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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도 북한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훈련(3월 13~23일) 기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북한은 도발의 관성을 유지함으로써 김정은이 강조한 “실천적이고 드팀없는 군사행동 의지”를 보여주려 할 것이다. 군사력 이외에는 내세울 만한 성과가 변변치 않게 된 김정은 입장에선 남북 관계 주도권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도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가 북한이 핵 및 미사일 능력 시위를 지속하면서도 작년 12월의 무인기 침투와 같은 전통적이고 재래적인 도발을 섞어 구사할 것이며 특히 인터넷 해킹, 기술 절취, 한국 사회 내 여론 조작 등의 도발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한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 유형과 추세상 이런 분석은 타당하며, 최근 북한이 첨단 분야에서의 군사기술을 추격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북한 도발은 두 가지 측면의 목표를 지향해 왔다는 점이다. 하나는 우리의 인력과 재산에 대한 실질적 피해를 부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허 찌르기’를 통해 우리 사회 내 안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의 도발에서는 효과성이 중시되지만, 두 번째 유형의 도발은 가시성에 중점을 둔다. 즉 북한이 도발 자체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자신들이 도발 주체로 부각되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수단의 조악함이나 기술적 후진성도 이 경우에는 오히려 강점이 된다. 겨우 이런 도발에 당했다는 우리 사회의 모멸감이나 무력감을 유발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잇단 핵 능력 과시나 미사일 발사에도 한국과 미국이 동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경우 우리가 대응하기 힘든 영역을 집중 공략하려 할 것이다.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우리 병사에 대해 국소적 피해를 입히거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에서 어선을 나포하는 것, 그리고 추가적인 무인기 침투 등이 이에 속한다. 현대라고 해서 반드시 그 방법이 첨단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약점을 찌르고 나오는 것이 북한이었다.

문제는 이런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고강도 도발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과잉 대응할 경우 정전협정 위반 논란으로 이어져 국제적 양비론을 유발할 수 있고, 민간 피해 등을 우려해 소극 대응한다면 “서울 하늘이 뚫렸다”는 식의 안보 불안과 국내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도발 강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반응을 유도해 내더라도 북한의 대차대조표는 별반 손해가 없다. 이런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대비 태세가 필요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심리적·육체적 피로를 부과하고, 이것이 누적되면 또 다른 빈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허 찌르기’식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선 크게 세 가지의 자세를 필요로 한다. 첫째는 책임은 정책 결정자와 지휘관이 떠맡되, 재량권은 분산하는 방식이다. 현장 지휘관과 인력들에 대해 그들의 대응을 상급자들이 적극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선 현장이 심리적으로 쉴 수 있도록 상급 기관이 더 바빠져야 한다. 둘째, 예상되는 도발 유형이나 적법한 대응 절차가 지휘관-간부-병사 간에 광범위하게 숙지·공유돼야 하고, 연습과 훈련을 통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도발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필요하다. 중요한 대비 태세의 허점이 보였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 부과가 돼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이 정도 도발에 한국이 동요하지는 않는다는 자신 있는 메시지를 평양에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약 오르면 진다”는 것은 국제 관계와 남북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 본 글은 3월 20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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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