, 관세 등 경제적 압박과 힘의 논리로 몰아붙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정치에서 미국의 중심적 위치는 더욱 약화될 것이다. 셋째,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경쟁은 경쟁대로 하되 게임의 룰을 만들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제외한 서방 국가들, 민주주의와 규범 기반 국제 질서의 지속을 원하는 국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그들은 상호 연대를 강화하여 국제 질서가 힘이 난무하는 무질서로 바뀌는 것을 막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도 바로 이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미국이 빠져나가 부족해진 국제 공공재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96일자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윤영관

이사장

윤영관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입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한국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연구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 II 공동의장(2011-2012)과 국회의회 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2019-2020)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국제정치경제, 한국 외교정책, 남북관계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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