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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2025 아산 플래넘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올해 플래넘 주제는 “해방 80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입니다.

해방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은 올해 우리가 논의해야 할 뜻깊은 역사적 이정표입니다.

한국인에게 80은 중요한 숫자입니다. 과거에는 80번째 생일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팔순(八旬) 잔치’를 열어 이를 축하하곤 했습니다.

60년은 동양의 연도 기산방법인 육십갑자(六十甲子)가 한 바퀴 도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갑(還甲)’이라는 생일잔치를 열어 예순 살이 된 사람을 축하합니다.

올해는 세계사의 변곡점에서 한국 안보 문제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숙고해 볼 기회입니다.

먼저, 한일 관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세력권 경쟁 사이에서 독립을 지켜왔습니다.

1590년대, 두 차례 일본의 침략은 조선을 큰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1890년대에는 일본 제국이 ‘제 1차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졌고, 1895년에는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 자객들에게 시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 뒤로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10년의 한일병탄이 이어졌습니다.

그 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는 조선을 착취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명의 조선인 남성들이 징집되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졌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재직했던 故이정식 교수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겨우 열네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들까지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 1945년 미국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 약 4만 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1945년 미국의 승전으로 일제의 한반도 점령은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60년에 걸친 관계 회복에도 불구하고 한일 사이에는 여전히 많은 갈등 요소가 있습니다. 일본 내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전쟁 범죄 역사를 왜곡하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과 대륙붕에 관한 일방적 해석 등의 영토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친애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살아오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학대학원(SAIS)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일본 산업에 관한 논문을 썼고, 2002년에는 정치인으로 『일본에 말한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또한 FIFA 부회장으로서 2002년 FIFA 월드컵이 일본과 공동 개최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불행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지난 80년 동안 한일 관계는 중요한 진전을 이뤄왔습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를 돕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때 한국은 일본에 의료 지원을 보냈고, 2011년 리비아, 2023년 수단과 이스라엘 등에서 발생한 분쟁에서 양국 정부는 서로의 국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일 사이 인적 교류는 한중 사이 인적 교류를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약 700만 명으로 전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4분의 1을 차지했고,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도 200만 명을 넘어 전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5분의 1에 달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연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대일 호감도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80%를 넘었습니다.

친애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일본의 식민 통치 세력들과 군대가 한반도에서 물러난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연합국이 나치 독일을 처벌하기 위해 독일을 분단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아닌 한국을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의 공산주의 및 세습 정권에서 비롯됩니다. 북한의 안보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북한은 전술 핵무기와 핵 잠수함을 공개하고, 단거리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수십 기를 시험 발사했습니다. 또한 수천 명의 북한 군인들을 우크라이나에 맞서 최전선에 파견했으며, 제재를 회피하고 사이버 공격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탈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작년에 저는 “우리는 이제 전술 핵무기 재배치를 위한 기초를 놓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미국의 고위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의 핵 억제 정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에 더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미시시피주의 로저 위커 상원의원은 미국 전술 핵무기를 서태평양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에 100개 이상의 핵폭탄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 논의는 북한이 1991년 12월 남북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약속을 어겼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강력한 핵 억제 보장이 필요한 동시에 침략과 오판을 억제하기 위한 집단 안전 보장 조치도 필요합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었다면 과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요?

미국과 그 동맹국 및 파트너들도 북한, 중국, 러시아 간의 경제 및 군사 협력을 억제하기 위해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이제 아시아판 나토(Asian Version of NATO)를 설립할 때입니다. 이를 인도-태평양 조약기구(Indo-Pacific Treaty Organization, IPTO)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인도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올해 아산 플래넘은 한국 독립 80주년과 한일 관계 정상화 60주년을 되돌아볼 기회입니다. 오늘 플래넘에서는 한국과 이웃국가들, 동북아시아를 위한 비전, 변화하는 안보 아키텍처, 전쟁의 새로운 양상, 경제 안보의 새로운 지평, 그리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여러 나라의 전문가 여러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긴장이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데 오늘 우리의 논의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한 통찰과 지혜를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위 연설문은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의 ‘아산플래넘 2025 환영사’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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