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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안보 위기가 불러 온 EU의 북방 확장

작성자
김흥종
조회
37
작성일
25-09-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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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이익 위해 EU 가입 포기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트럼프의 지속적 나토 공격에

집단안보체제 신뢰 어려워지자

다시 EU 가입 고민하기 시작

 

항상 변하는 지역안보 환경

동북아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유럽에는 12개의 유럽연합(EU) 후보국이 있습니다. 2025 4 24일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연설 중에 한 말이다. 연설 직후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EU 가입 후보국은 10개국이기에 12개국 운운은 실수라며 집행위 관계자들이 정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반전은 그 다음이었다.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을 실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덧붙였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는 공식 후보국은 아닐지 모르나 유럽의 일원입니다. 유럽경제지역(EEA)과 솅겐을 통해 이 나라들은 EU에 깊게 통합돼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우리의 가치입니다.

 

집행위원장은 EU의 북방 확장(Northern Enlargement)을 향한 정치적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의지는 마침 노르딕 국가 덴마크의 EU 의장국 수임을 맞아 지난 10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다시 확인됐다. 폰데어라이엔은 이 국가들과 그린란드는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유럽 가족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이 나라들에서도 EU 가입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 치이고 경제력이 예전 같지 않은 EU 가입을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그린란드에 EU 가입은 전혀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노르웨이는 1962년과 1967년 유럽공동체(EC) 가입을 신청했지만 당시 프랑스가 영국 가입을 반대하면서 함께 무산됐다. 이후 1972년과 1994년 두 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모두 ‘반대’가 근소하게 승리했다. 특히 1994년 투표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EU 가입을 결정한 해였기에 더욱 눈에 띄었다.

 

아이슬란드는 2009년 금융위기를 호되게 겪은 직후 EU 가입을 신청했고, 2010년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2015년 가입 신청을 철회했다. 주요 쟁점은 아이슬란드의 핵심 산업인 수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EU의 공동어업 정책이었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1973년 덴마크와 함께 EC에 가입했지만 1982년 국민투표를 통해 탈퇴를 결정하고 1985년 공식적으로 EC를 떠났다. 이유는 역시 어업권과 자원관리에 대한 주권 문제였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의 ‘영토 편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유럽 내에서는 그린란드의 정치적 방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들 국가에서 EU 가입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을까. 그것은 안보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 회원국이었기 때문에 안보를 이유로 EU에 굳이 가입할 이유는 없었다. 나토와 EU 집단안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존재 유무인데, EU만의 안보체제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었겠는가. EU의 방위 협력 수준이 낮아 나토만큼 즉각적이고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바뀌었다. 미국이 나토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가운데 나토를 통한 집단안보체제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나토를 신뢰할 수 없다면 EU의 정치·경제적 공동대응 능력은 새로운 차원의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가 펼쳐놓은 안보 위협은 공동어업 정책의 번거로움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EU 가입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노르딕 국가들의 동향에 발맞춰 EU 주요 회원국은 북방 확대를 기존 확대계획과 병행하는 전략을 검토 중이며, EU는 북방 확장에 관한 전략적 판단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유럽 경제위기 이후 EU를 연이어 타격한 각종 악재 속에서 EU는 자신의 레버리지를 확장하는 데 실패했고,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 후 왜소해진 지위만을 확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북방 확장은 EU 체제를 강화시키고 EU의 지리적 경계를 대서양과 북극으로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린란드의 EU 가입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지역안보 환경은 항상 변할 수 있다. 지난 80여년 동안 기본 구조가 흔들리지 않은 동북아 안보 환경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지정학적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일수록 자강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깊이 연결되고 더 넓게 협력해야 한다.

 

 

* 본 글은 925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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