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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브렉시트 선택 10년 “영국 경제에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손실”

작성자
김흥종
조회
78
작성일
26-01-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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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24일 정오 무렵, 나는 뉴스 앵커와 함께 한 방송사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어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개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특집 방송이었다. 개표율이 30%를 넘기자 설마 하던 우려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잉글랜드 본토 개표가 본격화하자 브렉시트 찬성 득표수는 반대표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로 앞서갔다. 투표 당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유럽연합(유럽연합) 잔류가 우세했기 때문에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애초 부결을 전제로 설계된 모든 방송 시나리오는 급히 폐기돼야 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문장이 떠올랐다. “영국은 큰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떠난다는 선택은 경제적 손실을 의미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장기적으로 더 큰 자율성과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편익은 추상적이었고 비용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결국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지난 10년 동안 영국 경제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실증 연구들의 결론, ‘구조적·지속적 손실’

 

몇 달 뒤면 브렉시트 국민투표 10주년을 맞는다. 법적 탈퇴는 2020년에 이뤄졌는데, 경제·통상 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지도 5년이 지났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실증 연구들은 이제 하나의 공통된 결론에 수렴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에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손실을 남겼다”는 평가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 2025 11월 발표한 영국·미국 학자들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유럽연합에 잔류했을 경우의 가상적 경로와 비교해 6~8% 낮은 수준에 고착돼 있다. 이는 경기순환상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경제의 ‘수준’(level) 자체가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브렉시트는 회복 가능한 충격이 아니라, 장기 성장 경로를 영구적으로 하향 이동시킨 사건이었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력효과’(Hysteresis)에 다름 아니다. 브렉시트의 경제적 손실은 한 번의 충격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손실이라 봐야 한다. , 단일한 정책 실패라기보다 선택의 누적 비용이 매년 현실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GDP 6%라면 2025년 명목 GDP 기준으로 연간 약 1500억파운드( 283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기업 투자의 위축은 더욱 명확하다. 같은 미국 국립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기업 투자는 유럽연합 잔류 시나리오 대비 12~18%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제조업과 수출지향적 서비스업에서 투자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이는 단일시장 접근성 상실과 규제 불확실성이 결합된 결과다. 투자 부진은 다시 생산성 정체로 이어졌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브렉시트로 장기 생산성이 유럽연합 잔류 대비 약 4% 낮아질 것으로 추정한다. 이와 같이 영국이 오랫동안 겪어온 이른바 ‘생산성 퍼즐’은 브렉시트 이후 더욱 심화됐다.

 

무역에서도 손실은 분명하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종종 “관세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실제 영국과 유럽연합은 일종의 자유무역협정인 무역협력협정(TCA)을 체결했고, 대부분의 상품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2021~2023년 유럽연합과의 교역에서 수출 27%, 수입 32% 감소를 보고한다. 문제는 관세가 아니라 비관세장벽이었기 때문이다. 통관 절차, 원산지 규정, 인증과 표준의 이중 부담은 특히 중소기업에 치명적이었다. 대기업과 달리 많은 영국의 중소기업이 유럽연합 시장에서 철수했다.

 

서비스·노동·물가에도 큰 충격

 

영국 경제에서 강점이던 서비스 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융·법률·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은 단일시장의 ‘패스포팅 권리’를 상실했다. 런던의 금융 중심성은 외형상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유로화 표시 금융거래와 일부 파생상품 거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프랑스 파리로 이전됐다. 이는 단기적인 거래 이전을 넘어, 장기적인 금융생태계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2 9, 리즈 트러스 정부 출범 직후 일어난 파운드화 폭락 사태는 브렉시트 이후 누적된 구조적 요인과 정책 실패의 충격이 겹쳐 발생했다.

 

노동시장에서도 구조적 변화가 나타 났다. 유럽연합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종료되면서 농업, 요식업, 물류, 보건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만성적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브렉시트 이후 이주에서 상당한 영향이 나타났음을 지적했고,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연구는 브렉시트 노출도가 높은 기업에서 노동력 15.7%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이 컸음을 보고했다. 브렉시트 이후 노동 공급 감소가 임금 상승 압력을 키웠지만 이는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건강한 임금 상승이 아니었다. 숙련 인력 유입이 줄어들고 공급망 비효율이 확대되면서 기업 비용은 증가했고, 그 부담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전가됐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유럽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 배경에는 에너지 가격 충격뿐 아니라 이러한 공급 쪽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한 2022 10, 영국은 물가상승률이 11%를 넘는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했다. 생활비 위기는 브렉시트로 허약해진 경제가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일상 경제에 남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충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역별 영향의 비대칭성이다. 브렉시트를 강하게 지지하던 많은 지역에서 공교롭게도 유럽연합 시장 의존도가 높았는데 당연히 그 충격도 컸다. 정치적 선택과 경제적 현실이 어긋날 때 어떤 역설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권의 환상과 정치·경제적 교훈

 

물론 브렉시트의 비용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유럽연합 역시 무역 감소와 공급망 조정이라는 비용을 치렀다. 특히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등 영국과 교역 비중이 높던 국가들은 단기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비대칭적이었다. 유럽연합은 단일시장이라는 제도적 틀을 유지했고, 내부 무역과 투자 흐름을 통해 충격을 분산할 수 있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 전체의 GDP 손실은 0.5~1% 수준으로 추정된다. 영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작은 규모다. 이는 단순히 유럽연합이 잘해서가 아니라, 단일시장이라는 제도적 틀의 힘에 기인한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공통 규칙을 유지한 경제권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그 체제에서 이탈한 영국은 협상 상대이자 외부자로서 홀로 비용을 떠안아야 했다. 브렉시트는 결과적으로 통합 비용보다 탈퇴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2019년 여름, 나는 두 달 동안 영국의 소도시와 농촌을 다니며 많은 보통의 영국인을 만났다. 개와 함께 산책하던 한 은퇴한 노신사는 점잖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지만, 확고한 브렉시트 찬성론자였다. 그는 젊은 세대가 브렉시트에 반대한 이유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전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1950~1960년대의 영국은 좋았던 시절이다. 영국이 지리적으로 유럽에 위치했지만 영국은 유럽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유럽연합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던 숙박업소 주인도 있었다.

 

이처럼 브렉시트는 정체성 정치가 장기적 경제 비용을 압도한 사례다. 불행하게도 ‘통제의 회복’(Taking back control)이란 구호는 실질적인 정책 자율성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연합 규칙을 참고하고 따라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영국의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를 붕괴시키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제약 조건이 되었다.


 

많은 것 잃은 10,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

 

그럼에도 브렉시트가 영국의 미래를 완전히 결정지은 것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안보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영국의 전략적·군사적 중요성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 군사국이며, 독자적인 핵억지력을 보유한 유럽 내 소수 국가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전략적 조율이 필요해질수록, 영국은 가교 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푸틴의 러시아를 상대하는 데도 영국은 군사·정보·외교 역량을 동시에 갖춘 국가다. 경제적으로 영국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 허브이며 기술혁신과 법치, 제도적 신뢰를 보유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성장 경로를 낮췄지만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지는 않았다. 향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경로는 다시 달라질 수 있다. 브렉시트 10년을 앞둔 지금, 영국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새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영국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여전히 쓰이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되, 그 현실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영국은 브렉시트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분투할 것이며, 유럽 역시 영국 없이 완전해질 수는 없다.

 

 

* 본 글은 18일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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