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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신기루 위의 번영, 두바이는 어디로 가는가

작성자
김흥종
조회
52
작성일
26-03-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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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도시는 늘 경이롭다. 한 달여 전 방문했던 두바이는 특히 그러했다. 지천에 피어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따뜻한 햇볕에 흔들리듯 빛나고 있었고, 투명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은 사막의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주고 있었다. 초현대적인 마천루와 흐트러짐 없는 정돈된 질서,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자본과 인재가 만들어낸 끝없는 번영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압도적인 화려함은 거침없는 낙관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전쟁과 공습의 위험 앞에서 그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두바이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거의 나지 않던 석유에 대한 미련을 일찌감치 버리고, 무역과 물류, 금융과 관광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막툼 부족장의 전략적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개방과 실용, 전략과 비전은 두바이의 핵심 가치였다. 필자가 처음 두바이를 방문했던 2000년대 초를 떠올리면 당시 공항은 작지만 아름다웠고, 크지 않았던 도심은 지금처럼 단정하여 오랜 중동 출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와도 같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초현대적 스카이라인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불과 20여년 만에 두바이는 주변의 다른 소국들이 따라가고자 하는 하나의 전범이 됐다.

 

최근의 상황은 이 모형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에너지 수송의 불확실성만을 높이는 게 아니다. 이는 곧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흐름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두바이 번영의 전제조건이었던 네트워크 자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두바이는 바로 이 연결성 위에 서 있었지만 이제 그 위로 짙은 불확실성이 드리워지고 있다.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안정 조건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걸프 국가들은 그동안 개방과 실용을 바탕으로 안보의 외부 위탁, 지정학적 중립성,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촘촘한 연결을 통해 번영을 일궈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 전략의 축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립성의 약화다. 지금까지 두바이는 걸프협력위원회(GCC)를 통한 주변국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바다 건너 이란과는 긴밀한 경제적 유대를 유지하며 전략적 공존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갈등이 심화할수록 이러한 균형은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앞으로 어떤 경로를 밟을 것인가. 기존의 질서가 유지된다면 걸프의 번영은 가능하겠지만 이번 사태는 그 전제 자체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제 걸프 국가들은 전략의 재설계를 피할 수 없다. 첫째, 안보의 외부 위탁에만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자율적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아랍국 사이에서 단순한 균형자에 머무는 것을 넘어 위기 완충지대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물류와 금융 중심의 단일 허브 모델을 넘어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외부 충격에 대한 복원력을 높여야 한다. 이제 번영은 개방을 넘어 안정, 신뢰,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두바이의 마천루가 드론 공격에 노출되는 장면은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 도시의 번영이 얼마나 정교한 전제 위에 서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두바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래 두바이는 관리된 균형 위의 허브로 진화해야 한다. 신기루 같은 번영은 여전히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환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관리돼야 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걸프 지역의 변화는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에너지 수입과 해상 수송로, 그리고 중동과의 경제 협력에 연결된 한국 경제는 걸프의 안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걸프의 불안정은 곧 우리의 리스크로 전이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관계의 재설정이다. 변화하는 중동 질서 속에서 우리는 모든 당사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숙고를 바탕으로 전략을 마련하며, 신중하되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더 넓은 외교적 접점과 한층 치밀한 경제안보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본 글은 319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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