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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물 | 아산리포트
522026.01.02
서문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를 막론하고 어떻게 하면 ‘힘(power)’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는 인류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우리가 국제정세와 질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가 과연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입니다.
2010년대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질서의 재편은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주요국 간의 경쟁과 각축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대응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하나의 주제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의 세계를 ‘新냉전(New Cold War)’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강대국(dominant power) 간의 각축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전통적 안보 이외에도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분야 이슈들이 부각됨으로써 국제관계는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이 같이,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국제질서는 다양한 특징들이 어우러져 나타나고 있고, 그래서 미래를 전망하고 예측하는 일도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시각에서 현대의 국제관계를 바라보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강대국들의 자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의 유지 혹은 새 질서의 구축, 권위 있는 국제적 조정 장치의 부재, 그리고 많은 국가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의 문제 등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들을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설명하는 일은 지구촌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그 방향과 속성을 쉽게 가늠하기가 힘든 국제질서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2015년부터 “아산 국제정세전망” 보고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설정해 왔습니다. 전략적 불신(2015), 뉴노멀(2016), 리셋(2017), 非자유주의 국제질서(2018), 한국의 선택(2019), 新지정학(2020), 혼돈의 시대(2021), 재건(2022), 복합경쟁(2023), 연대결성(2024), 리뉴얼(2025)이 지금까지 연구원이 다루었던 주제들입니다. 이 주제들은 서로 다른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모습과 그 함축성, 그리고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와 지역 차원의 전략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려는 고심을 담고 있습니다.
2026년의 주제로 선정된 ‘무질서의 세계(Anarchic World)’ 역시 이러한 고려를 반영한 것입니다. 2025년에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모두 자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 과정에서 예외 없이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기존의 대외정책상의 과격한 변화를 꾀했고, 이는 경쟁자와 동맹을 가리지 않는 관세전쟁, 동맹국에 대한 ‘부담 분담(burden sharing)’ 압력, 그리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구호하에 추진된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기존 우방국과 동맹국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미국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 이상 전쟁을 지속하면서 많은 희생을 강요한 러시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외치면서도 권위주의 체제 간의 결속을 통해 세계를 불안하게 만든 중국 역시 국제적 지도력의 공백을 부추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세계의 모습으로 미국 패권의 쇠퇴와 새로운 패권의 부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느슨한 냉전 체제의 부활이나 다극화 등을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25년 우리가 경험한 다양한 현상들은 그 이상으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무질서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질서의 위기는 어떻게 정리될까요? 강대국들은 현재의 약화된 국제적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나머지 국가들은 어떠한 길을 추구할까요? 시계(視界)가 극히 불투명한 무질서의 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까요?
우리나라가 위치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도 수많은 전략적 계산들이 서로 뒤얽히거나 충돌할 것입니다. 함께 동맹관계에서도 ‘거래’를 강조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리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로 보고 이를 공략하려는 중국, 무질서의 세계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을 정당화하고 지역 및 국제 차원의 존재감을 노리려는 북한,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도 자기 지분을 주장하려는 러시아의 행보 등이 맞물려 우리의 안보 여건은 더욱 복잡하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2026년 전략정세를 전망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통찰력을 가지고 대응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기 위한 우리 연구원 차원의 노력의 집약입니다. 이 보고서가 2026년 한반도 및 지역 그리고 국제질서에 대한 분석을 활성화하는 값진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하며, 보고서 발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연구원 내부 및 외부의 저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윤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