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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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많은 나라가 이를 규탄했고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으나 중동 국가들의 반응은 사뭇 미온적이었다. 중동 유일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25일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의 표결에 기권했다. 아랍연맹은 2월 28일 성명에서 러시아를 언급하지 않은 채 위기 극복을 위한 대화를 촉구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의 대러 제재 참여와 원유 증산 요구를 거절했고 이스라엘과 터키 역시 대러 제재에 나서지 않은 채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밀을 대량 수입하는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등은 러시아 비판을 삼가고 식량안보 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중동 지역의 시민들은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을 때 보다 훨씬 더 분노하는 국제사회의 이중잣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중동 주요국이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배경에는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 부상, 미국의 역내 역할 축소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이래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해 아사드(Bashar al-Assad) 세습 독재정권을 적극 도왔고 자국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 시리아 정부는 10년여 내전 끝에 승리를 선언했다. 더불어 러시아는 시리아 평화협상을 10차례 이상 성공적으로 주도하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갈등도 중재하면서 역내 질서 재편을 이끌었다. 이에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이스라엘과 터키 등은 대러 관계 관리에 나섰다. 대부분 권위주의 체제인 중동 여러 나라에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변하는 미국보다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정책을 좌우하는 러시아가 자국의 정권 수호를 위해 더 안정적 파트너라는 평판이 확산되어 갔다.

반면 미국은 오바마(Barack Obama) 정부 시기부터 아시아 중시 정책을 선언하면서 탈중동 준비의 일환으로 이란 핵합의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역내 우방국을 배제해 이들의 위기감과 배신감을 부추겼다. 트럼프(Donald Trump) 정부가 자유주의 질서와 동맹의 가치를 흔들자 미국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바이든(Joe Biden)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을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로 밝혔고 역내 역할 축소를 강조했다. 이후 미국은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을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하고 중국 화웨이 5G 시스템을 사용하는 UAE에 F-35 전투기 판매를 꺼렸으며 사우디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방국과 불화를 겪었다.

중동 주요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연대와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반미 연대의 대결 구도 하에서 이미 진행해오던 탐색전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첨예하게 가속할 것이다. 특히 비자유주의 연대에 속하는 중국은 경제 실용주의를 내세워 중동 권위주의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역내 질서 재편의 역학이 더 복잡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미 우방국인 사우디, UAE, 이스라엘은 3국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최근 추진해온 이란, 터키와의 해빙 외교에도 속도를 낼 것이다. 또한 이들은 러시아, 중국과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국 무기체계의 도입 노력 역시 이어갈 것이다. 한편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와 같은 식량안보 취약 국가에서 국가 실패의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대중동 정책에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기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동 주요국의 손익계산서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그동안 추진해온 국제규범의 원칙에 기반한 대중동 중견국 외교를 지속함으로써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글로벌 중추 국가의 실현을 지향할 수 있다. 다만 가치 경쟁 속에서 고민을 겪는 사우디와 UAE 등 개별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가치 중심적 접근보다는 이들이 공을 들이는 개혁과 개방 가치를 적극 지지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UAE-이스라엘 간에는 지역 안정을 위한 삼각협력을 추구해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ODA 중점 협력국으로 선정한 이집트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인도주의 협력을 고려해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향한 중동의 중립적 태도와 전략적 고민 심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한 사우디와 UAE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사우디와 UAE는 2월 25일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 회부에 동참하지 않았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UAE는 표결에서 기권했다. 누세이베(Rana Nusseibeh) 주UN UAE 대사는 “결의안 부결은 필연적 결과이며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음 날 UAE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해 “국제법 준수, 민간인 보호, 인도주의 지원”을 강조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언급과 비판은 없었다. 한편 사우디는 공식 성명 없이 침묵했다.1 하지만 3월 2일 UN 긴급특별총회의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는 두 나라 모두 찬성했다. 이후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MbS) 사우디 왕세자와 빈 자이드 알 나흐얀(Mohamed Bin Zayed Al Nahyan, MbZ) UAE 아부다비 왕세제가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제의는 물론 미 주도의 러시아 제재 동참을 거절했다.

반면 MbS 사우디 왕세자는 3월 3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OPEC+ 체제의 결속을 확인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중재를 제안했다.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Abdullah bin Zayed Al Nahyan) UAE 외무장관 역시 3월 17일 모스크바에서 라브로프(Sergei Larvrov)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현 사태의 평화적 해법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고 라브로프 장관은 UAE의 입장에 감사를 표했다. 다음날에는 중동의 대표적인 친러시아 국가인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 UAE를 방문해 MbZ UAE 왕세제를 만났고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강한 유감을 밝혔다. 이어 MbS 사우디 왕세자는 4월 4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통화에서 전략적 협력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중국과의 석유 거래 대금으로 위안화 결제를 검토하겠다고 했다.2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유가가 급등하자 미국은 사우디와 UAE에 원유 증산을 요구했으나 두 나라는 이를 거절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3월 8일 미국, EU,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 발표 직후 영국 브렌트유가 2008년 이후 최고가인 배럴당 132달러까지 상승했으나 사우디와 UAE는 여전히 미국의 증산 요구에 침묵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약 한 달 뒤인 3월 20일에서야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원유 증산 방침을 밝혔다.3

 

[그림 1]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국제 유가 변동 추이(USD per Barrel)4
그림1

 

러시아와의 대화를 강조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과 터키
 
미국의 또다른 대표 우방국 이스라엘도 사우디, UAE와 마찬가지로 UN 긴급특별총회에서 발의된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았고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베네트(Naftali Bennett)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성명에서 “대화로 해결”을 강조했고 라피드(Yair Lapid) 외무장관이 별도의 성명을 통해 러시아를 비판했다. 이후 베네트 총리는 유대계인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중재 요청으로 푸틴 대통령과 5 차례 통화했고 3월 5일 전쟁 발발 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아이언 돔 방공 시스템 지원 요청은 거절했다. 동시에 라피드 외무장관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러시아 올리가르히를 겨냥하며 “이스라엘이 러시아 제재 대상자의 피난처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5

한편 터키는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과 UN 긴급특별총회의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 모두 찬성했다. 또한 2월 28일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러시아 군함의 보스포루스 해협 출입 금지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나아가 터키는 객관적인 중재자를 자처하며 3월 10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쿨레바(Dmytro Kuleba)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자국 남부 도시 안탈리아로 초청해 차우쇼을루(Mevlut Cavusoglu) 자국 외무장관과 함께 3자 회담을 열었다. 이어 3월 29일에는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평화협상 자리를 마련했다.6 비록 회담과 협상은 성과 없이 끝났으나 터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동시에 자국 영토에 모이게 하는 역량을 과시했다.

터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드론을 수출해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터키 드론 회사 바이카르 마키나(Baykar Makina)와 69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초 같은 회사의 드론과 초계함을 추가 주문했다. 터키 수출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대우크라이나 무기 수출이 급증했고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0배 증가한 수치다.7 동시에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터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양국 무역 거래 대금으로 루블화 결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이란
 
이란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시리아와 함께 러시아를 지지했다. 2월 24일 아미르압둘라히안(Hossein Amirabdollahian) 이란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NATO의 도발”이라며 러시아를 두둔했다.8 UN 긴급특별총회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는 알제리, 이라크, 수단 등 다른 중동 국가들과 함께 기권했다. 당시 비엔나에서 진행 중인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또 다른 협상 참여국인 러시아의 지지가 절실한 이란은 러시아와 결속을 다졌다.

그러나 러시아가 핵합의 복원 협상을 대러 제재의 우회 도구로 이용하면서 이란은 딜레마에 빠졌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3월 5일 핵합의 복원 협상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가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교역과 투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미국의 서면 보증을 강력히 요구했고 핵합의 복원 협상은 갑작스러운 난관에 부딪혔다. 협상 타결이 임박했던 시기 참여국들은 반발했고 영국, 프랑스, 독일은 러시아의 요구 때문에 복원 협상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란은 핵합의 복원이 또 다른 외세에 흔들리는 것을 규탄한다며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했다. 블링컨(Tony Blinken)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 제재와 이란 핵합의는 관련이 없기에 러시아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9 결국 이란과 러시아 외무장관이 면담을 한 후 러시아는 핵합의 복원 협상의 빠른 재개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은 러시아의 무리한 요구로 모멘텀을 잃은 후 두 달이 지나도록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식량 안보 위기에 직면한 이집트와 그 외 국가들
 
이집트와 튀니지는 UN 긴급특별총회의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모로코는 총회에 불참했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비슷하게 이들도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밀을 대량 수입하는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등은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삼가고 국제 식량 가격과 공급망 변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 권위주의 체제에 속하는 이들 정부는 막대한 국가보조금을 투입해 빵 가격을 조정하며 국민 불만을 막아왔다. 이집트 인구의 90%가 정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빵에 의존하고 있으며 빵 가격은 지난 40년간 동결됐다.10 그림 2에서 나타나듯이 빵이 주식인 이들 국가의 2020년 기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수입 의존도는 이집트 85%, 튀니지 52%, 모로코 22%에 해당하나 그림 3에서 보듯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들 식량안보 취약 국가의 위기가 심화했다.11

한편 1990년대 외세의 침공으로 전쟁을 치렀던 레바논과 쿠웨이트는 러시아의 침공을 직접 비판했다. 특히 레바논은 중동 내 개별국가로서 유일하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웨이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의 책임을 묻는 UN 안보리 결의안에 서명했고 공동 서명한 80개국 명단에 중동 국가로서는 터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12

 

[그림 2] 중동 국가별 밀수입 비율 (2020년 기준)13
그림2

 

[그림 3]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국제 곡물 가격 변동 추이14
그림3

 

반면 중동 내 대표적인 친러시아 국가인 시리아는 UN긴급특별총회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에 반대한 5개국 중 유일한 중동 국가였다.15 푸틴 대통령은 2015년 이래 시리아 내전에 직접 개입해 대량살상무기로 자국 민간인을 학살한 아사드 정권을 적극 도왔다. 시리아 인권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에 따르면 시리아 용병 선발대 150명이 이미 러시아에 도착했고 약 4만 명 이상의 시리아 병사가 참전 의사를 밝혔다.16

한편 중동 정부들의 중립 입장과 비슷하게 중동 시민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를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았다. 물론 중동의 정부 대부분이 권위주의 억압 통치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집단행동이 일어나기 어렵다. 이에 더해 중동 지역의 시민들은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을 때와 사뭇 다른 우크라이나 전쟁을 향한 국제사회의 이중잣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상승한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

 
이처럼 중동 주요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는 배경에는 최근 두드러진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 부상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서 자신이 후원하는 아사드 정권이 수세에 몰리자 2015년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시리아 내에 자국 공군 및 해군 기지를 둔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위해 반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공격에 나섰고 전투병, 용병, 무기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이란 최고종교지도자의 정예군 혁명수비대 역시 아사드 정권을 위해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했다. 반면 반군을 돕던 미국과 유럽 및 중동의 미 우방국은 이란 온건 개혁파의 역할, 쿠르드계 지원, 시리아 난민 위기에 대한 입장을 달리했고 결국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유보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 격퇴에 집중하기로 했다. 2014년 ISIS가 시리아 락까를 장악해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기 시작하자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 정부군, 반군, ISIS의 3파전으로 얽혀 교착상태에 빠졌다. 나아가 러시아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UN 안보리가 제출한 시리아 정부의 인권유린 및 화학무기 사용 진상조사 결의안 12건, 시리아 이들립 지역 휴전 촉구 결의안 1건 모두를 반대하면서 후원국 시리아를 감쌌다. 또 다른 상임이사국 중국도 반대와 기권을 오가며 러시아 지지를 밝혔다.17

마침내 2018년 말 자국 민간인을 상대로 200차례 넘게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 아사드 정권은 내전 승리와 정상 국가 복귀를 선언했고 이를 도운 러시아와 이란은 전후 역내 질서 재편을 주도했다. 러시아는 전후 평화협상을 주도하며 분쟁의 중재국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했고 이란은 시리아를 발판으로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의 친이란 무장조직 지원을 강화했다. UN 주도의 종전협상은 유명무실한 반면 러시아가 이끄는 협상은 이란과 터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과를 냈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부터 주도해 온 아스타나 평화협상에서 시리아 정부와 반군 진영을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 앉게 해 시리아헌법위원회를 출범하게 했고 아사드 대통령의 거취 논의를 종식하면서 시리아의 전후 재건만을 부각했다.

한편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기 심화한 신뢰도 추락, 유럽과의 갈등 때문에 러시아와 이란이 주도하고 터키와 중국이 지지하는 새로운 역내 질서 재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기부터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에 중동 내 적극적인 개입을 지양해왔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 신고립주의, 거래식 동맹관을 강조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철군을 단행했고 터키군의 쿠르드 민간인 학살을 방관했다. 역내 우방국의 불안감은 높아갔고 러시아는 이 틈새를 공략해 영향력을 더 높일 수 있었다.

대부분 권위주의 체제에 속하는 중동 여러 나라의 입장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중동 정책의 기조가 변하는 미국보다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 의지가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러시아가 국가 간 협력과 자국의 정권 수호를 위해 더 안정적인 파트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을 통해 아사드 정권을 끝까지 후원하는 모습에 푸틴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확산됐다.18

이처럼 시리아 내부는 물론 역내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부상하면서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이스라엘과 터키는 러시아와 군사 안보 협력을 다져야 했다. 이스라엘은 2015년 시리아 내 친이란 프록시 무장조직에 대한 군사작전 자유권 보장을 러시아에게 약속 받았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시리아 국경을 넘나들며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을 늘렸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러시아 군사시설에 피해를 주지 않는 조건 아래 자국을 향하는 시리아발 미사일을 요격하고 발사지역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 합의했다.19 이스라엘이 러시아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어렵게 확보한 시리아 내 작전 자유권을 잃고 안보 위협에 처하게 된다.

 

[그림 4] 러시아-터키 주요 수출품별 비교 (2020년)20
그림4

 

[그림 5] 터키의 에너지별 국가별 수입 비교 (2019년)21
그림5

 

이스라엘의 대러 우호 입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발전해 온 양국 관계에 바탕하고 있기도 하다. 탈냉전 이후 구 소연방 출신 유대인 이민자가 이스라엘에 대거 유입됐고 이후 푸틴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샤론(Ariel Sharon) 총리의 친러시아 정책이 맞아 떨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깊어졌다.22 이후 푸틴 대통령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는 이슬람 급진주의를 향한 적대감을 공유하며 안보 협력을 논의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체첸 반군,23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모두 이슬람 급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에는 유대계 러시아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다수가 미국과 EU의 제재를 피하고자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24

터키 역시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 자치지역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실시할 때 러시아와 협력해야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9년 접경지대의 시리아 쿠르드계 자치지역에 기습 작전을 감행한 후 푸틴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러시아와 공동 안전지대를 설치했다. 이어 NATO 회원국 터키는 같은 해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제 방공 시스템 S-400 도입을 강행했다. 미국은 터키 방위산업청과 데미르(Ismail Demir) 방산청장 및 관리 3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으나 터키는 패권주의 행보를 이어갔다. 터키와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리비아 내전에서 적대국으로 맞서기도 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정권의 기반 강화라는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전략적으로 종종 협력했다. 터키와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터키의 에너지, 교역, 관광 분야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그림 4과 5에서 나타나듯이 러시아는 터키의 주요 에너지 공급 국가로서 2019년 기준 터키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국 1위, 석탄 수입국 2위를 차지했다. 또한 터키 GDP의 약 6%를 차지하는 관광업에서 러시아 관광객은 주요 수입원이다.25 그러나 터키는NATO 회원국이므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 확장의 기회를 엿보고 있기도 하다. 터키의 이중적 태도는 이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미국의 역내 역할 축소론과 탈중동 정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동 주요국의 중립 반응은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따른 외교 다변화의 필요성에도 기인한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기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에 따른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 개발로 인한 중동 의존도 하락,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중시정책 부상으로 ‘중동 떠나기’를 추진했다. 오바마 정부는 탈중동 준비의 일환으로서 이란 핵합의를 성사시켜 이란 온건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면 강경 보수파를 견제하고 역내 수니-시아파 간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계산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끝나면서 정부군을 전폭적으로 도운 이란 혁명수비대는 승전을 발판 삼아 역내 친이란 프록시 무장조직을 집중 지원하며 지역 헤게모니를 다졌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는 핵합의의 핵심 이해 당사국이자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 UAE, 이스라엘의 핵합의 참여 요구를 거절했다. 이들 미 우방국은 오바마 정부의 탈중동 선언에 안보 위기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이란 핵합의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정부 역시 미국의 중동 내 역할 축소를 강조했고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로 선언했다. 이후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예멘 후티 반군을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하고 중국 화웨이 5G 시스템을 사용하는 UAE에 F-35 전투기 판매를 꺼렸으며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방국들과 불화를 겪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2014년 예멘 내전의 발발 이래 정부군을 후원하는 사우디 본토를 향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지속해서 이어왔고 올해 초에는 UAE 수도 한복판을 향해 과감한 미사일 공격을 벌였다. 트럼프 정부가 2021년 1월 임기 마지막 날 후티 반군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으나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 예멘 종전 협상을 촉진하고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이란에 우호적 제스처를 보이기 위해 후티 반군에 대한 테러조직 지정을 철회했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에 재지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는 올해 2월 28일 UN 안보리에서 후티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자는 UAE의 결의안을 지지했다.

트럼프 정부는 2021년 1월 중동에서는 이스라엘만이 보유한 차세대 주력 기종 F-35 전투기와 공격용 드론의 판매 계약을 UAE와 체결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중국 화웨이가 UAE에 구축한 통신 인프라 시설이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며 까다로운 보안 요구와 함께 F-35 판매를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같은 해 12월 미국에 대한 불만이 쌓인 UAE는 구매 협상을 중단했고 이후 중국과 프랑스산 군용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인권 개선을 압박하고 터키와 이집트에도 권위주의 퇴행을 지적해왔다. 특히 2021년 2월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터키에서 살해된 사우디 출신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사건의 배후로서 MbS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하는 미 정보국의 보고서를 공개했고 사우디의 실세인 그와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사우디는 같은 해 8월 러시아와 군사협력 협정을 맺었다. 사실 사우디는 MbS 왕세자 주도로 2017년부터 러시아제 방공 시스템 S-400 도입을 추진해왔다.26

대신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중재했고 바이든 정부도 계승하는 ‘아브라함 협정(the Abraham Accords)’27을 적극 지지하면서 UAE와 이스라엘이 이끄는 아랍-이스라엘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미국의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다. 특히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가 전임 네타냐후 총리와 달리 미 민주당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강조해왔고 바이든 정부 역시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입장 반영을 약속한 만큼 이스라엘이 나서 사우디와 UAE를 비롯한 미 우방국들 간의 협력을 다질 수 있다. 이스라엘은 3월 28일 아브라함 협정 체결국인 UAE, 바레인, 모로코와 대표적인 친미 수니파 국가 이집트의 외무장관을 네게브 사막의 키부츠로 초청해 중동 안보를 함께 논했고 여기에 블링컨 장관도 참석했다. 블링컨 장관은 3월 30일 모로코에서 진행된 MbZ UAE 왕세제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UAE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국의 응답이 늦었다며 사과했다. 오타이바(Yousef Otaiba) 주미 UAE 대사는 이를 “양국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는 계기”로 평가했다.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은 7월 15일 사우디를 방문해 냉랭해진 양국 관계를 개선할 계획이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MbS 왕세자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알려졌다.28

한편 미국의 증산 요구에 대한 사우디와 UAE의 거부에는 OPEC 카르텔의 집단행동 논리에 따른 계산 역시 존재한다. 사우디는 OPEC 내 대표적인 가격 비둘기파로서 자국의 예비 생산능력을 OPEC 카르텔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스윙 국가로서 역할을 지켜왔다. 정치적 라이벌인 이란의 증산 시도에 대해서도 OPEC의 리더로서 카르텔과 석유 시장의 안정을 위해 종종 단기 희생을 감수하며 생산량을 조절했다. 이러한 OPEC의 전통과 규율은 러시아를 포함한 OPEC+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어 왔다. 특히 2020년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유가 폭락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OPEC의 리더인 사우디는 또다시 석유 시장에 대한 외부 개입과 이에 따른 시장 불안을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동질서: 이합집산과 탐색전의 심화

 
최근 국제질서 내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자유주의 세력과 비자유주의 세력 간의 갈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깊어지면서 중동 주요국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립 구도의 압박 하에서 기존의 전략적 고민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연대와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반미 연대의 대립 구도가 심화하면서 대부분 권위주의 체제인 중동 주요 국가는 더욱 첨예해진 탐색전에 돌입할 것이다. 이들 권위주의 국가들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널뛰는 미국보다 푸틴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모든 걸 결정하는 러시아를 자국의 정권 수호를 위한 안정적 파트너로 여긴다. 중동의 권위주의 리더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압박하는 바이든 대통령보다 후원국을 끝까지 보호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더 높은 호감도를 느낄 것이다.

역내 질서 재편을 둘러싼 역학 구도가 더욱 복잡해지고 불분명해짐에 따라 우선 중동 주요국들은 올해 초부터 추구해온 해빙외교에 속도를 낼 것이다. 사우디, UAE, 이스라엘은 터키와의 관계 개선에, 사우디와 UAE는 이란과의 데탕트 추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란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핵합의 복원 협상을 대러 제재의 우회 도구로 이용하려는 러시아 때문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고전 중이기 때문에 불확실성과 혼란의 시대에 라이벌 국가의 화해 제스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주요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력을 대폭 소비한 후 향후 역내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전통 우방국인 사우디, UAE,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협정 체결로 시작된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활성화 해 3국 협력을 심화하면서 미국의 역내 역할 축소에 공동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의 무기체계 도입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이에 더해 비자유주의 연대가 경제적 실용주의를 내세워 역내 권위주의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사우디, UAE, 이란, 터키 등의 권위주의 국가는 러시아, 중국과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특히 사우디, UAE, 러시아가 속한 OPEC+ 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결속을 더욱 다지게 될 것이다. 즉, 사안에 따라 미국 및 이스라엘, 그리고 러시아 및 중국과 협력하는 사우디와 UAE의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밀 가격이 지난해 대비 55% 이상 상승했고 앞으로 공급 차질의 악화가 예상되는 바 중동 내 식량안보 취약 나라들의 국가 실패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역내 대표적인 식량안보 취약 국가인 이집트에서는 빵 가격이 인상될 때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권의 안정을 흔들었다. 1977년 사다트(Anwar Sadat) 이집트 대통령이 빵 보조금을 삭감하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보조금 축소 결정은 철회됐다. 2011년 아랍 세계를 휩쓸었던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원인 가운데 하나 역시 2008~2009년에 시작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주민들의 생활고였다. 당시 시위대의 구호는 “빵, 자유, 사회정의” 였다. 2019년 수단의 독재자 바쉬르(Omar Bashir)를 물러나게 한 반정부 시위의 촉발 요소 역시 빵 가격 상승이었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UN 사무총장은 3월 22일 아랍연맹과의 회담에서 중동 국가 대부분이 식량, 연료, 비료 공급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29 더구나 장기 내전이 계속되는 예멘, 내전 이후의 불안정이 이어지는 리비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안보 위기가 국가 부재에 따른 인도적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카타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대신할 유럽의 새로운 가스 공급처이자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Major non-NATO ally)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할 것이다. 카타르는 중동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중립 태도를 보였으나 사우디와 UAE가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절한 것과 달리 유럽행 천연가스 수출 확대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유럽은 전체 가스 수입의 30~40%를 러시아에 의존해왔으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등으로 러시아와 마찰을 겪을 때마다 상습적인 공급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전쟁 발발을 계기로 자체 공급 확보와 경제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유럽은 재생 및 대체 에너지 개발은 물론 카타르산 가스를 대안으로 삼았다. 파이프라인으로 PNG 가스를 공급하는 러시아와 달리 카타르는 선박으로 LNG 가스를 수출하며 2021년 기준 세계 2위 LNG 수출국이다. 전체 가스 수입의 약 55%를 러시아에 의존해온 독일은 3월 20일 카타르와 에너지 수입 장기 협정을 체결했다.30 2020년 미국과 탈레반의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 카타르는 2021년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 미국 민간인의 철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올 1월 걸프 산유국 정상 가운데 알 타니(Tamim Al Thani) 카타르 국왕을 가장 먼저 백악관으로 초청해 유럽행 가스 공급을 요청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가까웠던 사우디와 UAE가 아닌 이들 국가와 2017년 외교 단절 사태까지 갔던 카타르를 주요 비NATO 동맹국으로 지정해 변화를 시사했다.31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이 심화되고 중동 내 새로운 질서 재편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 우리는 국제사회 내 한국의 위상에 걸맞도록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시장경제, 핵확산 금지를 지지하는 중견국 외교정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010년대에 들어와 경제 이해관계를 넘어선 국제규범의 원칙에 따라 중동에서 인도적 지원, 평화유지군 활동, 대테러 임무를 활발히 수행해왔다. 이러한 대중동 중견국 외교를 통해 우리는 다자 무대에서 우방국들과 가치외교 협력을 심화할 수 있고 동북아를 넘어선 중동 무대에서 긴장과 위기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올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표방했고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에 합의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활발한 역할 수행을 강조했다.

물론 가치 연대의 압박을 받는 중동 개별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이들이 역점을 두는 개혁과 개방의 가치를 적극 지지할 수 있다. 사우디와 UAE는 석유 의존과 보수 이슬람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젊은 세대와 여성 인재 육성을 기반으로 수소 경제, 디지털 전환, 스마트 보건을 위시한 첨단산업 개발에 힘쓰고 있다. 특히 UAE와 이스라엘이 동맹에 가까운 협력을 강화하는 시기 우리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UAE, 2021년 FTA를 체결한 이스라엘과 함께 한국-UAE-이스라엘의 삼각협력을 적극 추진해볼 수 있다. 최근 역내 주요국 간 화해무드가 진행되는 만큼 이러한 삼각협력이 이란과 터키로부터 정치, 안보적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불어 역내 대표적인 식량안보 취약 국가인 이집트는 우리 정부가 선정한 ODA 중점 협력국이기에 기존에 계획했던 교통 및 인프라 개발 분야의 협력은 물론 최악의 위기 시 인도주의 협력까지 고려해볼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UAE Calls for Cessation of Hostilities in Ukraine in Statement to UN Security Council”, UA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February 26, 2022; “UAE voices concern for civilians in Ukraine and calls for de-escalation”, The National, February 26, 2022.
  • 2. “UAE keen to cooperate with Russia on energy security, says UAE minister”, Reuters, March 17, 2022; Sarah Dadouch, “Syria’s Assad visits UAE in first trip to an Arab country since civil war”, The Washington Post, March 19, 2022; Summer Said and Stephen Kalin, “Saudi Arabia Considers Accepting Yuan Instead of Dollars for Chinese Oil Sales”, The Wall Street Journal, March 15, 2022.
  • 3. “UK to phase out Russian oil imports by end of 2022”, Al-Jazeera, March 8, 2022; Joanna Partridge, “Saudi Aramco to increase oil production to meet global demand”, The Guardian, March 20, 2022.
  • 4. 아래 통계수치를 이용해 저자 작성.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326017/weekly-crude-oil-prices/#professional
  • 5. Patrick Kingsley, Isabel Kershner and Ronen Bergman, “War in Ukraine Forces Israel Into a Delicate Balancing Act”, The New York Times, February 27, 2022; Jonathan Lis, “Israel Won’t Be Route to Bypass Sanctions on Russia, Lapid Says in Slovakia”, Haaretz, March 14, 2022.
  • 6. 1차 협상은 2월 28일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 2차는 3월 3일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3차는 3월 7일 2차 협상과 같은 장소, 4차 협상은 3월 14일~17일 화상으로 진행했다.
  • 7. Paul Benjamin Osterlund, “Amid war fears, Ukraine stocked up on Turkish defence equipment”, Al-Jazeera, April 12, 2022; “How Turkey is courting Russia’s oligarchs”, The Economist, April 7, 2022.
  • 8. Maziar Motamedi, “‘Rooted in NATO’: Iran responds to Russia’s Ukraine attack”, Al-Jazeera, February 24, 2022.
  • 9. “Russian Glitch in Iran Talks”, The Iran Primer, U.S. Institute of Peace, March 15, 2022.
  • 10. “How the invasion of Ukraine will spread hunger in the Middle East and Africa”, The Economist, March 12, 2022; Mai Ghandour, “Egypt fixes unsubsidized bread prices, fines violators to regulate market”, Al-Ahram, March 21, 2022; “Tunisia’s Saied declares ‘war’ on food profiteering”, France 24, March 9, 2022; “Algeria bans export of food”, Africanews, March 14, 2022.
  • 11. UN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의 3월 4일 발표에 따르면 밀, 사료 곡물, 옥수수의 가격이 한 달 전보다 2~5% 올랐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레바논의 밀가루 47%, 예멘과 시리아의 식용유 36%, 이집트의 비보조금 빵 25% 및 닭고기 50%의 가격 상승을 소개했다. 이처럼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동 시민들은 작년에 비해 초라한 4월 라마단 상차림을 가졌다. 또한 이라크와 모로코에서는 식료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 의존도가 낮은 알제리에서도 밀가루, 식용유 사재기 현상이 연일 보도됐다. 이에 3월 9일 사이에드(Kais Saied) 튀니지 대통령은 생필품 사재기 처벌에 대한 법안 추진을 발표했고 14일 테분(Abdelmadjid Tebboune) 알제리 대통령은 밀가루, 식용유 등의 필수 식료품 수출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같은 달 21일 마드불리(Mustafa Madbouly) 이집트 총리는 정부 보조를 받는 빵 가격을 90g당 한화 약 65원으로 동결했다. 이집트의 경우 매년 29억 달러의 예산을 빵 보조금으로 편성했다. “The FAO Food Price Index makes a giant leap to another all-time high in March”, FAO, April 08, 2022; “War in Ukraine pushes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deeper into hunger as food prices reach alarming highs”, WFP, March 31, 2022.
  • 12. 2022년 2월 25일 상정된 UN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은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찬성 11개국, 기권 3개국(인도, 중국, UAE),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이 무산됐다. Randa Slim, “The divided regional response to Russia’s invasion”, Middle East Institute, February 28, 2022.
  • 13. 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OEC)에서 제공하는 국가별 밀수입 양 데이터(2020년 기준)를 바탕으로 저자 그래프 작성. https://oec.world/en/profile/bilateral-product/wheat/reporter/egy
  • 14. Heba Saleh and Emiko Terazono, “Ukraine war sparks food shortages in Arab nations as wheat prices soar”, Financial Times, March 21, 2022.
  • 15. UN은 3월 2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결의안을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채택했다. 결의안은 193개 회원국 중 표결 참가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채택된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시리아 외에 북한, 벨라루스, 에리트리아, 러시아였다.
  • 16. Martin Chulov, “Syrians join Russian ranks in Ukraine as Putin calls in Assad’s debt”, The Guardian, March 18, 2022.
  • 17. “Russia’s 12 UN vetoes on Syria”, RTE, April 11, 2018; “Rival resolutions on Syria vetoed at UN meeting”, RTE, April 11, 2018; “S/2019/756”, UN Security Council Report, September 19, 2019.
  • 18. Eugene Rumer, “Russia in the Middle East: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 Carnegie Endowment for World Peace, October 31, 2019.
  • 19. David Daoud, “Israel won’t stick out its neck for Ukraine. It’s because of Russia.”, Atlantic Council, April 13, 2022; Dan Williams, “Russia sees military coordination with Israel on Syria continuing”, Reuters, February 27, 2022.
  • 20. “OEC Statistics-Russia and Turkey 2020”, OEC, 2022.
  • 21. “Turkey 2021: Energy Policy Review”, International Energy Agency, March 2021.
  • 22. 푸틴 대통령은 구 소연방 출신 유대인이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을 역내 영향력 확산의 근거지로 삼고자 했다. 부모가 구 소연방 출신이며 러시아어가 유창했던 샤론 총리는 구 소연방 출신 유대인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 발전에 공을 들였다. 히브리어보다 러시아어가 편한 이들 유권자층은 지난 30년간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주요 보수파 세력으로 부상했다. 물론 구 소연방 출신 유대인 110만여 명 대부분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약 1/3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러시아 출신 중에서도 진보 계열 일간지 하레츠의 대주주 네브즐린(Leonid Nevzlin)은 푸틴을 반대한다.
  • 23.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체첸 자치공화국은 러시아와 인종, 종교, 언어가 다르다.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 체첸 지역인들은 반군을 조직해 러시아를 상대로 싸우며 독립을 주장해왔다. 체첸 반군은 러시아와 2 차례의 전쟁(1차 1994년~1996년, 2차 1999년~2000년)을 치렀고 이후에도 러시아를 향해 수 차례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 24.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2003년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을 인수한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도 2018년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했다.
  • 25. 당시 터키 원유 수입량의 33%, 천연가스 수입량의 34%, 석탄 수입량의 33%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2020년 기준 러시아의 대터키 총수출액은 121억 달러, 주요 수출품으로는 석유 19.1%, 곡물 12.7%, 석탄 7.2%가 차지했으며 터키의 대러시아 총수출액은 45억 달러, 주요 수출품은 감귤류 9.39%, 자동차 부품 4.9%, 기타 과일 4.66%이다. 터키 관광청에 따르면 COVID-19 발생 전인 2019년 기준 터키를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은 약 700만 명으로서 전체 관광객의 16%에 해당했으며 국적별로는 러시아가 터키를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 1위를 차지했다. “Border Statistics 2019”, The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of Turkey, 2020; “Cashing in: No payment problems for Russian tourists in Turkey”, Deutsche Welle, March 28, 2022; “OEC Statistics-Russia and Turkey 2020”, OEC, 2022; “UNWTO tourism statistics-Turkey”, UNWTO, 2022.
  • 26. Mark N. Katz, “Saudi Arabia is trying to make America jealous with its budding Russia ties”, Atlantic Council, August 27, 2021.
  • 27. 2020년 이스라엘, UAE, 바레인은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국교를 수립했고 이어 수단과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
  • 28. Barak Ravid, “Scoop: Blinken apologized to UAE crown prince for delayed response to Houthi attacks”, AXIOS, April 14, 2022; Felicia Schwartz and Samer Al-Atrush, “Joe Biden to visit Saudi Arabia and Israel during Middle East trip”, Financial Times, June 14, 2022.
  • 29. “Ukraine war: Middle East food prices soaring, as donor fatigue kicks in, Security Council hears”, UN News, March 13, 2022.
  • 30. Bojan Pancevski, “Germany Secures Gas Deal With Qatar but Still Needs Russia,” The Wall Street Journal, Mar 21, 2022.
  • 31. 카타르는 사우디와 UAE가 견제하는 급진 이슬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 하마스, 헤즈볼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이란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자치지역 침공에도 공식 지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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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유아름
유아름

연구부문

유아름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에 3년 수학했다. 연구관심분야는 정치사상, 민주주의, 정체성, 종파주의, 이슬람 정치, 중동 정치 및 안보다.