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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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되어 왔지만, 중국이 우리를 진정한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개최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이 회담이 끝나자마자 중국 외교부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중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5개의 마땅히 해야 할 사항(五個應當)’을 강조했다고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중국이 제시한 ‘5개 응당’은 「① 마땅히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 不受外界干擾), ② 마땅히 선린우호를 견지하고 서로의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應當堅持睦隣友好, 照顧彼此重大關切), ③ 마땅히 개방과 공동이익을 견지하고 공급망 안정을 보호해야 한다(應當堅持開放共贏, 維頀産供鏈穩定暢通), ④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平等尊重, 互不干涉內政), ⑤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應當堅持多邊主義, 遵守聯合國憲章宗旨原則)」이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양국 관계를 위한 원론적인 입장들로 보이지만, 중국의 역사인식과 세계관이 일방적이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 실망스럽다. 우리가 ‘5개 응당’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중국이 한중관계를 수평적, 호혜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중 중국만큼 우리를 무례하게 대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왕이 외교부장이 말한 ‘5개 응당’ 중 첫 번째인 ‘독립자주’는 우리 안보에 필수적인 한미동맹을 비판하고 그 해체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는 노동신문 등의 매체가 ‘반제자주(反帝自主)’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고, 2022년 3월 김정은은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강조하는 등 북한은 ‘자주’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중국이 이 단어를 사용했을 때 우리는 북한의 발표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시진핑 정부는 아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고 노력해 왔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에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들에 의해서 지켜져야 한다”는 ‘아시아 신안보 구상’을 제기했는데, 결국 중국의 ‘5개 응당’ 중 첫 번째인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어구는 한국이 미국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시아세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러시아를 끌어들여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행태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또한 동맹은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스스로의 결정과 관련국들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맹이 독립자주를 훼손하는 것이라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의 NATO 회원국들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음으로 모두 독립을 포기한 국가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중국은 자신들은 동맹을 맺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및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미동맹은 72년 전에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인해 탄생하였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분할 주둔을 논의했고, 일본 항복 직후 38선을 기준으로 이북에는 소련군, 이남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가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안’을 결의했는데, 소련의 영향하에 있던 북한은 이를 거부했고 1948년 2월 남한의 단독 선거를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이 유엔 임시총회에 제출되어 통과됐다. 1948년 5월의 총선을 거쳐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유엔은 “한국 국민의 절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한국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과 동 정부는 동 지역 선거인들의 자유 의지의 정당한 표현[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e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이라는 총회결의안 195호를 채택하여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그때부터 김일성의 북한은 북한지역을 점거한 미승인(unrecognized) 불법(unlawful) 단체가 된 것이다.

1948년에 우리 정부가 수립되자 4만여 명의 미군은 철수하였는데, 1950년 6월 소련의 군사지원을 받아 북한이 남침하자 유엔군 결성과 참전을 내용으로 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84호가 채택되고, 유엔군이 결성되어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유엔군의 깃발 아래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콜롬비아를 포함한 16개국이 연인원 200만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5개국이 3천 명의 의료병을 파병했다.

북한은 남침 한 달 만에 남쪽 끝 항구도시인 부산을 제외하고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나, 유엔군의 참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며 9월에는 서울을 수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계속하여 중국과의 국경선 근처까지 진출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1950년 10월 말 중공군이 참전하여 통일의 기회는 사라졌다. 6.25전쟁에서 한국군 14만 명,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 3만 7천 명, 중공군 14만 명, 북한군 52만 명이 사망했고 한국 민간인의 피해 규모는 100만 명에 달했다.

1953년 7월에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 체결된 후 10월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한미동맹이 결성되었다. 당시 미국은 1950년 ‘에치슨 라인’을 선포했을 때와 비슷하게 한국에 대해 전략적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부정적이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끈질긴 요구로 한미동맹이 탄생했다.

6.25전쟁에 중국이 유엔군에 대항하여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UN이 승인하고 지원한 대한민국은 이미 자주독립의 통일국가가 되었을 것인데, 중국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늘의 우리에게 자주를 요구하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 한 일이다.

‘5개 응당’의 두 번째 사항에서 중국이 말하는 ‘중대 관심사’는 사드 배치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중국은 사드에 사용되는 X-밴드 레이다가 일본에 배치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서도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우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사드라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을 때 이를 수용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일방적인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사드는 방어무기인데 어떻게 중국의 안보이익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주한미군 사령관을 역임한 에이브람스 장군은 “중국이 사드와 같은 방어 체계가 어떻게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침해하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겨냥해 설치한 새로운 레이더와 장거리미사일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라며 중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는 왕이 부장의 말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확대하며 새롭고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미국이 주최한 2022 공급망 장관회의에 참석해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한 투명성, 다변화, 안전성, 지속가능성 등의 원칙에 합의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즉 ‘칩(chip) 4’ 예비회의에 참여할 것을 공표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참여하지 말라고 중국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내정 불간섭’을 외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강압적인 對대만 정책과 중국 내 인권유린에 침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신장-위구르에서의 인권유린,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의 자유항행 방해, 대만 등에 대한 압박을 문제 삼자 중국은 이것이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자주의를 존중하고 UN 헌장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역시 미국은 패권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니 중국의 편에 서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의 외교적 슬로건은 한결같이 미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이 패권주의 국가라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이 없다.

중국의 ‘5개 응당’이 공감을 얻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이러한 사항들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독립자주를 강조하고 다른 국가의 ‘중대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 억제 조치의 하나인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다. 세계적인 공급망 안정을 외치면서 다른 국가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경제적 거래를 무기화하고 중국 내의 불매운동을 조장한 것은 중국이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가 중국이다. 2021년 1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코로나19 발원지를 조사하기 위해 우한을 방문했으나, 수개월 후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은 우리가 요청한 코로나 발생 초기에 관한 정보와 자료에 관해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이며 협력적이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는데, 중국은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도 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5개 응당’이 지니는 두 번째의 심각한 문제점은 일방주의이다. 중국은 그동안 자신의 입장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보복을 가하는 일방주의 외교 행태를 지속해왔다. 한국에 대해 사드 도입을 문제 삼아 무역보복을 가했으며, 호주가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지지하자 호주산 상품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북한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22차례의 미사일 및 방사포 시험을 실시하고 핵무기의 선제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했지만, 중국은 북중 우호를 강조하면서 한국의 안보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침략국가인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했다. 중국이 표방하는 가치만이 절대적 선이며 다른 국가들의 안전이나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는 중국식 일방주의가 ‘5개 응당’에 그대로 녹아 있다.

중국의 ‘5개 응당’이 지니는 마지막 문제는 다른 국가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중국어에서 ‘응당’의 의미는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인데, 한 국가가 자기 자신의 정책노선을 분명히 하기 위해 비전이나 목표에 쓰일 수는 있지만, 다른 국가와의 회담이나 대화에서 제시하는 것은 크나큰 결례이다. 과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말을 들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이는 현재 중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중국의 ‘5개 응당’은 과거 상국(上國)이 조공국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 시대착오적인 중화사상(中華思想)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한중관계 30년에 상처를 남기는 행위이다. 지난 30년간 한중관계는 이익 공유에 기초해 왔지만, 앞으로는 가치 공유에 기반하여 발전해야 하는데 지금의 중국에게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상호존중’의 한중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데, 중국이 우리의 입장을 진정으로 존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5대 응당’이 담고 있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는 중국의 태도와 정책은 자기중심의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해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모습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중국은 주변국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며 한국인의 7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